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꾸준함이 가져다준 변화.

by 곽준원

살다 보면 '꾸준히 한다'는 말이 이렇게까지 어려운 일인가 싶을 때가 많습니다. 머리로는 다 알고 있습니다. 작은 행동도 오랫동안 이어가면 큰 힘이 된다는 것, 하루의 10분이 모여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는 것. 그런데 막상 해보면, 우리는 며칠을 지나지 못하고 미끄러지듯 포기하곤 합니다.


66일을 버티면 습관이 된다는 말이 유행처럼 떠돌았던 적이 있습니다. 저도 그 말을 믿고 날짜를 세어 본 적이 있습니다.


“오늘이 12일 차, 이제 54일만 더 하면 된다.”


하지만 정말 66일을 채워도 습관으로 자리 잡지 않는 행동이 분명 존재합니다. 특히 독서와 글쓰기는 그렇습니다. 두 달을 꼬박 해도, 어느 날 툭 끊어지면 아무렇지 않게 사라지는 버릇입니다.


게임은 다릅니다. 몬스터를 잡으면 경험치가 올라가고, 레벨이 오르면 화면 중앙에 화려한 이펙트가 터집니다. 스탯이 숫자로 명확하게 표현되고, 장비 하나만 바꿔도 공격력이 눈에 띄게 상승합니다. 게임에서의 성장 곡선은 말 그대로 '보이는 선형 함수'입니다. 잡은 몬스터 수만큼, 수행한 퀘스트 수만큼, 캐릭터는 정직하게 강해집니다.


하지만 독서와 글쓰기는 다릅니다. 책을 열심히 읽는다고 해서 3권째 되는 날, 머릿속에 '지식 레벨업 +1'이라는 메시지가 뜨지 않습니다. 블로그에 글을 열 편, 스무 편 써도 '글쓰기 숙련도 +3' 같은 안내창이 뜨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독서의 보상 곡선을 로그 함수에 가깝다고 느낍니다. 처음에는 거의 평평하게 눕다시피 한 곡선. 눈으로 봐서는 도무지 올라가는 기색이 보이지 않고, “이게 맞나?” 싶은 회의감이 들게 만드는 그래프. 그러다가 어느 순간, 어느 정도 축적이 이루어진 뒤에야 아주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우상향 하는 움직임을 보여줍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글을 쓸 때를 떠올려 보면, 시간은 오래 걸리는데 도무지 실력이 는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문장을 다듬어도 어딘가 어색하고, 다 쓴 글을 다시 읽으면 “이걸 왜 썼지..” 하는 허망함마저 밀려옵니다. 그때 많은 사람이 포기합니다.


“나는 글 재능이 없나 봐.”

“이 시간에 차라리 딴 걸 하는 게 낫겠다.”


운동도 비슷합니다. 살을 빼고 싶어서, 건강을 지키고 싶어서 운동을 시작하지만, 처음 몇 주는 몸만 아프고 체중계 숫자는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거울을 봐도 변화가 보이지 않고, 허리띠 구멍도 그대로입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이게 의미가 있긴 한 건가” 싶은 생각에 운동화 끈을 더 이상 묶지 않게 됩니다.


즉각적인 보상이 나타나지 않아서 포기하는 것. 사실 이것이 꾸준함을 가로막는 가장 큰 벽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 보면, 그래서 더더욱 '꾸준히 하는 사람의 숫자가 적은 것'이기도 합니다.


사람마다 포기하는 이유는 정말 다양합니다. 시간이 없어서, 몸이 피곤해서, 지금 당장은 긴급한 일이 더 많아서, 해도 달라지는 게 없어 보여서.


하지만 반대편에는 이런 사람들도 있습니다. 보상이 느리게 오는 줄 알면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를 믿고 묵묵히 행동을 이어가는 사람들. 저는 그 사람들의 공통점이 '진가를 이미 한 번 맛본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 번이라도 꾸준한 행동이 가져다주는 변화를 경험해 본 사람은 그다음부터는 쉽게 멈추지 않습니다. 그게 얼마나 느리게 다가오든, 언젠가는 반드시 모습을 드러난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저는 40년 가까이 책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책은 시험을 위한 도구에 불과했습니다. 문제집과 참고서에 밑줄을 긋기는 했지만, 그건 이해보다는 점수를 위한 표시였습니다.


사회에 나와서는 더 멀어졌습니다. 개발에 필요한 문서, 기술 관련 글만 간신히 훑어볼 뿐 한 권의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일은 드물었습니다.


그러던 제가, 어느 날부터 독서와 글쓰기를 '생존 도구'처럼 붙잡기 시작했습니다. 불안한 마음을 해결해보고 싶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서, 그리고 삶의 방향을 조금이라도 바꾸고 싶어서.


처음에는 정말 어색했습니다. 책을 읽는 속도도 느렸고, 글을 쓰려면 한 문단을 놓고 몇 번이고 망설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지점을 지나면서부터 독서는 제 삶의 일부가 되었고, 글쓰기는 숨 쉬듯 자연스러운 행동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누군가 이렇게 말해도 예전만큼 흔들리지 않습니다. “독서와 글쓰기, 그거 너무 어렵지 않아요?” 물론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제 이렇게 덧붙입니다. “어렵긴 한데, 그만큼 얻는 게 큽니다. 이제는 안 하면 오히려 불편할 정도예요.”


꾸준함이 가져다준 변화는 실제로 제가 하는 일 곳곳에서 드러났습니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 예전보다 제 생각을 더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머릿속에서만 맴돌던 생각들이 조금씩 문장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업무 진행 상황을 글로 보고할 때도 예전처럼 문장 하나를 두고 오랫동안 붙잡고 있지 않게 되었습니다. 핵심을 먼저 정리하고, 상대의 관점에서 읽기 쉽게 구조를 잡는 일이 조금은 익숙해졌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말합니다.


“보고서 참 잘 쓰시네요.”

“설명이 알기 쉽게 정리되어 있네요.”


저는 압니다. 그 칭찬의 배경에는 8년 넘게 이어온 독서와 글쓰기의 시간이 있다는 것을요. “거의 모든 일에서 꾸준히 하는 사람은 드물다. 10명 중 9명은 포기하니까 버티기만 해도 성공이다.” 이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걸, 저는 제 블로그가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8년 동안 올린 글이 어느새 1,000편을 넘어섰습니다. “저는 꾸준한 사람입니다.”라고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아도, “저는 8년 동안 블로그에 1,000편 넘는 글을 썼습니다.”라고 말하면 사람들의 반응이 달라집니다.


“와... 진짜요?”

“그 정도면 엄청 꾸준하신 거네요.”


꾸준함은 이렇게 '쌓인 결과물'로 말합니다. 성과가 화려하지 않더라도, 축적된 양 자체가 이미 신뢰가 됩니다. 제가 생각하는 ‘나의 가치’에도 이 꾸준함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나라는 사람은, 어떤 것을 오래도록 쌓아갈 수 있는 사람인가.”


이 질문에 블로그의 글들이 조용히 대답해 주는 느낌입니다. 물론, 역량은 어느 수준까지는 빠르게 자라다가

그다음부터는 더디게 성장합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이 구간에서 포기합니다.


“이제는 예전처럼 늘지 않네.”

“이 정도면 된 것 같기도 하고.”


머리로는 알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실력에 도달하면, 그다음 성장을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요. 하지만 그 사실을 몸으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구간을 건너기 전에 자주 발길을 멈추곤 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제 성향을 하나 믿습니다.


“지연 보상이 주어지는 일에 꽤 끈기를 보이는 사람이다.”


당장 드라마틱하게 변하지 않아도, 언젠가는 이 시간이 어디로 이어질지 궁금해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여전히 그 곡선을 따라가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독서와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저는 블로그에 쌓인 1,000편의 글을 단지 숫자로만 남겨두고 싶지 않습니다. 그 글들을 바탕으로

또 다른 축적물을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책이 될 수도 있고, 강의가 될 수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 건네는 작은 안내서가 될 수도 있겠지요. 확실한 건 하나입니다. 꾸준함은 언젠가 '눈에 보이는 형태'로 바뀐다는 것입니다.


숫자로, 파일로, 페이지로, 혹은 한 사람의 태도로. 그래서 오늘도 저는 조용히 키보드를 두드립니다. 화려하지 않아도, 속도가 느려도, 포기하지 않고 한 줄씩 쌓다 보면 언젠가 제가 궁금해하던 그 지점, '꾸준함의 종착역' 어딘가에 도달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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