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화] 말단 사원이 CEO에게 보낸 메일.

by 곽준원

‘보내기’ 버튼 앞에서 손가락이 멈춘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그날, 회사 메일 화면 앞에서 한참을 머뭇거리고 있었습니다. 수신인 칸에는 대표이사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제목에는 '회사 독서 문화에 대한 한 가지 제안드립니다'라는 문장이 달려 있었습니다.


내용은 이미 여러 번 읽고 고쳤습니다. 맞춤법을 다시 확인하고, 문장을 줄였다 늘렸다 하며 나름대로 다듬을 만큼 다듬었습니다. 그런데도 마지막 버튼 하나를 누르는 일이 왜 그렇게 어렵던지요.


머릿속에서는 별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말단 직원이 이런 메일을 보내도 되나.'

'괜히 잘난 척하는 사람으로 보이면 어떡하지.'

'혹시 이 메일 때문에 이상한 평가를 받는 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마음 한 편에서는 이런 목소리도 함께 들리고 있었습니다. '이건 그냥 하나의 시도일 뿐이야. 거절되더라도, 그건 생각의 방향이 틀렸다는 의미는 아니잖아.' 결국 저는 아주 작게 숨을 내쉬고, 마우스를 움직여 ‘보내기’를 눌렀습니다. 클릭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던 날이었습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시작한 지 어느덧 3년쯤 되었을 때였습니다. 처음엔 그저 개인적인 습관처럼 시작했습니다. 출퇴근 지하철에서, 잠들기 전 침대 위에서, 주말 아침 카페 구석 자리에서, 조용히 책을 읽고 밑줄을 긋고, 블로그에 소소하게 글을 올리곤 했습니다.


그렇게 제 안에서만 맴돌던 변화가 조금씩 밖으로 새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경험을 나만 알고 있기에는 조금 아깝다'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문득, 예전에 보던 MBC 프로그램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가 떠올랐습니다. 온 국민이 같은 책을 읽고, 토론하고, 생각을 나누던 그 분위기 말입니다.


‘만약 직장 안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어떨까?’


한국의 문해력 수준 이야기가 종종 뉴스에 등장할 때마다, 저는 단순히 '사람들이 책을 안 읽어서 그렇지'라고만 생각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글을 읽고, 이해하고, 자기 언어로 다시 꺼내는 능력이 자꾸 줄어들면, 언젠가 대화와 토론 자체가 힘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개발자도, 기획자도, 디자이너도, 결국 일은 말과 글로 정리되고 공유됩니다. 회의에서 의견을 내고, 메신저로 소통하고, 문서로 설계하고, 메일로 보고를 하는 일이 일상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렇다면, 회사라는 공간에서 ‘읽기’와 ‘쓰기’의 역량을 키우는 일이야말로 곧 효율과 생산성의 문제이기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우선, 내 주변 사람에게 이야기해 보자.' 같은 팀 동료들에게 조금씩 책을 추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 개발자 입장에서 읽어보면 재밌어요.”

“요즘 우리가 겪는 고민이랑 묘하게 닮은 내용이 있더라고요.”


누구에게는 부담이 될까 봐, 억지로 권하진 않았습니다. 그저 점심시간에 가볍게 책 이야기를 꺼내고, 공용 책장에 한두 권씩 꽂아두고, 읽은 사람이 있으면 조용히 소감을 물어보는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누군가 책을 읽고 “저도 읽어봤어요”라고 말을 건네는 순간, 그 사람은 더 이상 단순한 ‘동료 기술자’로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같은 문제를 고민하고, 비슷한 문장에서 밑줄을 긋고, 어떤 문장을 통해 위로를 받았는지 나누다 보면, 그 안에는 그 사람의 삶이 자연스럽게 묻어났습니다.


'아, 이 동료는 이런 가치관을 가지고 있구나.'

'이 친구는 이런 상황에서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이구나.'


업무로만 연결되어 있던 동료들이 조금씩 ‘사람’으로 다가왔습니다. 함께 일하는 관계를 넘어서, 함께 생각을 나누는 관계로 바뀌어 갔습니다. 팀 내부에서 이런 변화가 생기자, 마음 한편에서는 더 큰 상상이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팀 단위로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데, 만약 회사 전체 차원에서 독서와 글쓰기를 지원한다면 어떨까?'


부서와 직급을 뛰어넘어, 같은 책을 두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장면이 그려졌습니다. 서로의 말하기와 경청하는 태도가 조금씩 달라지고, 회의 자리에서도 허공을 떠도는 말이 아니라, 한 번 더 숙성된 문장들이 오가는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인 회사는 조금 더 오래, 단단하게 성장하지 않을까. 그곳에서 나오는 프로젝트도 자연스레 깊이가 달라지지 않을까. 물론, 어디까지나 제 머릿속에서 그려본 ‘이상적인 직장’의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상상은 때때로 행동의 씨앗이 되기도 합니다. 마침 어느 날, 회사에서 한 가지 소식이 내려왔습니다. 대표이사가 각 부서의 팀장급 이상에게 ‘실리콘 밸리의 팀장들’이라는 책을 나눠주며, '꼭 읽어보라'는 독서 지침을 내렸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저는 묘한 반가움과 아쉬움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아, 대표도 독서의 필요성을 생각하고 있구나.’

‘그런데 이게 그냥 한 번 책만 뿌리고 끝나는 이벤트로 지나가 버리지는 않을까.’


책을 나눠주는 행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읽고 나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따라오는가 하는 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음을 굳혔습니다.


'지금이 기회일지도 모른다.'


그저 '책을 읽읍시다'라고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흐름을 가지고 회사 차원의 문화로 확장할 수 있지 않을까. 독서 모임을 공식적으로 지원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을 격려하는 구조를 만든다면, 직원 개개인의 역량이 한 단계 상승하지 않을까.


막연한 느낌이 아니라, 제가 지난 3년간 겪었던 변화를 바탕으로 이야기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동안의 독서와 글쓰기 경험을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메일을 쓰는 일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습니다.


'단순히 내 취미 자랑처럼 보이면 안 된다.'

'회사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구체적인 연결고리를 보여줘야 한다.'


저는 처음 책을 읽기 시작한 계기, 꾸준히 글을 남기며 느꼈던 변화, 동료들과 나누며 팀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진 순간들을 하나씩 풀어썼습니다.


그리고 제안하고 싶었습니다. 회사 차원에서 자율적인 독서 모임을 결성할 수 있게 지원해 달라는 것, 책을 읽고 글을 쓰는 활동을 단순한 ‘개인 취미’가 아니라, ‘역량 개발’의 일부로 인정해 달라는 것, 토론과 글쓰기를 통해 팀장급 이상 리더들의 사고가 더욱 깊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 말입니다.


문장을 쓰다가 몇 번이고 멈췄습니다.

'이걸 대표가 읽으면 어떻게 생각할까.'

'너무 설레발치는 것처럼 느끼진 않을까.'


두려움은 대개 ‘상상 속의 최악의 장면’에서 자라납니다. 대표가 제 메일을 읽고 눈살을 찌푸리는 얼굴이 떠오르기도 했고, 어디선가 이런 말이 나오는 상상을 하기도 했습니다.


“업무나 똑바로 하지, 별 걸 다 생각하네.”


하지만 동시에, 저는 거절에 대한 생각을 조금씩 다르게 바라보기 시작한 때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흔히 거절을 '나라는 존재 자체가 부정당한 것'처럼 받아들이곤 합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거절은 그저 하나의 현상일 뿐입니다. 상대의 상황, 환경, 우선순위, 관점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지금은 어렵습니다’라는 결론이 나온 것뿐이지, 저라는 사람 전체를 잘라내는 판결문은 아니라고, 머리로라도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결국, 그 두려움을 품은 채로 메일을 보냈습니다.


“설마 이 정도로 문제 되겠어.”


아주 작은 체념과, 아주 작은 용기가 섞인 마음이었습니다. 놀라운 일은, 그다음 20분 안에 벌어졌습니다. 대표이사에게서 답장이 도착한 것입니다.


수신함에 뜬 이름을 보고 순간적으로 심장이 쿵 내려앉았습니다. 열어보는 손가락이 약간 떨렸습니다. 메일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용기를 내어 이런 메일을 보내 주어서 고맙다는 말. 제가 링크로 첨부한 블로그를 살펴보았다는 말. 그리고 평소에도 꾸준히 자기 계발을 해나가는 모습이 참 훌륭하다는 칭찬.


물론, 그 직후 회사 차원에서 대대적인 독서 경영 프로그램이 시작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독서 수당이 생기지도 않았고, 전사 독서 토론회가 열린 것도 아니었습니다.


겉으로 보면, 회사는 그날과 다름없이 돌아갔습니다. 회의는 계속되었고, 일정은 촉박했고, 각자의 업무는 여전히 바빴습니다. 그런데 제 안에서는 분명 무언가가 달라져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한 가지 확신을 조금 더 단단히 품게 되었습니다.


‘아, 내가 가고 있는 방향이 완전히 틀리지 않았구나.’


거대한 제도 변화나 눈에 띄는 보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제 생각과 시도를 진지하게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말단 사원이 괜한 소리를 한다'가 아니라, '이 사람은 자기 삶과 일을 연결해서 고민해 보고 있구나'라고 바라봐 주는 눈이 회사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것,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저는 조금 더 담대해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나만의 방향’을 세우고 싶다면, 언젠가는 작은 용기를 내어 바깥으로 꺼내 보이는 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요. 그 시도가 거절될 수도 있고, 당장은 아무 변화도 만들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분명히 확인하게 됩니다.


“나는 어떤 세상을 기대하고 있는가.”

“나는 이 회사에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CEO에게 보낸 그 한 통의 메일은, 어쩌면 회사의 문화를 바꾸진 못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제 안에서 ‘침묵하던 직원’이 ‘목소리를 가진 한 사람’으로 서게 만든 사건이었습니다. 이제 저는 예전만큼 거절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아직도 떨리기는 하지만, 최소한 이렇게 말할 수는 있습니다.


'거절은 나라는 존재의 부정을 뜻하지 않는다. 그저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그 과정 속에서 나의 방향을 확인하고, 다음 시도를 준비하면 된다.'


오늘도 어딘가에서, 어떤 직원이 대표나 상사에게 메일을 쓰다가 지우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 정도 이야기를 내가 해도 될까?”

“말단 주제에 괜한 소리 하는 건 아닐까?”


그분께 조용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 메일이 회사의 정책을 뒤집지는 못하더라도, 당신이 어떤 사람이고 싶은지, 어떤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지, 먼저 당신 자신에게 확인시켜 줄 수는 있다고요.


저 역시 한 번의 ‘보내기’ 버튼을 통해 그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에 조금 더 책임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혼자만의 취미를 넘어서, 언젠가 다시 용기를 내어 말할 수 있는 날을 위해, 오늘도 저는 한 줄씩, 제 마음을 적어 내려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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