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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연애 그리고 결혼과 출산.

by 곽준원
독립을 향한 마음, 연애보다 먼저였던 동기

회사를 다닌 지 몇 개월쯤 지났을 때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지인의 소개로 만났고, 첫 만남부터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서로의 생각이 다를 때도 예의 없이 부딪히지 않았고, 모르는 영역이 나오면 설명해 주고 받아들이는 태도가 너무 편안했습니다. 그 편안함이 호감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제 마음속에는 연애 감정보다 앞서 있었던 것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독립하고 싶다.'


저는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아버지의 시선을 계속 의식하며 살아왔습니다. 어떤 학교를 다니는지, 어떤 직장을 다니는지,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는지. 인생의 기준이 나에게서가 아니라 바깥에서 정해지는 느낌이 늘 있었습니다. 부모님과의 거리감은 물리적인 거리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구조였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그 구조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 욕구는 단지 집을 나가고 싶다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이제부터 나는 나로 살고 싶다.'라는 마음이 너무 강했습니다.


그래서였을지도 모릅니다. 연애를 시작하자마자 저는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를 굉장히 빠르게 ‘다음 단계’로 생각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확인하고 관계를 다져가는 안정기보다 “우리, 결혼하자”라는 말을 먼저 꺼내고 싶었던 사람이 저였습니다. 그 시점에서의 결혼은 저에게 사랑의 완성이라기보다 자립의 선언이었습니다.


“왜 이렇게 빨리 결혼을 생각해?”라고 누군가 물었다면 저는 아마 그때 이렇게 대답했을 겁니다.

“빨리 안정되고 싶어서요.”


하지만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그 ‘안정’은 감정적 안정이나 관계적 안정뿐 아니라 경제적, 사회적, 심리적 독립까지 전부를 포함한 단어였습니다. 저는 빨리 ‘내 인생’을 갖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내 인생’에는 아내가 자연스럽게 들어와 있었습니다.


“왜요?”를 묻지 않은 선택

공부에 대해서는 늘 “왜 이걸 해야 하죠?”라고 묻던 사람이었습니다. 회사에서의 업무지시에도 저는 납득이 안 가면 잘 움직이지 못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결혼 앞에서는 저는 그 질문을 던지지 않았습니다.


“왜 결혼하죠?”

“지금 우리가 결혼해서 얻는 건 뭔가요?”

“우리는 이 제도 안에서 어떤 책임을 지게 되나요?”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대신, 저는 결혼을 거의 '성인이 되면 통과하는 문장'처럼 받아들였습니다. 결혼은 검토의 대상이 아니라 통과 절차처럼 여겨졌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것은 성숙함이라기보다 미성숙함에 가까웠습니다.


저는 제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관계 안에서 편안한지, 어떤 부분이 불안한지조차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아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희는 둘 다 완전히 준비된 어른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의 미래를 약속했습니다. 연애 기간은 1년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짧은 시간 안에 우리는 연애를 ‘닫고’, 결혼을 ‘연다’라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 결정에는 서로에 대한 애정도 있었지만, 동시에 제가 무의식적으로 품고 있던 욕망. '빨리 내 삶을 가지자'가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와서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그건 참 자기중심적인 출발점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부끄럽더라도 그것이 그때 제 본심이었습니다.


함께 보낸 초반의 결혼 생활

결혼 이후의 생활은 제 기준으로 보면 충격이자 기쁨이었습니다.


'아, 내가 지금 누구와 함께 살고 있구나.'

'이 사람과 나란히 서서 앞으로를 이야기하고 있구나.'


그 감각은 단순히 동거가 아니라 ‘동반’을 체험하게 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주말마다 함께 나갔습니다. 큰 계획 없이 근교로 나가기도 하고, 동네의 작은 가게를 찾아다니기도 했습니다. 저는 원래 술을 즐기는 편이 아니었고 맥주의 맛도 잘 몰랐습니다. 그저 맥주는 쓴 음료라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아내는 여러 세계 맥주를 소개해주었습니다. 라벨을 보며 “이건 이 나라의 이런 스타일이야”라고 설명해 주는 모습은 마치 가이드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걸 진짜 신기해했습니다.


“세상에는 내가 안 가본 세계가 이렇게 많구나.”


반대로 저는 제가 알고 있는 세계를 아내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게임과 시스템, 개발의 이야기, 어떤 장면이 왜 짜릿하고 왜 지루한가에 대한 제 방식의 분석들.


아내는 게임 업계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제가 하는 말을 완전히 기술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도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그게 너한테 왜 중요한데?”라고 물어주는 사람이 생겼다는 사실 자체가 저를 설레게 했습니다.


그 시기 우리는 서로를 확장시키는 사람이었습니다. 서로의 세계를 교환하고, 그 교환을 즐겼습니다. 저는 그것이 결혼 초반의 가장 큰 행복이었다고 기억합니다.


다음 단계라는 이름: 임신

결혼 다음에는 자연스럽게 아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언제 아이를 가질까?”라는 질문은 어느 순간 “아이를 갖게 되면 어떻게 할까?”라는 구체적인 합의로 바뀌었습니다.


당시에도 이미 '임신이 예전처럼 자연스럽지 않다', '출산 연령이 높아지면 임신 자체가 어려워진다'라는 이야기가 주위에서 많이 들렸습니다. 우리는 서로 대화를 나눴습니다.


“아이를 낳을 준비가 정말 완벽한 상태가 올까?”

“우리가 모든 걸 갖출 때까지 기다리면, 그 ‘모든 걸 갖춘 시점’이 실제로 오긴 할까?”

“나중에 나이 들어서 더 힘들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이 대화는 계산처럼 들리지만 사실 굉장히 솔직한 고민이었습니다. 우리는 완벽한 조건을 기다리는 대신 현실적인 방향을 선택하기로 했습니다. 결국 내린 합의는 간단했습니다.


“아이 생기면 낳자.”


말하자면, 아이는 계획표에 억지로 끼워 넣는 존재가 아니라 오면 받아들이는 존재였습니다. 그게 우리가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아빠가 된다고?”라는 낯선 말

결혼하고 약 7개월쯤 지났을 때 아내는 임신 소식을 전했습니다.


“짜잔. 6주라고 해.”


그 순간 제가 느낀 감정은 한 단어로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드라마에서 흔히 나오는 장면처럼 '눈물이 핑 돌고 말문이 막히고 바로 기쁨이 폭발'하는 감정은 아니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얼떨떨했습니다. 머릿속에 전구가 켜지는 듯한 환희가 아니라, 갑자기 현실이 조용히 내려앉는 느낌이었습니다.


“아… 내가… 아빠가 된다고?”

그 말은 너무 컸습니다.


‘아빠’라는 단어에는 책임, 경제력, 보호자, 기준점, 방향, 희생 같은 단어가 다 묶여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그걸 한꺼번에 받아들이기는 어려웠습니다.


제 마음속의 감정선은 이랬습니다.

기쁨 → 아직 실감이 안 나서 멀리서 보이는 빛 같은 느낌

긴장 → 손에 닿는 무게 같은 느낌

두려움 → 지금 내 능력으로 이걸 다 감당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


그래서 '행복'이라고 부르기엔 조금 다르고, '불안'이라고만 부르기에도 부족한 상태였습니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이랬습니다.


“이제부터는 진짜다.”


아이가 태어난 순간, 제 삶의 주어가 바뀌었다

출산의 순간 이후에는 분위기가 급격하게 달라졌습니다. 아이를 처음 안았을 때의 감정은 분명했습니다.


“아, 이제부터 나는 이 아이의 아빠구나.”

이건 논리적으로 이해되는 개념이 아니었습니다.

그건 거의 반사에 가까웠습니다.


아이가 울고, 작고, 따뜻하고, 의존적이고, 나를 필요로 하는 존재라는 사실이 온몸으로 전해졌습니다. 그 즉시 책임감이 생겼습니다. 시간차가 없었습니다. 마치 스위치처럼 '나는 이 존재의 기반이 되어야 한다'라는 의무감이 켜졌습니다.


그 책임감은 추상적인 책임감이 아니었습니다. 아주 구체적인 책임감이었습니다. 병원비는 어떻게 할까. 분유값, 기저귀값은 어떻게 유지할까. 월세 혹은 전세, 주거 안정은 가능할까. 보험은 들어야 하나. 비상시에는 내가 뭘 포기해야 하나.


저는 그 순간 처음으로 '내가 벌어온 돈'과 '가족이 살아갈 돈'을 분리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 둘은 같은 문장이 됐습니다. 그 자리에서 바로 하나로 묶였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더 이상 개인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가장이었습니다.


맞벌이가 아닌 상황에서의 체감 무게

아이를 낳고 나면 흔히 “아빠 됐구나, 축하해”라는 말을 듣습니다. 축하는 감사한 일입니다. 하지만 축하와는 별개로, 제 어깨 위에는 이전과 비슷하지 않은 무게가 올라왔습니다.


출산 직후에는 아내가 경제활동을 하기 어려웠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아이를 돌보는 데에 시간이 전부 빨려 들어갑니다. 그렇다면 그 시기의 가계는 누구 손에 달려 있나? 제 손이었습니다. 제 느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자면 이랬습니다.


“부담이 한 두 배가 아니라 네 배는 증가했다.”

단순히 혼자 먹고사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만약 내가 지금 일을 잃으면’이라는 가정이 훨씬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전에 저는 잘리고 나면 그냥 저만 무너지면 됐습니다. 방에 틀어박혀 게임을 하며 한 달을 버텼던 시기도 그저 제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아니었습니다. 제가 무너지면, 아내도 같이 흔들립니다. 아이도 같이 흔들립니다. 이건 굉장히 본능적인 공포였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제가 쓰러질 자유가 없다는 감각이었기 때문입니다.


“재미있어서 만든다”에서 “성공해야 한다”로

그리고 이 지점에서 제 직업에 대한 태도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그전까지의 저는 게임 개발을 “재미를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해보고 싶은 시스템

유저가 느낄 손맛

스킬의 타이밍과 타격감

친구랑 같이 놀다가 웃게 되는 그 장면


이게 제 기준이었습니다. 저는 거기에 진심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난 이후, 그 기준 위에 새로운 문장이 올라탔습니다.


'이건 반드시 수익을 내야 한다.'


말이 조금 딱딱해 보일 수 있지만, 그게 사실이었습니다. 이제부터 게임 개발은 저에게 '하고 싶은 일'이면서 동시에 “살아야 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제 눈앞의 목표가 바뀌었습니다.


이전: “이거 재미있지 않아?”

이후: “이거 나가서 유지될 수 있나?”


물론 마음 깊은 곳에는 여전히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건 제 뿌리였습니다. 하지만 책임이 생기면 우선순위가 조정됩니다. 저는 더 이상 회사의 리스크를 가볍게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 게임이 실패하면'은 곧 '우리 가족의 생활이 흔들린다'라는 문장이 되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 시점부터가 진짜 직업인이 되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때 처음으로 제 노동의 의미를, 제 가족과 직접 연결해서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건 다시 말해, 제가 무너지면 안 된다는 뜻이기도 했습니다.






#연애 #결혼 #출산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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