“일정이 미뤄졌습니다”라는 한 문장에 담긴 두 얼굴
입원했다가 겨우 퇴원해서 복귀했을 때, 회사 분위기는 겉으로 보기엔 조금 나아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오픈 베타 테스트 일정이 뒤로 미뤄졌다는 소식이 있었거든요. 표면적으로만 보면 이건 좋은 소식처럼 들립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시간이 더 생겼다는 뜻이니까요.
급하게 밤새워 붙일 필요가 조금은 줄어들고, UI도 한 번 더 다듬을 수 있고, 서버 안정화도 여유 있게 해 볼 수 있고, 당장 오늘 밤에 “이거 못 넣으면 망합니다” 같은 식의 압박은 조금 줄어드는 듯 보였습니다. 그래서 처음엔 솔직히 안도도 했습니다.
‘아, 다행이다. 아직 끝난 건 아니구나.’
‘내가 그 병원 침대에서까지 걱정했던 그 일정, 이거 조금 숨통 트인 거구나.’
그런데 회사라는 공간은 감정으로만 굴러가지 않습니다. 표정이 말해줍니다. 일정이 미뤄졌다면 원래 조금 편안해져야 합니다. 그런데 아무도 편안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무실 분위기가 더 무거워졌습니다. 조용했습니다. 회의실은 자주 닫혀 있었습니다. 팀장 얼굴은 더 굳어 있었습니다. 농담이 사라졌습니다.
‘아, 이건 그냥 일정 조정이 아니구나.’
그걸 눈치채기까지 오래 걸리진 않았습니다.
몸은 덜 나았고, 회사는 더 급해졌다
퇴원 후라고 해서 저는 완전히 회복된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게실염은 휴식 없는 생활, 불규칙한 식사, 과도한 스트레스와 피로 같은 것들이 겹치면 악화될 수 있는 종류의 병입니다. 의사 말 그대로였습니다.
“지금은 염증이 가라앉았지만, 다시 무리하면 재발할 수 있습니다. 음식 조심하시고 무리하지 마세요. 특히 잠을 잘 자셔야 합니다.”
저는 그 말을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회사는 그 말을 모른다고 해서 나쁜 게 아니고, 알면서도 반영할 수 없는 구조였다고 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시점의 회사는 ‘살아남는 게 목표’였기 때문입니다. 야근을 무조건 강요하지는 않았습니다. 직접적으로 “너 왜 안 남아?”라고 말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공기라는 게 있습니다. 그건 말로 하지 않아도 느껴집니다. 제 몸은 '아직 무리하면 안 된다'라고 말하고 있었고, 회사 분위기는 '지금은 무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둘은 동시에 존재했지만 서로 양보할 생각이 없어 보였습니다. 저는 그 사이에 끼어 있었습니다.
2주 후, 그 말이 떨어졌다
퇴원 이후 약 2주 정도 지났을 때였습니다. 팀장이 불렀습니다. 회의실 문이 닫혔습니다. 작은 방 안 공기가 약간 눅눅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들은 문장은 짧았습니다.
“오픈 베타 테스트는 하지 않기로 결정됐습니다.”
저는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번역이 되지 않았습니다.
‘일정을 더 미룬다…는 게 아니고요?’
‘완성도를 더 끌어올린 다음에 가자는 건 아니고요?’
‘조금 더 준비해서 나중에 다시 열자는 뜻 아닌가요?’
제가 고개를 살짝 들었을 때, 팀장은 추가로 설명했습니다.
“그 말은… 사업부 결정이 내려졌다는 뜻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더 안 가져갑니다.”
그제야 저는 알아듣기 시작했습니다. 그 말은 이렇게 바꿔 들을 수 있는 말이었습니다.
'우리가 만들던 게임은 출시하지 않는다.'
'여기까지다.'
'이제 이걸로 매출을 만들어낼 계획이 회사에 없다.'
말은 부드러웠지만, 내용은 회사 입장에서 사실상 사형선고였습니다.
'사업을 접는다'라는 말의 진짜 뜻
게임 업계에서 '사업이 정리됐다' 혹은 '이 프로젝트는 접자'라는 말은 겉으로는 깔끔합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훨씬 구체적인 현실이 들어 있습니다. 그걸 조금 차근히 풀어보겠습니다.
유저에게 내놓을 기회 자체가 사라집니다. 출시를 못 한다는 건, 우리가 만든 것들이 세상에 나갈 무대가 없어진다는 뜻입니다. CBT까지는 어쨌든 내부 테스트이기 때문에 '시장에 나갔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OBT(오픈 베타 테스트)는 거의 세상 공개의 초입입니다.
그런데 OBT를 하지 않겠다는 건, '이 게임은 세상에 안 나간다'입니다. 한 줄로 말하면: 존재 자체가 사라진다는 뜻입니다.
투자 vs 회수의 구조가 끊깁니다. 지금까지 개발에 투입한 인건비, 시간, 사내 리소스, 인프라 비용. 이것들은 원래 OBT → 정식 론칭 → 유저 유입 → 과금 구조 안착으로 회수하는 그림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업이 정리되면 그 회수 루트 자체가 없어집니다.
즉, 회사 입장에서 보면 '이 라인은 더 이상 돈을 벌 가능성이 없는 라인'이 됩니다. 그러면 그 라인은 유지할 이유를 잃습니다. 사람을 유지할 명분이 사라진다 프로젝트라는 건 단지 결과물이 아니라 '사람들이 묶여 있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프로젝트가 내려가면 그 사람들을 묶어둘 이유도 같이 사라집니다. 즉, 인원 정리 이야기가 따라옵니다. 저는 그날 회의실에서 그 마지막 조각까지 한 번에 이해했습니다.
“아.. 이제 우리를 정리하겠다는 거구나.”
숫자와 사람 사이
회사의 개발부서 인원은 당시 약 60명 정도였습니다. 제가 속한 팀 외에도 신규 프로젝트 팀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즉, 회사 안에는 동시에 돈이 나가는 개발 줄기가 두 개 있었던 셈입니다. 그날 들은 말은 단순했습니다.
'두 줄 모두는 못 가져간다'라는 뜻이었죠. 말하자면, 회사는 이제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이쪽을 살릴지, 저쪽을 살릴지. 둘 다 끌고 가기엔 회사 사정이 버틸 수 없다는 메시지였습니다.
그리고 우리 쪽은 그 선택에서 밀려났습니다. 이걸 듣는 입장에서는 참 이상한 감정이 몰려옵니다. ‘우리가 진 게임이 되었구나’라는 패배감이 먼저 오고, 그다음에 ‘그럼 우린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라는 생존 불안이 바로 따라옵니다.
이건 감정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진짜 생활 문제였습니다.
“퇴사하라는 뜻입니다”
결국 상황은 아주 직선적으로 정리되었습니다. 제가 들은 요지는 이랬습니다. 프로젝트를 접는다. 팀을 유지할 이유가 없다. 회사는 개발 인력을 지금처럼 두 팀 규모로 가져갈 수 없다. 그러므로 정리할 것이다. 말을 예쁘게 하면 '사업 정리'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제 귀에는 이렇게 들렸습니다.
“너 나가야 해.”
저는 첫 직장을 들어온 지 아직 반년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정확히는 5개월 조금 넘은 시점이었습니다. 5개월 동안, 저는 학원에서 배운 걸 쥐고 간신히 게임 업계에 들어갔고, 거의 바로 UI 전담에 가까운 업무를 맡았고, 클로즈 베타 테스트를 같이 겪었고, 유저 피드백과 욕설까지도 체로 받아냈고, 오픈 베타를 향한 야근과 몰입 속에서 몸이 무너졌고, 게실염 진단을 받고 입원했고, 링거를 맞은 손으로도 일정 걱정을 했고, 다시 회복하자마자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돌아온 지 2주 만에 들은 첫 회사의 공식 메시지는 이것이었습니다.
“자리를 비워주셔야겠어요.”
실업급여조차 없는 5개월 차
저를 더 불안하게 했던 건, 돈 문제였습니다. 회사에서 '정리'라는 표현은 늘 중립적인 척합니다. 감정을 빼고, 절차적인 얘기로 말합니다. '정리 대상자', '중단', '사업철수', '권고사직.' 하지만 신입 개인에게 이 단어들은 그렇게 들리지 않습니다.
“지금부터는 네가 알아서 살아라.”
저는 입사한 지 6개월이 채 안 된 사람이었습니다. 권고사직이라고 해도 실업급여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급여 없이 그냥 공중에 던져지는 상태였습니다.
그때의 제 감정은 ‘불안’보다 더 밑바닥에 가까웠습니다. ‘공포’도 맞지 않았습니다. 제일 정확한 단어는 '막막함'이었습니다. 막막함이라는 감정의 특징은 이렇습니다.
당장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조차 안 그려집니다. 계산을 해보려고 해도, 계산식 자체가 안 떠오릅니다. 그냥 가슴 한가운데에 커다란 돌 하나가 얹힌 느낌만 듭니다. 저는 그 상태였습니다.
'나는 뭘 잘못한 거지?'
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게 더 어려웠던 이유는, 이게 단순한 해고가 아니라 '타이밍의 희생'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만약 제가 일을 정말 대충 했고, 신입인데도 태도가 엉망이고, 책임을 회피하고, 사고만 치고 다녔다면,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아, 내가 잘렸구나.'
'결과가 나온 거구나.'
'배운 게 있다면 그거라도 챙겨 가자.'
근데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는 겁니다. 저는 정말로 죽기 살기로 달렸습니다. 퇴근하고도 코드를 봤고, 꿈에서까지 로직을 붙들었고, UI 전체를 갈아엎는 일을 두 번 넘게 했습니다. 테스트 전까지 밤마다 버텼고, 그 결과 몸이 무너져서 입원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저에게 돌아온 결론은 '정리 대상자'였습니다. 그 순간부터 머리가 이상해지기 시작합니다.
“나는 뭘 잘못한 거지?”
“어디서 틀린 거지?”
“아프지 말고 더 야근했어야 했나?”
“입원하지 말았어야 하나?”
“불평 한마디라도 덜 했어야 했나?”
“아니면.. 그냥 운이 나빴던 건가?”
이 질문은 정말 무섭습니다. 왜냐하면 답이 없기 때문입니다. 답이 없으면 사람은 자신을 탓합니다. 사람은 시스템보다 자기 자신을 먼저 의심합니다. '내 문제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라는 생각까지 가려면 시간이 꽤 많이 걸립니다. 그땐 그 시간을 아직 못 벌었어요. 저는 그냥 죄책감에 가까운 감정 속에 앉아 있었습니다. 첫 직장, 첫 프로젝트, 첫 병원, 그리고 첫 정리 통보. 모든 게 너무 빨랐습니다.
'사업 정리'라는 말의 잔인함
사업 정리라는 표현은 회사 입장에서는 깔끔한 언어입니다. 회사는 그것으로 재무 구조를 설명할 수 있고, 방향 전환을 말할 수 있고, 전략적 선택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의 입장에서 '사업 정리'는 다른 뜻입니다.
“너의 미래 계획을 강제로 초기화하겠다.”
“너의 지난 시간은 수익화되지 못했으므로 회사의 자산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너는 이제부터 다시 네 삶을 설계해야 한다. 준비는 안 되어 있겠지만 지금부터 바로 시작해라.”
회사에게는 '전략적 결정'이지만, 개발자 개인에게는 '삶 전체를 다시 조합하라'는 통보입니다. 이 간극은 그때 처음으로 제 안에 아주 깊게 박혔습니다. ‘아, 회사의 언어와 나의 언어는 다르구나.’
이 시기에서 솔직히 제일 힘들었던 건 돈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고, 심지어 퇴사 공지 자체도 아니었습니다. 제일 괴로웠던 건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라는 상태였습니다. 저는 그전까지 본능적으로 이런 식으로 생각해 왔습니다.
“열심히 하면 된다.”
“몰입하면 된다.”
“밤새서라도 끝내면 된다.”
“책임지고 완성하면 인정받는다.”
그건 제 방식이었습니다. 몸이 무너질 때까지 버티는 방식. 실제로 저는 그 방식을 선택했고, 심지어 병원까지 갔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제가 아무리 그렇게 해도, 이 프로젝트는 내려갔습니다. 즉, 결과를 바꾸는 힘이 제 손에 없었습니다. 이걸 깨닫는 순간이 진짜 아팠습니다.
“아, 내가 아무리 자기 몸을 던져도, 회사의 생존 구조까지 바꿀 수 있는 건 아니구나.”
“내 노력은 중요하지만 절대적인 건 아니구나.”
“나는 전체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구나.”
이건 패배감이라기보다, 위치를 깨닫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그건 20대 초반에게 굉장히 강하게 다가옵니다. 처음으로 현실적 한계를 정확히 본 순간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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