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는다’에서 ‘즐긴다’로
그 회사에 들어갔을 때 제 목표는 단 하나였습니다. 살아남는 것입니다. 이전까지의 시간은 생존에 가까웠습니다.
첫 직장에서 과로와 입원, 오픈베타 취소, 팀 해산. 두 번째 직장에서 팀 단위 권고사직, 하루아침에 '오늘부터 안 나와도 됩니다'라는 통보. 방 안에서 한 달 동안 현실과 단절된 채 겨우 마음을 추스르며, '한 번만 더 해보자'라고 다짐했던 그 직후 제가 도달한 곳이 바로 이 회사였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바랐던 게 별로 크지 않았습니다.
“이번엔 오래만 버티자.”
정말 그것뿐이었어요. 그런데 회사에 들어가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저는 깨달았습니다. 여기는 ‘버티는 곳’이 아니라 ‘함께 만들고 있는 곳’이구나. 그 발견은 제 삶에서 굉장히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생존에서 창작으로.
'버텨야 한다'에서 '재밌다'로.
안정성이라는 든든함
이 회사에는 이미 매출이 나오는 라이브 게임이 있었습니다. 이 말은 단순한 재무적 안정성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게임 업계에서 '굴러가고 있는 라이브 타이틀이 있다.'는 건 아주 현실적인 보호막입니다.
월급이 오늘 끊길 확률이 낮다. 게임이 망했다고 바로 팀이 해산되진 않는다. '당장에 뭐라도 출시해라!'라는 비현실적인 압박에서 자유롭다. 저는 이게 얼마나 소중한 방패인지 두 번의 권고사직으로 이미 배운 상태였기 때문에, 그 의미가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특히 2000년대 후반만 해도 상황은 지금과 조금 달랐습니다. 지금처럼 모바일 마켓 상위권에 광고비를 억 단위로 태워야만 접근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습니다. 당시에는 '명확한 콘셉트로 게임을 완성하면 적어도 론칭까지는 갈 수 있는 시대'였지요. 즉, 시장의 중간 허들이 아직 지금만큼 잔혹하진 않았습니다.
요즘이라면 꿈으로 끝났을 프로젝트도, 그때는 실제로 서비스까지 갔습니다. 이건 우리 같은 개발자들에게 이런 메시지를 줬습니다.
'만들면, 나갈 수 있다.' 그 말 한 줄은 사람이 몰입할 힘을 줍니다. '우리가 이거 괜찮게 만들면, 정말로 유저가 하게 될 거야.' 그 믿음은 팀 전체를 묶어주는 에너지였습니다.
스킬 시스템과 ‘손맛’을 만들기 시작하다
저는 이 팀에서 주로 스킬 시스템을 담당했습니다. 말 그대로 캐릭터가 사용하는 기술, 공격 모션, 맞았을 때의 반응, 이펙트, 대미지 처리, 쿨타임 로직, 그 기술이 게임 안에서 어떤 역할을 가지는지까지 포함된 그 전체 흐름.
스킬 시스템은 단순히 '공격 버튼 누르면 대미지 준다'가 아닙니다. 그건 '내가 이 캐릭터를 왜 계속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기도 합니다. 이 스킬은 눌렀을 때 기분이 좋아야 합니다.
이펙트는 너무 과하지도, 너무 밋밋하지도 않아야 합니다. 판정은 억울하지 않아야 하고, 반복해서 쓸 때 지루하지 않아야 합니다. 다른 스킬과 섞어 쓸 때 콤보가 만들어지면 더 좋습니다. 다시 말하면, 스킬은 '이 게임이 나에게 손으로 남기는 기억'입니다.
그걸 맡았다는 건 저에게 엄청난 자극이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플레이어의 시점으로 게임을 보고 싶어 했습니다. '이거 재밌나? 이 타격감 괜찮나? 이건 내가 직접 쓰고 싶은 기술인가?' 이게 제 머릿속의 기준선이었어요.
그러니까 코드를 넣는 순간에도 제 질문은 기술적이면서 동시에 감각적이었습니다. '이건 작동하냐?'와 '이건 짜릿하냐?'를 동시에 묻는 방식. 저는 그게 좋았습니다.
일하는 재미를 처음 알았다
이 회사에서 제게 온 가장 신선한 경험은 ‘협업이 즐겁다’라는 감정이었습니다. 이전 회사들에서는 솔직히 말씀드리면 협업이라는 단어보다 ‘압박’이라는 단어가 더 가까웠습니다.
위에서 떨어지는 일정.
맞춰야 하는 마감.
유저 욕설 대응.
회사 안 살아남으면 다 같이 나가는 구조.
거기에는 '같이 해보자'라는 감정보다는 '이거 안 되면 큰일 난다'라는 공포가 깔려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팀에서는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기획팀은 프로그래머에게 적이 아니었습니다. “그거 그냥 이렇게 만들어주세요”라고만 말하는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서로에게 요구만 던지고 끝나는 관계가 아니었습니다.
기획자는 아이디어를 가져왔고, 프로그래머는 그걸 구현하면서 “이건 실제로 돌아가면 이런 느낌일 텐데, 괜찮으세요?”라고 되물었습니다. 그러면 기획자가 다시 “그러면 이 타이밍을 조금 늦출까요?”라든가 “이 부분 이펙트 강조 더 줄까요?” 같은 식으로 맞춰줬습니다. 이건 굉장히 중요한 차이입니다.
“이거 안 돌아요.”
“그럼 왜 안 되죠?”
“이거 기획대로죠?”
“기획이 잘못 짠 거 아니에요?”
이런 싸움이 아니었습니다.
분위기는 오히려 이런 쪽이었습니다.
“이거 재밌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지금은 좀 밋밋하죠?”
“유저는 이 스킬 왜 써요? 이거 써서 뭐가 좋아요?”
“여기서 맞는 사람은 무슨 기분이 들어야 해요?”
즉, 주제는 ‘기능’이 아니라 ‘재미’였습니다. 우리가 싸우는 대상은 서로가 아니라 재미의 부족이었습니다.
저는 이걸 그때 처음 경험했습니다. '일하는 과정 그 자체가 즐거울 수 있다'는 걸요.
야근 후의 술자리에서 배운 것
기획자, 그래픽 디자이너들과 퇴근 후 술을 마시기도 했습니다. 그 자리는 보고서도 아니고 회의록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술자리가 개발 방향을 잡기도 했습니다.
“사실은 난 이 스킬이 이 게임의 ‘시그니처’였으면 좋겠어.”
“이 구간은 초보자도 멋지게 보이게 해주고 싶거든.”
“여긴 좀 무식하게 세도 상관없지 않아? 후반 가면 어차피 딜러 줄어들 거고.”
이런 말들은 회사 문서에 깨끗하게 써지지 않습니다. 사내 위키에 정리되는 표현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 말속에는 그 기획자가 진짜로 만들고 싶은 게임의 취향이 들어 있습니다. 그 취향을 들을 수 있었다는 건 저에게 엄청 큰 행운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걸 들은 다음에 짜는 코드는 그냥 기능 구현이 아니라 취향 반영이 되거든요. 그리고 아주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취향을 이해한 프로그래머는 회사에서 더 오래 살아남습니다. 조금 냉정하게 표현하자면 이렇습니다.
'말한 대로 만들어주는 사람'은 바꿀 수 있습니다. '함께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쉽게 못 바꿉니다. 저는 그걸 몸으로 깨우치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과 나란히, 같은 방향을 보고 가고 있다는 감각. 이건 전 직장들에서는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종류의 안정감이었습니다.
같은 세대, 같은 언어
또 하나 중요한 건 팀의 결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팀의 핵심 인력들은 대부분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었습니다. 나이대가 묘하게 비슷했습니다. 이 말은 곧 문화적 참조점이 같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재밌다고 말할 때 떠올리는 장면이 비슷했어요.
“그거 OO 게임 보스전 느낌 알지?”
“이 스킬 타이밍은 예전에 PC방에서 밤새 돌던 그 캐릭터 궁극기 느낌으로 가고 싶어.”
이런 말이 통한다는 건 작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큽니다. 공유된 재미가 있다는 건 곧 합의하는 속도가 빠르다는 뜻입니다. 한 명만 '나는 이 스타일이 재밌어'라고 하면 그 나머지 세 명이 전혀 공감 못 해서 다른 방향을 얘기하는 상황이 아니었던 겁니다.
우리는 '어느 정도 비슷한 재미'에 반응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게임 시장은 PC 온라인과 콘솔 중심이었고, 모바일은 아직 본격적이지 않았습니다. 게임의 감각, 리듬, 손맛, 만족감의 포인트가 어느 정도 공통분모를 갖고 있었던 시대였습니다.
이건 진짜 큽니다. 지금은 장르가 워낙 다양해지고, 플랫폼도 쪼개지고, 과금 모델도 갈라져서 팀 내부에서조차 “재미”의 기준이 극단적으로 달라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시기에는 팀 전체가 비교적 비슷한 뿌리를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이겁니다.
'이게 재밌다'라고 말했을 때, 다수가 '응, 그거 알아'라고 고개를 끄덕이던 시대. 그 공감대 덕분에 우리는 큰 갈등 없이 방향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아주 소소하고, 아주 인간적인 조건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엄청난 생산성의 바탕이 되었지요.
팀이 바뀌지 않았다는 기적
이런 환경에서 저는 2년 8개월을 보냈습니다. 중간에 회사 건물도 한 번 옮겼습니다. 그런데도 팀 구성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이건 정말 기적 같은 일입니다.
게임 업계에서 3년 가까이 같은 멤버로 같은 프로젝트를 이어간다는 건 드문 경험입니다. 누군가는 더 좋은 조건으로 빠집니다. 누군가는 번아웃으로 나갑니다. 누군가는 회사가 구조를 바꾸면서 다른 팀으로 이동합니다. 누군가는 기획과 갈등이 생겨서 반강제로 밀려납니다. 그런데 우리는 거의 바뀌지 않았습니다. 여기에는 운도, 호흡도, 서로에 대한 신뢰도 다 섞여 있었습니다.
“쟤는 믿을 수 있다.”
“쟤하고 하면 내 말이 통한다.”
“쟤한테 맡기면 내가 그걸 일일이 감시하지 않아도 된다.”
이 말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에 쌓인 신뢰의 언어입니다. 저는 이 팀 덕분에 처음으로 이런 감정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 회사가 꼭 지옥만은 아니구나.”
“아, 같은 방향을 보고 만드는 사람들이랑 일하면 이게 즐거울 수도 있구나.”
“아, 이게 ‘같이 만든다’라는 거구나.”
이 감각은 그 후 제 커리어에 아주 큰 기준이 됩니다. 돈이 얼마냐, 이름이 유명하냐, 조건이 좋냐도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때 이후로 이런 질문을 항상 하게 됩니다.
“여기서도 나는 재미를 만들 수 있을까?”
“여기 사람들과 나는 같은 게임을 보고 있을까?”
그 시기는 지금도 내 기준이다
시간이 흐른 뒤에도 저는 그 시기를 떠올리면 마음이 느슨해집니다. 흐뭇해집니다.
“아 그때 그 애들… 진짜 잘 버텼지.”
“웃다가 밤샜지.”
“망한 빌드 돌려놓고 서로 욕하고, 또 어떻게든 고쳐냈지.”
“아침에 피자 박스 그대로 있는 채로 출근하던 날도 많았지.”
그때의 저는 처음으로, 단순히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게임을 만드는 사람'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건 이겁니다. 저는 여전히 ‘재미’를 찾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건 제 정체성이었습니다.
게임 자체의 재미.
만드는 과정의 재미.
같이 만드는 사람들과의 재미.
재미는 사소한 단어처럼 보이지만, 사실 굉장히 정치적인 단어입니다.
어떤 팀은 재미보다 일정을 우선으로 둡니다.
어떤 팀은 재미보다 과금을 우선으로 둡니다.
어떤 팀은 재미보다 외부 투자자의 취향을 우선으로 둡니다.
그런데 저는 제 안에서 아주 명확하게 대답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아직 재미 쪽에 서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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