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이라는 단어를 실감하다
권고사직 통보를 받은 그 시기, 회사는 조용했습니다. 아무도 크게 소리치지 않았고, 누구도 감정적으로 무너지는 걸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조용함 속엔 이상할 만큼 묵직한 체념이 깔려 있었습니다.
서버 개발자 선배는 바로 움직였습니다. 사실 '선배'라고 하기에도 애매했습니다. 본인도 그 회사에 오래 있던 편은 아니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분은 상황을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아, 이건 그냥 끝났구나.”
그걸 단번에 받아들였고, 그 자리에서 거의 바로 이력서를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전화하고, 메시지 보내고, 면접을 붙잡고, 최대한 빨리 다음 자리를 확보하려고 뛰었습니다. 저는 그걸 보면서 알았습니다.
“아, 이게 업계의 생존 방식이구나.”
근데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근데.. 나는 지금 뭘 해야 하지?”
그 시점의 저는 병원에서 막 퇴원한 지 얼마 안 된 사람이었습니다. 몸은 덜 회복된 상태였고, 머리는 여전히 소음처럼 울리고 있었고, 어제까지 하던 일은 '정리됐습니다'라는 말 한 줄로 사라졌습니다. 그 한 줄은 제 계획도 함께 지웠습니다.
누군가는 즉시 '이직준비 모드'로 바뀌었지만, 저는 그 전환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서, 생각이 아닌 잡음만 가득한 상태였습니다.
‘내가 뭘 할 수 있지?’
‘나는 어딜 갈 수 있지?’
‘내가 이력서로 내세울 게 있나?’
‘나는 아직도 신입인데, 벌써 잘릴 위기고, 실업급여도 안 나오는데.. 그럼 어떻게 버티지?’
그런 질문이 한꺼번에 올라왔습니다. 정말 현실적으로, 먹고사는 문제가 목에 꽉 걸려 있었습니다. 그때 감정은 절망이라기보다, 말 그대로 '붙잡을 게 없다'는 허공감이었습니다. 아무리 헤엄치려고 해도 발이 닿는 바닥이 없는 수영장에 빠진 기분. 저는 바닥을 찾고 있었습니다. 바닥만 있으면, 한 번만 디디면 다시 떠오를 수 있을 것만 같은데, 그 바닥조차 없다는 게 제일 무서웠습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소식
그런 상태에서 생각도 못 한 소식이 하나 들어왔습니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의 느낌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개발팀장이 회의를 소집했습니다. 그 사람 특유의 건조한 톤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른 회사에서 우리 프로젝트를 인수하겠다고 합니다.”
그때 제 머릿속이 멈췄습니다.
‘... 뭐라고요?’
보통 게임 프로젝트라는 건, 회사의 자산입니다. 기획 문서, 코드, 툴, 아트 리소스, 서버 구조, 전체 파이프라인까지 전부 다 회사의 재산입니다. 이건 사람 한두 명이 들고 “이거 우리가 가져갈게요” 하고 옮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조금 특이했습니다. 우리 팀이 만들고 있던 캐주얼 레이싱 게임을, 다른 회사에서 이어서 개발하겠다는 겁니다. 그 말은 곧 이렇게 번역됐습니다.
“우리 회사는 이 프로젝트를 더 못 가져간다. 하지만 다른 회사는 이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어 한다. 그러니까, 우리 팀 자체를 통째로 데려가겠다는 얘기다.”
저는 그 말을 들으며 거의 물 위에 잡힌 손목처럼 느꼈습니다. 그건 정말로 동아줄처럼 느껴졌습니다. 당시 상황에서 이 제안이 얼마나 비정상적으로 기회였는지를 조금 더 설명드리겠습니다.
첫째, 우리는 방금 프로젝트가 죽었다는 통보를 받은 팀이었다.
둘째, 우리는 회사에서 '유지할 필요가 없는 인력' 취급을 이미 받았다.
셋째, 저는 개발자로서 커리어가 이제 막 ‘1’에서 ‘2’로 올라가나 싶은 순간이었는데, 그 ‘1’이 사라진 상태였다.
이런 팀을 다른 회사가 그대로 받겠다는 건 흔하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시장 구조에서 거의 '구조 요청에 대한 구조 응답'에 가까운 사건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실감했습니다.
“아, 이게 정말 흔한 기회는 아니구나. 이건 매달릴 만한 줄이구나.”
팀 단위로 옮긴다는 것
개발팀장은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이직할 사람들은 각자 이직하고. 남을 사람들은 같이 옮기자.” 그 말은 이렇게 들렸습니다.
“각자 살아가도 된다. 근데, 못 움직이겠으면 내가 줄 하나는 잡아놨다. 우리 팀 그대로 다른 회사로 넘어가는 방법도 있다.” 표면적으로는 옵션이었습니다. 하지만 제 입장에서는 사실상 유일한 선택지였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아직 업계 6개월 차도 안 되는 신입이었기 때문입니다. 제 이력서에는 화려한 프로젝트 이름도 없고, 성공한 상용 타이틀도 없고, 퍼블리싱 경험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 몸은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도 않았습니다. 입원에서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으니까요.
이직 시장에 그냥 혼자 던져졌을 때 제 가치는 솔직히 말해서 불안했습니다. '경력 6개월 미만 + 프로젝트 종료 + 서비스 전 단계에서 컷'. 이 조합을 공고하게 해석해 줄 회사는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팀 단위 이동은 얘기가 달랐습니다.
팀 단위 이적은 '사람'이 아니라 '전력'을 사가는 움직임입니다. 다시 말해 '개별 인력의 스펙'이 아니라 '동작 가능한 개발 조직'으로 평가받는 상황입니다. 그건 저 같은 신입에게는 거의 유일하게 숨을 쉴 수 있는 보트였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살았다.’
개발팀장에 대한 복잡한 마음
이 부분을 솔직하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 개발팀장을 모두가 존경했던 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반대에 가까웠습니다. 그 사람을 좋게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기술적으로 직접 문제를 해결하는 타입은 아니었고, 구조적으로 팀을 정리하고 가닥을 세우는 리더도 아니었고, 갈등을 부드럽게 다루는 커뮤니케이터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요약하면 이랬습니다.
“개발 잘하는 것 같지도 않고, 리더십이 안정적인 것도 아니다.”
저도 비슷하게 느꼈습니다.
그땐 잘 몰랐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사람은 여러 면에서 역량이 부족했습니다. 혼자 과부하 걸려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소형 프로펠러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충분히 믿을 만한 지휘관이라기보다는, 자기 자리도 위태로운 채로 버티는 사람에 가까웠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사람에게는 한 가지 강점이 있었습니다.
영업.
여기서 말하는 영업은 단순히 '말 잘해서 계약 따오기' 수준이 아닙니다. 그건 '우리가 완전히 빠지지 않게 할 자리를 만들어 오는 능력'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그 사람의 마지막 자존심이자 마지막 실력이었습니다. 속담으로 치면 정말로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에 가까웠습니다.
팀 전체가 회사를 떠나야 하는 상황에서, 그는 최소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들어 왔습니다.
“너희, 그대로 옮길 수 있어.”
저는 그걸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만큼은 분명히 그 사람의 공이었습니다.
울며 겨자 먹기
저는 선택지가 많지 않았습니다. 사실상 없었습니다. 그래서 '같이 갑시다'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 저는 고맙다고 느끼면서도 동시에 불안했습니다.
이게 진짜 안전한가?
저 회사는 어떤가?
가서도 다시 해체되면?
이번에는 정말 버틸 수 있을까?
그 모든 의심이 당연히 들었습니다. 하지만 의심과 상관없이 저는 따라가기로 했습니다. 이 감각이 '울며 겨자 먹기'라는 말과 닮았습니다. 이 표현은 보통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한다는 의미로 쓰이지만, 실제로는 조금 더 섬세합니다. 울며 겨자 먹기는, 거부할 권리가 없는 사람이 마지막으로 기회를 붙잡는 순간에 가까운 말입니다.
“내가 이걸 진심으로 신뢰하는 건 아니야. 그렇다고 안 하자니 내가 바닥에 떨어져. 그러니까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자 유일한 선택이야.” 그게 저였습니다.
'5개월 차 이직'이라는 말의 무게
웃기게도 제 주민등록상 경력은 이제 '5개월 만에 이직'이 되었습니다. 듣기만 해도 불안정한 인생처럼 들리는 문장입니다. 누가 이력서를 보면 이렇게 생각할 겁니다.
“어? 왜 이렇게 빨리 옮겼지?”
“조직에 오래 못 있었나?”
“문제 있었나?”
하지만 실제 사정은 전혀 달랐습니다. 저는 도망간 게 아니었습니다. 프로젝트가 죽었고, 회사가 정리했고, 팀이 사라지고 있었고, 저는 그냥 구조물과 함께 떨어지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사정을 다 들어주지 않습니다. 세상은 결과로 추정합니다. '5개월 만의 이직'은 불안해 보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제안이 더 고마웠습니다.
이 직장이 다음 직장을 위한 징검다리가 되어줄 수만 있다면, 즉 제 커리어의 2페이지에 '1페이지와의 연결'을 보존해 줄 수만 있다면, 저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살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때 알았습니다. 커리어 초반의 목표는 ‘성공’이 아니라 ‘연결’이다. 끊기지 않는 것. 페이지가 완전히 찢어지지 않는 것.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수 있게 이어지는 것. 그게 살아남는 데 가장 중요하다는 걸 저는 그때 처음 배웠습니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느꼈다
이직이라는 말은 보통 야심, 상승, 연봉협상, 더 큰 회사로의 이동 같은 단어들과 함께 쓰입니다. 하지만 제게 '이직'은 전혀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이직은 말 그대로 '가라앉지 않기 위한 이전'이었습니다. 가라앉는 배에서 옆 배로 갈아타는 행위에 가까웠습니다.
제가 하고 싶어서 고른 게 아니라,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 내민 손을 붙잡은 움직임이었습니다. 이상하게 들리실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때 진심으로 ‘다행이다’라고 느꼈습니다. 정말로 다행이었습니다.
그 감정은 거짓이 아니었습니다. 절박함 속에서 누군가가 '여기 손' 하고 내민다면, 그 손이 완벽하든 아니든, 때로는 그 손만이 삶의 유일한 현실이 됩니다. 저는 그 손을 잡았습니다. 그 손을 잡을 수 있었던 것 자체가, 삶 쪽으로 기운 첫 선택이었습니다.
이 시기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아직 내가 뭘 원하는지 고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그저 가라앉지 않기 위해 붙잡을 줄을 찾는 사람이었다.”
이건 부끄러운 고백이 아니라, 아주 솔직한 생존의 기록입니다. 사람이 커리어 초반에 바라는 건 ‘성공’이 아닐 때가 있습니다. 그보다 더 첫 번째로 바라는 건 ‘버틸 수 있는 내일’입니다.
그날 저는 그 ‘내일’을 겨우 얻었습니다. 그게 제가 다음 회사를 가기로 한 이유였습니다. 그게 제가 그 팀장조차 따라가기로 마음먹은 이유였습니다. 그게 제가 제 자존심을 잠깐 내려놓고라도 손을 잡은 이유였습니다.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하지만 동시에 아직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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