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서평 잘 쓰는 법.

by 곽준원

책을 읽고 나면 한동안 멍해질 때가 있습니다. 이야기가 너무 강렬해서일 때도 있고, 반대로 아무 느낌도 남지 않아서일 때도 있습니다. 예전의 저는 그 공백이 참 어색했습니다. '이렇게까지 시간을 들여 읽었는데, 내가 뭘 남긴 거지?' 하는 허탈함이 따라왔습니다. 그때부터 서평이라는 것을 조금 다르게 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흔히 서평이라고 하면 '책을 평가하는 글'을 떠올립니다. 별점을 매기고, 장단점을 나열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 책을 읽을지 말지 권하는 글 말이지요. 그런데 저는 이제 서평을 그렇게만 보지 않습니다. 제게 서평은 그저 '이 책을 읽고, 나는 무엇을 얻어갔는가'를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그게 비록 한 문장일지라도, 심지어 '다시는 이런 책은 읽지 말자'라는 결론일지라도 말입니다.


책이 주는 유익함은 꼭 ‘좋은 영향’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너무나 좋은 책을 만났을 때는 말할 것도 없이 현재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가 찾아옵니다. 사고방식이 조금 넓어지고, 마음이 가벼워지거나, 지금의 나를 다시 바라보게 해 주지요.


반대로, 끝까지 읽었는데도 아무런 효용성을 느끼지 못한 책도 있습니다. 덮는 순간, '이 시간은 그냥 허비였네'라는 생각이 스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시간도 완전히 버려진 것은 아닙니다. 저는 그런 책을 '내가 선호하지 않는 종류의 책'으로 분류합니다. 이 과정 자체가 하나의 배움이라고 믿습니다.


사람을 만나봐야 나와 맞는 사람을 알듯이, 여러 종류의 책을 읽어봐야 ‘나와 잘 맞는 생각의 결’도 알 수 있으니까요. 실패한 독서는 '내가 어떤 책을 좋아하는가'를 알려주는 또 하나의 데이터가 됩니다. 그 순간, 허비했다고만 느꼈던 시간이 아주 조금은 유익함으로 옮겨집니다.


독서는 현재를 돕기도 하지만, 미래와 과거를 동시에 건드리는 일입니다. 어떤 책은 지금 당장 내 고민에 불을 붙여 줍니다. '아, 그래서 내가 요즘 이렇게 힘들었구나' 하고 현재를 해석하게 해 주지요. 또 어떤 책은 한참 뒤에야 그 의미가 서서히 떠오릅니다. 그때는 잘 몰랐던 문장이 시간이 지나 돌연 내 안에서 살아나는 경험, 누구나 한 번쯤 해보셨을 겁니다.


반대로, 오래전에 지나간 추억을 다시 꺼내 재정리하게 만드는 책도 있습니다.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 한때 품었다가 묻어 둔 꿈, 누군가와의 관계가 문장 하나 때문에 다시 떠오르기도 하지요.


이렇듯 책이 우리의 시간대를 이리저리 건드리고 다니기 때문에, 저는 책을 읽고 나서 그냥 덮어버리기가 점점 어려워졌습니다. 그때부터 '서평을 잘 쓰는 법'보다는 '책을 읽고, 내 안에서 무언가를 끝까지 붙잡아 보는 법'에 더 관심이 생겼습니다. 서평은 결국, 그 붙잡기의 기록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으니까요.


서평을 잘 쓰는 방법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저는 오히려 ‘밀도를 높이는 집중’에서 출발한다고 믿습니다. 책 전체의 내용을 완벽히 요약할 필요는 없습니다. 전체 맥락을 다 이해하지 못했어도 괜찮습니다. 오히려 마음에 걸리는 한 문장, 한 장면을 끝까지 따라가 보는 편이 더 좋을 때가 많습니다.


“이 문장을 왜 밑줄 그었을까?”

“이 장면이 이상하게 오래 남는 이유가 뭘까?”


이렇게 집요하게 파고드는 과정에서 서서히 ‘나만의 문장’이 생깁니다. 그 문장이 바로 서평의 뼈대가 됩니다. 책에 대해 말하려다가 결국 ‘나에 대해 말하게 되는 순간’, 저는 그 글이 좋은 서평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고 느낍니다. 책을 빌려 내 마음을 설명하는 글, 그게 가장 솔직한 서평이니까요.


한동안 저는 서평을 꽤 많이 썼습니다. 숫자로만 보면 대략 100편 정도 썼을 때였습니다. 그렇게 쌓이다 보니 우연히 서평 쓰기에 대해 강의를 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겨우 100편 쓰고 무슨 강의까지..”라고 스스로 머쓱해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저는 강의실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 강의에서 만난 수강생 중 한 분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저는 책은 정말 많이 읽는데, 글은 도저히 못 쓰겠어요.”


그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유를 물어보니, 책에서 보는 문체와 문장은 너무 수려하고 완성도가 높은데, 막상 본인이 쓴 글을 보면 너무 초라해 보여서 보기 싫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저 역시 비슷한 마음을 오래 품고 살았으니까요. 남의 문장은 마치 잘 다듬어진 보석 같고, 내 문장은 아직 흙먼지 묻은 돌멩이 같을 때가 많습니다. 책은 수없이 다듬어진 결과물인데, 내 글은 이제 겨우 첫걸음을 떼고 있는 초안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그 자리에서 저는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독서는 인풋이고, 글쓰기는 아웃풋입니다. 독서를 많이 한다고 해서, 저절로 글을 잘 쓰게 되지는 않습니다. 두 가지는 서로 마주 보고 있으면서도, 전혀 다른 뇌를 씁니다.”


많이 읽으면 글이 저절로 좋아질 거라는 기대는 달콤하지만, 현실은 조금 다릅니다. 인풋을 아무리 많이 쌓아도, 아웃풋을 꺼내는 연습을 하지 않으면 문장은 늘 제자리입니다. 마치 운동 영상을 아무리 봐도, 직접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근육은 생기지 않는 것과 비슷합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시작할 때, 자꾸만 ‘빠르게 잘하고’ 싶어 합니다. '괜히 시도했다가 시간만 버리면 어쩌지', '못 쓸 바엔 아예 안 쓰는 게 낫지 않나' 싶은 마음이 들지요. 그래서 첫 문장을 적다가도 지우고, 파일 이름만 만들고 일단 닫아버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글은 그런 우리의 성급함을 전혀 이해해 주지 않습니다. 서평을 잘 쓰고 싶다면, 결국 오래, 꾸준히, 조금 촌스러워도 계속 써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독서와 글쓰기를 함께 들고 가는 시간이 축적될 때, 비로소 자신의 문체가 서서히 올라옵니다. 그리고 이때 꼭 필요한 도구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퇴고’입니다.


퇴고는 글의 얼굴을 조금씩 다듬어 주는 빗 같은 존재입니다. 처음 쓴 문장은 대개 거칠고, 숨이 차 있고, 생각이 너무 많이 붙어 있습니다. 시간을 두고 다시 읽어보면, 그제야 보이는 군더더기들이 있습니다. 단어 하나를 바꾸고, 문장을 한 줄 덜어내고, 문단의 순서를 살짝 바꾸는 이 작은 작업들이 모여 글을 매끄럽게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저는 '글을 잘 쓰는 법'이라는 말이, 결국 '어떻게 하면 오래도록 꾸준히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고 생각합니다. 꾸준함을 미화하는 멋진 말들이 많이 있지만, 그 안에는 결국 '이 일을 나에게 어떤 의미로 만들 것인가'라는 과제가 숨어 있습니다. 의미가 없는 일은 오래 붙잡을 수 없으니까요.


저에게 글쓰기, 특히 서평 쓰기는 하나의 ‘의미 놀이’였습니다. 책을 읽다가 공감 가는 문장이 나오면 밑줄을 긋고, 여백에 제 생각을 적어 두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습관처럼, 메모하듯이 적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밑줄과 메모를 쌓아두다 보면, 언젠가 이건 나의 자서전 같은 게 되지 않을까.”


책의 문장은 분명 다른 사람이 썼지만, 그 옆에 적힌 작은 글씨들은 온전히 제 삶에서 나온 문장들입니다. 어떤 날은 회사에서 겪은 일을 적어놓았고, 어떤 날은 아들과의 대화, 또 어떤 날은 말로 꺼내지 못한 감정을 짧게 남겨 두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그 페이지를 다시 펼쳐보면, 그때의 제가 어떤 고민을 하고 있었는지, 무엇에 화가 나 있었고, 무엇에 기대고 있었는지가 그대로 드러납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아, 서평은 책 이야기를 빌려 쓰는, 나의 기록이기도 하구나.”


그래서 이제는 조금 다른 상상을 하게 됩니다. 언젠가 시간이 많이 흘러, 책장에 꽂혀 있는 이 책들을 제 아들이 꺼내서 읽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우연히, 제가 밑줄 그은 문장과 작은 글씨들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겠지요.


“아, 아빠는 이 문장을 좋아했구나.”

“이때 아빠는 이런 생각을 했었네.”


그 순간, 저는 어쩌면 옆에 없어도, 제 생각의 일부를 아이와 나누고 있게 될 겁니다. 그 상상을 하면, 서평을 쓰는 시간이 단순한 글쓰기 연습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건네는 느린 편지처럼 느껴집니다.


어쩌면 저는 그런 의미에서 ‘의미의 수호자’가 되고 싶은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에서 건져 올린 문장들, 그 옆에 적어 둔 제 생각들, 그리고 언젠가 그걸 읽게 될지도 모르는 누군가의 시간을 잇는 사람. 그 연결을 지키기 위해, 저는 오늘도 책을 읽고, 여백에 작은 글을 남깁니다.


서평을 잘 쓰고 싶으시다면, 이렇게 한번 시작해 보시면 어떨까요. 한 권을 완벽히 정리하려 하지 마시고, 한 문장에 깊이 들어가 보시고요.


책을 평가하려 하기보다, '이 책을 읽은 나'를 기록해 보시고요. 남의 문장과 비교하며 위축되기보다, 서툰 자신의 문장을 자꾸 바깥으로 꺼내보셨으면 합니다.


그렇게 10편, 30편, 100편의 서평이 쌓이면, 책장에는 여전히 책들이 꽂혀 있겠지만, 그 옆에는 분명 이전과 다른 ‘나’가 서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그 서평들을 다시 읽는 날, 아마도 이렇게 중얼거리게 되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 이때의 나는 이만큼 고민하고, 이만큼 성장하고 있었구나.”

그 깨달음이 어쩌면, 우리가 서평을 쓰는 가장 깊은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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