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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운의 영향.

by 곽준원
다시 출근한다는 것의 의미

2월, 저는 다시 출근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말은 단순히 '직장이 생겼다'라는 행정적인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그건 제 삶에 '아침에 일어나 나갈 곳이 있다.'라는 구조가 다시 생겼다는 뜻이었습니다. 이전까지의 저는 연속된 두 번의 권고사직을 겪었고, 한 달 동안 방 안에 웅크려서 세상과 거리를 두고 숨만 쉬고 있었습니다.


그 시기를 버티면서 제가 들었던 가장 잔인한 질문은 '나는 사회에 쓸모 있는가?'였습니다. 그 질문은 사람을 무너뜨립니다. 존재 자체를 흔들어버리죠. 그런데 2월, 저는 다시 한번 그 질문에 아주 작은 답을 내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는 다시 투입되었다.'


이건 큰소리로 말하는 승리 선언은 아니었습니다. 자랑도 아니었습니다. 굉장히 조용하고 실용적인 선언이었습니다.


'나는 다시 일할 수 있다.'

그거면 됐습니다.

그 시기만큼은 정말 그거면 충분했습니다.


케로로라는 확실한 얼굴

새로운 회사는 횡스크롤 RPG를 만들고 있었고, IP(지식재산권)는 ‘케로로’ 애니메이션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케로로 중사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 2D 액션 RPG 컨셉이었지요. 이건 생각보다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게임 개발을 실제로 해보면, '무엇을 만들 것인가?'보다 '어떤 느낌으로 만들 것인가?'에서 막히는 경우가 정말 많습니다.


주인공이 어떤 표정을 짓는지, 적의 디자인 톤이 어떤지, 배경은 유머를 깔지 진지함을 깔지, 이런 것들을 한 줄로 정리하지 못해서 프로젝트가 초반에 수개월째 표류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런데 케로로는 시작부터 컨셉이 명확했습니다.


밝고 가벼운 톤, 장난스럽고 군인 놀이라는 B급 유머 감각, 캐릭터의 실루엣이 확실히 구분되는 스타일. 이건 엄청난 축복이었습니다. '색깔을 어떻게 할까?' 같은 질문에 합리적인 답이 이미 존재한다는 건, 초반 팀의 시간을 엄청나게 아껴줍니다.


말하자면, 우리는 완전히 백지에서 시작한 게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사람들이 알고 있는 얼굴에서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이건 신생 팀에게 엄청난 안정제입니다. 그리고 신입에게는 더 큰 안정제였습니다.


“내가 뭘 만들고 있는지 설명 가능한 상태”

이건 초반 커리어에서 정말 중요합니다.


팀 구성: 기회라는 이름의 기형 구조

클라이언트 프로그래머 팀은 총 네 명이었습니다. 팀장을 제외하면 모두 신입이었지요. 저를 포함해서 세 명은 다 초보라 봐도 되는 상태였습니다.


저는 1년이 채 안 된 경력자였습니다. 사실상 신입 취급이었고, 나머지 두 명은 막 졸업한 완전한 신입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이 회사가 첫 회사였습니다. 이 구성을 밖에서 들으면 대부분 이렇게 말할 겁니다.


“저런 팀으로 무슨 게임을 만들어?”

“저건 위험한데?”

“실력자 하나 빼고 다 신입이면 일이 돌아가겠어?”


맞는 말입니다. 위험합니다. 정상적인 업계 감각으로 보면 불안한 팀입니다. 그런데 이 구조는 저에게는 거의 인생에서 한 번 올까 말까 한 기회였습니다. 보통 신입은 이렇게 시작하지 못합니다.


일반적인 경우는 이렇습니다. 이미 굴러가는 프로젝트에 투입돼서 이미 짜인 코드의 일부를 고치고 이미 운영 중인 시스템에서 갑자기 터진 버그 픽스를 담당하면서 '그거 그냥 네가 맡아.' 하고 단위 업무를 하나씩 받아서 쌓는 방식으로 배우죠.


말하자면, 신입은 흔히 '손 하나' 역할입니다. 전체를 이해할 필요는 없고, 하나씩 맡은 걸 처리하면 됩니다. 그런데 이 팀은 달랐습니다. 프로젝트는 이제 막 걸음마 단계였습니다.


그게 무슨 뜻이냐면 맵 위를 캐릭터가 뛰어다닙니다. 그게 전부였습니다. 몬스터 개념은 아직 구체적으로 잡히지 않았습니다. 전투 로직은 없었습니다. 성장 시스템은 구상조차 안 되어 있었습니다.


스킬, 장비, 인벤토리, 드롭, 퀘스트 - 다 아직 기획 단계였습니다. 사실 기획 문서도 불완전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뭐든 만들 수 있는 시점'이었습니다. 신입 입장에서 이건 미친 기회입니다.


왜냐하면 초반 설계, 시스템 구조, 프로토콜, 데이터 흐름, 화면 흐름, 그 모든 것에 손을 얹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건 나중에 이렇게 말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처음부터 있었다.'


신입에게 '처음부터 있었다'라는 한 문장은 몇 년 치 경력보다 강력할 때가 있습니다. 저는 그걸 이때 처음 이해했고, 나중에 아주 크게 체감하게 됩니다.


운이 처음으로 나에게 미소 지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건 정말 운이었습니다. 노력 이전에 운이었습니다. 앞선 두 번의 회사에서는 운이 저를 짓눌렀습니다. 프로젝트가 접히고, 팀이 통째로 잘리고, 연대책임으로 정리되고, 제 의지와 상관없이 하루아침에 버려졌습니다. ‘운’은 통제 불가능한 변수가 아니라, 제 커리어를 계속 부수는 돌덩이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이 회사에서의 ‘운’은 이렇게 작용했습니다. 제가 완전히 무너지기 전에 다시 한번 기회를 주는 타이밍으로 제안을 받았다. 기획 초기 단계에 합류하게 되었다.


팀장이 신입들을 믿고 맡기는 스타일이었습니다. 즉 ‘야, 네가 한 번 짜봐’라는 방식의 자유도가 존재했습니다. 프로젝트가 아직 틀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에, 제가 의견을 내면 실제로 그것이 구조에 반영될 수 있었습니다. 제 실력만으로는 절대 얻을 수 없었던 위치였습니다.


이건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저는 천재도 아니었고, 이미 인정을 받은 베테랑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업계에선 '경력 반 년짜리, 앞 회사에서 금방 나간 애'로 보일 수도 있는 위치였거든요. 그런데도 지금 제 앞에는 ‘설계’라는 단어가 실물처럼 놓여 있었습니다.


“이 스테이지 구조를 어떻게 나눌까?”

“캐릭터의 상태는 어떤 식으로 관리할까?”

“서버랑 주고받을 정보는 뭐가 핵심일까?”

“이걸 실시간으로 동기화할 건가, 아니면 구간 단위로 끊어서 보낼 건가?”


이런 대화 안에 제가 들어가 있었습니다. 이건, 신입에게 오지 않는 기회입니다. 정말로 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건 운이었습니다. 내 힘만으로 만들어낸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 운이 내 앞에 왔을 때 움켜쥐려는 마음은 분명 내 것이었습니다.


사실 나는 ‘순수 코더’는 아니었다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가고 싶은 점이 있습니다. 저는 전형적인 의미에서의 '코더'는 아니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지금도 그렇습니다. 저는 그냥 코드만 잘 치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흥미를 느낀 지점은 항상 이거였습니다.


“이거 유저가 했을 때 재밌을까?”

“이 템포에서 지루해하지 않을까?”

“이 연출이 기분 좋은가, 아니면 귀찮은가?”

“이 타격감이면 이 몬스터를 때릴 이유가 있는가?”


즉 제 관심은 ‘작동하냐’가 아니라 ‘즐길 만하냐’였습니다. 저는 그 감각을 코드에 반영하고 싶었습니다. 말하자면 저는 기획과 프로그래밍의 중간에 서고 싶었던 사람입니다.


'플레이어로서의 감각'을 코드로 번역하고 싶었던 사람. 문제는 업계가 그걸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업계는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애매한 사람 말고, 한 분야에서 날카로운 사람 데려와.”


뚜렷한 기획자.

뚜렷한 엔진 개발자.

뚜렷한 서버.

뚜렷한 테크 아티스트.

명확할수록 생산성이 예측 가능하거든요.

관리하기가 쉽습니다. 반면 저 같은 사람은 이렇게 보일 수 있습니다.


“너 하고 싶은 건 많은데, 너의 전문은 뭐야?”

“너를 어디에 꽂아야 하는데?”

저는 늘 그 질문 앞에서 애매했습니다.


그 애매함은 이후 제 커리어 전체를 따라다니는 특징이 됩니다. 지금도 저는 그 애매함 위에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 기록 자체가, 그 애매함 덕분에 쓰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의 저는 그걸 몰랐지만, 지금 돌아보면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미 특이한 개발자였습니다. 코드와 재미 사이, 시스템과 체험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서 있는 사람. 그게 제가 편한 자리였습니다.


실무에서 배운 것들

이 팀에서 저는 단순히 코드만 배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현업의 언어, 협업의 방식, 그리고 게임이 실제로 하나의 서비스로 가기까지의 단계를 처음 제대로 체험했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그래픽 컨셉 변경. 케로로라는 IP로 시작했지만, 중간에 아트 방향이 크게 바뀌는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이건 너무 어린 층만 겨냥한 것 같다', '좀 더 액션성을 강조하자', '타격감을 좀 더 과격하게 만들자' 같은 이야기가 나오면 아트 전반이 통으로 교체되기도 했습니다.


그건 곧 UI, 애니메이션 타이밍, 이펙트 로직까지 다 연결되는 문제였습니다. 저는 그 연결 관계를 직접 겪었습니다. '아트가 바뀌면, 코드도 바뀐다.' 단순히 예쁘게 바꾸는 게 아니었습니다. 구조 전체가 재해석됐습니다.


초반에는 서버 개발자가 없었습니다. 다시 말해, '이건 서버에서 처리해야 하는데...'라고만 생각하고 넘겨둘 사람이 없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다 서버 프로그래머가 합류했습니다. 그 순간부터 회의의 언어가 달라졌습니다.


“이건 클라이언트에서만 들고 있으면 안 됩니다.”

“저는 이 값을 신뢰할 수 없습니다.”

“치트 가능 영역이죠, 수정해야 합니다.”

“데이터 검증은 서버에서 하고, 클라이언트는 연출만 맡아주세요.”


이런 대화는 책으로 읽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이건 체험해야 이해됩니다. 그 순간 저는 비로소 ‘온라인 게임’이 뭔지를 몸으로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서버와 클라이언트가 어떤 데이터를 주고받을 것인가. 이건 단순한 기술 얘기가 아닙니다. 이건 게임 철학입니다. ‘어떤 정보는 서버가 결정권을 갖는다’는 철학이고, ‘어떤 정보는 클라이언트가 부드럽게 연출만 책임져도 된다’는 판단입니다. 저는 그 경계를 보는 자리 안에 있었습니다.


신입으로서 이 영역에 참여할 수 있었다는 건, 다시 말하지만, 로또 맞은 겁니다. 이걸 3년 차까지 못 배우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 경험들은 그냥 '경험했다.'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 경험들은 저를 '그냥 신입'이 아니라 '초기부터 게임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본 경력자'로 만들어주었습니다. 이건 엄청난 차이입니다. 이건 다음 회사에서 면접 볼 때, 자기소개 첫 줄을 바꿔버리는 차이입니다.


"저는 운영 중인 기능 유지보수만 했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과 “저는 프로젝트 초기 단계에서 시스템을 같이 정의해 봤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완전히 다르게 취급됩니다. 그리고 저는 후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건 다시 말하지만, 엄청난 운이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시도’의 대가

보통 이런 얘기를 하면 이렇게 말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래도 결국엔 다시 도전해서 기회를 잡았잖아. 결국 버티니까 되잖아.” 겉으로 보면 맞습니다.


그런데 그 말에는 빠진 전제가 하나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한 번 넘어지면, 다시 서는 데에 드는 비용이 너무 큽니다. 한 번 실패했다고 해서 '괜찮아, 다시 해봐.'라고 품어주는 구조가 아직 넉넉하지 않습니다. 특히 초반 커리어일수록 더 그렇습니다. 경력이 짧을수록 실패는 '아직 검증되지 않은 사람'으로 번역됩니다.


'검증 안 된 사람'은 곧 '리스크'라는 말로 바뀝니다. 리스크는 곧 '안 뽑는 게 낫겠다.'가 됩니다. 그러니까 신입에게는 사실상 기회가 많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넘어지면 그대로 끝나는 경우가 정말 많습니다. 제가 그 끝에서 한 달 동안 방 안에 웅크려 있었던 이유도 바로 그겁니다.


“만약 이번에도 안 되면, 나는 진짜로 빠져나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 공포가 너무 컸습니다.

그래서 저는 운이 좋았다고 말합니다.

진심으로 운이 좋았습니다.


이번에 잡은 기회가 없었다면, 저는 업계 바깥으로 그냥 밀려났을 겁니다. 제 마음은 여전히 게임을 하고 싶었겠지만, 제 현실은 거기서 멈췄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멈춘 사람은 다시 돌아오기 어렵습니다.


그건 의지의 문제가 아닙니다.

환경의 문제입니다.


솔직하게 말해보자면..

이 시기의 저는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그 기회를 100% 활용했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지금 시점에서 돌아보면, 저는 더 배울 수 있는 상황이 정말 많았습니다.


팀장에게 더 물어볼 수도 있었고, 구조를 더 깊이 이해하려고 파고들 수도 있었고, 네트워크 구조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자리를 잡아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의 저는 여전히 불안했습니다.


“내가 또 잘리면 어떡하지?”

“이 회사도 갑자기 문 닫으면 어떡하지?”

“내가 너무 나대면 찍히지는 않을까?”


아직 제 안에는 늘려진 어깨 대신 웅크린 등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건 그전까지 당한 일의 후유증이었습니다. 그래서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저는 이 기회를 완벽하게 쓰지 못했습니다. 저는 당시의 제 자신을 '조금은 소극적이었던 사람'으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약간의 아쉬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시기의 저는 이렇게도 기억됩니다.


“그래도 떠나지 않고 남아 있던 사람.”

그 자체가 저에게는 큰 의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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