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1인 브랜드를 꿈꾸는 직장인.

by 곽준원

언젠가부터 회사에서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자꾸만 이런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언제까지 이 건물에, 이 자리에서, 이 모니터 앞에서 일하게 될까.”


연봉협상 시즌이 되면 모두가 숫자 이야기를 합니다. 얼마 올랐다, 적게 올랐다, 이직을 해야겠다, 버텨야겠다. 저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숫자보다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이 있었습니다.


“이 회사가 아니게 되면, 나는 어떤 사람으로 남을까.”


회사라는 간판이 떨어져 나갔을 때, 제 이름 앞에 무엇이 남을지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냥 '개발자입니다'라고 말하면 다 설명이 되는 줄 알았거든요.


요즘 ‘1인 브랜드’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누군가에겐 너무 마케팅적인 단어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저에게는 조금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마치 이렇게 묻는 말처럼 들렸습니다.


“회사를 벗겨내고, 직함을 벗겨내고, 당신이라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사실 제 꿈은 단순했습니다.

“게임 개발자가 되면 좋겠습니다.”


이 한 문장을 품고 꽤 오랫동안 살아왔습니다. 학생이었을 때도, 신입일 때도, 경력이 쌓인 뒤에도 이 명사는 늘 제 앞에 있었습니다. ‘게임 개발자’.


어느 날 한 책에서 이런 문장을 읽었습니다.

“꿈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여야 한다.”


처음에는 잘 와닿지 않았습니다. 대통령, 의사, 개발자, 과학자. 세상이 말하는 꿈은 대부분 명사였으니까요. 그런데 조금 더 곱씹어 보니 이렇게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대통령이 되는 게 꿈입니다”가 아니라 “나는 어떤 나라를 만들고 싶은 사람입니다.”

“나는 의사가 되는 게 꿈입니다”가 아니라 “나는 아픈 사람의 고통을 덜어주고 싶은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저의 경우는 이렇겠지요. “나는 게임 개발자가 되고 싶습니다”가 아니라 “나는 사람들이 즐겁게 플레이할 수 있는 세계를 만드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이렇게 꿈을 동사로 바꾸는 순간, 이상하게도 마음이 약간 뜨거워졌습니다. 명사로서의 ‘꿈’은 마치 취득해야 하는 자격증처럼 느껴졌습니다. 따내면 끝나는 것. 그런데 동사의 꿈은 계속해서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었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으로, 어떤 행동을 하는 존재로 남고 싶은가.”


이 질문은 지금도 쉽게 끝나지 않습니다.

한때 저의 꿈은 분명했습니다.

“사람들이 즐겁게 플레이하는 게임을 만드는 사람.”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이 문장에 작은 꼬리가 하나씩 붙기 시작했습니다. 게임을 만들면서 회사에서, 집에서, 그리고 온라인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육아에 지쳐 밤마다 한숨을 쉬는 아빠. “나는 왜 이렇게 못났을까”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중년. 게임 개발자가 되기 위해 새벽까지 포트폴리오를 붙잡고 있는 취준생. 처음에는 이들의 이야기가 그저 스쳐 지나가는 타인의 사연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얼굴들이 이상하게 제 마음에 남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비슷한 시기를 지나왔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재우고 난 뒤, 잠든 얼굴을 보며 '나는 좋은 아빠인가' 고민하던 밤이 있었고, 경력 중간에 '나는 이제 더 성장할 수 있을까' 두려워 발을 떼지 못했던 시기가 있었고, 스크린숏 몇 장 붙인 포트폴리오를 들고 면접장에 가던 날의 떨림도 아직 몸에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점점 꿈의 문장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즐겁게 플레이하는 게임을 만드는 사람'에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은' 존재로요. 직업은 여전히 개발자일지 몰라도, 마음 깊은 곳에서 제가 바라는 모습은 조금 달라졌습니다.


누군가의 하루를 조금 덜 외롭게, 조금 덜 무기력하게, 조금 더 의미 있게 만들어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열망이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 마음을 어떻게 세상과 연결할 것인가였습니다.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만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 닿으려면, 결국 나를 ‘알려야’ 합니다. 이 지점에서 ‘1인 브랜드’라는 단어가 다시 떠올랐습니다. 예전의 저는, 솔직히 말하면,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들을 다소 불편하게 바라보았습니다.


“저 사람은 뭐가 그렇게 잘났다고 저렇게 나대지?”

“조용히 자기 할 일만 하면 안 되나?”


이렇게 말할 때, 사실 제가 두려웠던 것은 타인의 ‘과한 자신감’이 아니라, '혹시라도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면 어쩌지?'라는 저 자신의 두려움이었습니다. 보여주지 않으면 평가받지 않습니다. 말하지 않으면 틀릴 일도 없습니다. 조용히 있으면 욕먹을 일도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랫동안 ‘괜찮은 직장인’, ‘성실한 개발자’라는 틀 안에 몸을 숨기고 버텼습니다. 회사라는 브랜드 뒤에 숨어 있으면, 굳이 ‘나’라는 개인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아도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마음속의 질문은 자꾸만 고개를 들었습니다.


“정말 이래도 괜찮을까?”


만약 회사가 없어지고, 직함이 사라지고, 명함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날이 온다면, 나는 무엇으로 남을 수 있을까. 그 질문이 점점 선명해질수록, 조금씩 작은 실험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유튜브 채널을 열었습니다. 처음 카메라를 켰을 때, 표정이 어색해서 제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기가 힘들었습니다. 목소리는 생각보다 떨렸고, 말은 머릿속에서 정리한 것보다 훨씬 더 지저분하게 흘러나왔습니다.


“이걸 올려도 되나..”


업로드 버튼을 누르기 직전까지 수십 번을 망설였습니다.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글을 올리고 나면, 조회수 3, 공감 0이라는 숫자가 반겨줄 때도 많았습니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썼는데, 아무도 읽지 않는 건가.”


허무함이 밀려올 때도 있었지만, 신기하게도 같은 고민을 겪는 사람이 조용히 댓글을 남겨줄 때가 있었습니다.


“이 글을 읽고 조금 위로가 되었습니다.”


짧은 이 한 문장이, 그날 하루를 버티게 해주는 힘이 되었습니다. 클래스101에서 심리 관련 강의를 준비했습니다.


“내가 이런 걸 가르쳐도 되는 사람일까?”


자격감 부족에 시달리다가도, 지난 시간 동안 제가 읽었던 책들, 정리했던 노트들, 누군가와 나누었던 대화들이 머릿속에서 하나로 엮이는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완벽하진 않지만, 나의 경험과 공부가 누군가에게는 출발선이 되어줄 수도 있겠구나.”


그런 마음으로 조금씩 대본을 쓰고, 영상을 구성하고, 수강생이 앉아 있을 자리를 상상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이 모든 시도들이 거창한 ‘브랜딩 전략’에서 출발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나에게 쌓인 것들을, 더 이상 나 혼자만의 것으로 두고 싶지 않다'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작은 움직임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이 작은 움직임들은 저에게 중요한 믿음을 하나 심어주었습니다.


“브랜딩이란 결국, ‘나라는 사람’이 세상과 연결되는 방식이구나.”


누군가 멋지게 포장된 로고와 화려한 페이지를 떠올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저에게, 1인 브랜드란 좀 더 소박한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퇴근 후, 피곤한 몸으로 카메라 앞에 앉아 겨우 10분짜리 영상을 찍는 일. 출근 전, 눈을 비비며 노트북 앞에서 글 한 편을 완성하는 일. 주말에 카페 구석에 앉아 다음 강의의 구성을 고민하는 일.


이 일들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고, 당장의 수당이 붙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계속하게 되는 이유는, 그 시간이 ‘나만의 원석’을 다듬는 순간이라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직 완성된 보석이 아닙니다. 그저 채굴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모난 돌덩이에 가깝습니다. 가끔은 거칠게 다듬다가 스스로를 더 상처내기도 합니다.


이 방향이 맞는지 불안해서 밤에 잠이 잘 오지 않을 때도 있고, '지금처럼 회사 일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마음을 흔들어 놓을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오늘도 조금씩, 제 원석을 깎아 나가고 있습니다. 글을 한 줄 더 쓰고, 강의 대본을 한 문단 더 정리하고, 영상을 한 편 더 올리면서요. 누군가가 보지 않아도, 당장 반응이 없어도, 이 시간들이 언젠가 제가 되고 싶은 ‘동사’에 가까이 데려다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게임 개발자로 살아온 지난 시간들이 제게 기술과 경험을 선물해 주었다면, 이제 제가 꿈꾸는 1인 브랜드는 그 기술과 경험에 방향성을 부여해 줍니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싶은가.”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그 질문에 대한 저의 현재 답은 이렇습니다.


“저는, 누군가의 인생에서 아주 잠깐이라도 도움이 되는 말을 건네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한 번쯤은 뒤돌아보게 만드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혼자라고 느끼는 밤에, 함께 버텨줄 수 있는 문장을 건네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회사에서의 하루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예전에는 그저 피곤함만 느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오늘 회사에서의 나는, 회사라는 브랜드 속에 숨은 나였다면, 이제부터 집에서의 나는, 나라는 사람을 찾아가는 내 시간이다.”


유튜브를 켜고, 글쓰기 프로그램을 열고, 강의 노트를 펼치는 일은 어쩌면 제게 주어진 두 번째 직업 같은 것 같습니다. 낮에는 회사의 개발자, 밤에는 나를 세공하는 연금술사.


언젠가, 회사라는 이름이 제 옆에서 천천히 멀어지는 날이 온다고 하더라도, 그때의 저는 너무 두렵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미 오랫동안 조금씩 나를 다듬어 왔다고, 조심스럽지만 단단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아직은 빛나지 않는 원석일지 몰라도, 제가 매일 조금씩 갈아내는 이 표면이, 언젠가 누군가의 마음에 부딪혀 작은 불꽃 하나쯤은 튀게 만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불꽃이, 육아에 지쳐 있는 아빠의 마음을 잠깐이라도 덥혀줄 수도 있고, 자신의 인생이 무가치하다고 느끼는 중년의 가슴에 작은 균열을 낼 수도 있고, 꿈을 포기할까 망설이는 취준생의 손을 다시 한번 키보드 위로 올려놓게 만들 수도 있겠지요.


그렇게 누군가의 삶에 아주 미세한 방향 전환이라도 만들어낼 수 있다면, 저는 저의 1인 브랜드가 조금씩 제 역할을 해내고 있다고 믿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도 저는 원석을 손에 쥐고 있습니다. 두렵지만, 설레기도 한 마음으로요. 나만의 브랜딩을 향해, 아주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걸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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