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을 하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화면이 멈추고, 알 수 없는 에러 메시지가 뜨는 순간이 찾아오지요. 그럴 때마다 저는 모니터 앞에서 한숨을 쉬며, 로그를 뒤지고, 검색창을 열고, 같은 키워드를 수십 번씩 바꿔가며 찾아 헤맵니다. 왜 안 되는지 모를 때의 답답함, 겨우 원인을 찾아냈을 때의 해방감, 그리고 다시는 이 고생을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 개발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어보셨을 겁니다.
그 과정이 너무 고되다 보니, 저는 늘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나 말고 다른 사람은 이 고생 안 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웬만하면 기록을 남기려 합니다. 어떤 환경에서 어떤 에러가 났는지, 어디를 어떻게 수정했더니 해결됐는지, 다음에 또 비슷한 문제가 생겼을 때 제 자신이라도 다시 참고할 수 있게, 누군가 우연히 검색해서 제 글을 발견했을 때 조금이라도 시간을 아낄 수 있게 말이지요.
그렇게 개발 에러를 기록하던 손이, 어느 순간부터 독서와 글쓰기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오랫동안 거의 방치해 두다시피 했던 블로그에, 책 이야기와 일상의 생각들을 조금씩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정말 아무 욕심이 없었습니다. 그저 글 한 편을 끝까지 써서 ‘발행’ 버튼을 눌렀다는 사실만으로도 꽤 큰 성취감을 느꼈으니까요. 그런데 사람이란 참 묘합니다. 글을 쓸수록, '누군가 이 글을 읽어주면 좋겠다'는 마음이 슬그머니 고개를 듭니다.
“이 주제로 검색했을 때 내 글이 뜰까?”
“내가 고생해서 쓴 글이 검색 결과에 아예 안 나오면, 너무 허무하지 않을까?”
이런 호기심과 서운함이 뒤섞인 감정이 생기면서, 저는 본격적으로 블로그의 알고리즘, 검색 노출 방식, 내부 로직 같은 것들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별 의도 없이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실험 노트를 쓰듯 블로그를 다루고 있더군요.
그러다 저는 하나의 사실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제 블로그는, 소위 말하는 '저품질 블로그'였습니다. 같은 키워드로 글을 써도, 다른 사람의 글은 검색 상단에 노출되는데, 제 글은 도무지 찾아볼 수가 없는 겁니다. 아무리 뒤로 넘겨도 나오지 않을 때의 허탈함이란.
“내가 글을 못 써서 그런가?”
“뭔가 규칙을 어긴 건가?”
여기저기 찾아보면서, 저품질 블로그에 대한 여러 가설들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유입 구조, 글의 형식, 링크 사용, 과거의 글 패턴 등등. 그때부터 저는 하나씩 가설을 세우고, 직접 실험해 보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주제로 글을 쓰면 노출이 되는지, 어느 시점에 트래픽이 변하는지, 제목을 어떻게 바꾸면 클릭률이 달라지는지, 통계를 지켜보며 분석하는 일이 점점 재미있어졌습니다.
데이터가 조금이라도 의미 있게 변하는 날이면, 저는 빠짐없이 휴대폰으로 화면을 캡처했습니다. 날짜를 기록하고, 변화가 생긴 시점과 제가 시도한 행동을 연결하면서, 나름의 '주제별 노출 분석' 기록을 쌓아 갔습니다. 그 과정을 글로 정리해서 올렸을 때,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댓글을 달아 주셨습니다.
“정말 도움 많이 됐습니다.”
“저도 저품질 블로그라서 너무 속상했는데, 위로가 되네요.”
그 댓글들을 보면서, 저는 한 가지를 다시 확인했습니다.
'아, 나는 뭔가를 이해하게 되면, 이상할 정도로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사람이구나.'
그 충동은 늘 ‘도움’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타났습니다.
“나처럼 돌아가지 말고, 이 길로 바로 가셨으면 좋겠다.”
“내가 삽질한 시간을 줄여드리면 좋겠다.”
하지만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 뒤에는 항상 또 다른 감정이 따라붙었습니다.
“근데, 혹시 내가 틀리면 어떡하지?”
“잘못 알려줘서 오히려 피해가 되면 어떡하지?”
예전의 저는 완벽주의가 꽤 심한 편이었습니다. 확신이 없는 정보는 아예 말하지 않는 편이 안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누군가에게 건네는 말과 정보는 항상 최대한 정확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엄격한 규칙을 걸어두었지요.
그래서 제가 나누는 정보는 대체로 신뢰도가 높았습니다. 그 대신, 제가 입을 여는 빈도는 터무니없이 낮아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이 정도 준비로 말하는 건 실례야.”
“조금 더 알아보고 말해야지.”
그러는 사이, 저는 수많은 말할 기회를 흘려보냈습니다. 누군가는 완벽하진 않더라도, 그때의 저에게서 위로나 힌트를 얻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저는 제 기준에 스스로를 가둔 채, 말을 아끼는 사람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변화는 조금 느리고 우회적인 길로 찾아왔습니다. 심리상담을 받으면서, 정신과 약을 복용하면서, 심리 관련 책들을 읽어가면서, 저는 제 안의 인지왜곡을 하나둘씩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한 번 틀리면, 사람들은 나를 무능한 사람으로 볼 거야.”
“잘못된 정보를 한 번이라도 말했다면, 그 후로는 입을 다물어야 해.”
이런 생각들이 얼마나 극단적이고, 또 얼마나 저를 고립시키는지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완벽해야만 도울 수 있다'라는 믿음도 서서히 풀어졌습니다.
온전히 정확한 정보만이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때로는 함께 고민해 주는 시도, 실패담을 솔직하게 나누는 용기, '나도 이 길을 지나왔다'라고 말해 주는 공감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큰 힘이 되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저는 어느 순간부터, 약간 부족한 상태에서도 입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겪어본 바로는 이렇습니다.”
“완벽한 답은 아니지만, 이런 가설을 세워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품질 블로그로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강좌를 만들고, 글을 쓰고, 여러 플랫폼의 블로그 시스템을 비교해 설명했습니다.
누군가는 여전히 더 화려하고 체계적인 강의를 찾겠지만, 어떤 분은 '같은 문제를 겪어본 사람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제 이야기를 더 편안하게 받아들일지도 모릅니다. 그 사실이 저를 다시 키보드 앞에 앉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행복’에 대한 생각도 함께 깊어졌습니다. 심리학 책을 읽다 보면, 뇌과학자와 심리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한 가지가 종종 등장합니다. 인간이 행복을 느끼는 조건 가운데 가장 강력한 것 중 하나가 바로 '타인을 행복하게 만드는 경험'이라는 사실입니다.
누군가를 도와주고, 그 사람이 안도의 숨을 쉬는 모습을 볼 때, 제가 건넨 말이나 글 덕분에 누군가가 조금 덜 불안해졌다고 말해줄 때, 그 순간 제 안에서도 묘하게 따뜻하고 충만한 감정이 올라옵니다.
이 감정은 단순한 자기만족과는 조금 다릅니다. 마치 내 안에 있던 에너지가 바깥으로 흘러갔다가, 다른 색깔이 되어 다시 돌아오는 느낌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느끼는 이 감정의 뿌리를 이렇게 설명해 보고 싶습니다.
'이기적 이타주의자.'
모순처럼 보이는 이 단어가, 제 마음을 꽤 잘 설명해 줍니다. 나는 행복해지고 싶습니다. 그 욕구 자체는 분명 이기적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제 행복을 가장 크게 채워주는 경험은 누군가를 돕고, 그 사람이 조금 더 편안해지는 모습을 보는 일입니다.
결국 제 이기심은, 타인을 돕는 행동으로 우회해서 나타납니다. 둘 중 무엇이 먼저인지, 솔직히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원래 타인을 돕고 싶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인지, 아니면 행복해지고 싶어서, 그 방법으로 타인을 돕는 길을 선택한 것인지.
아마 둘 다 조금씩 섞여 있겠지요. 하지만 이제는 그 경계를 굳이 가르지 않으려고 합니다. 타인을 돕는 과정에서, 제 행복이 채워진다면, 그게 조금 이기적으로 보일지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고, 그 과정에서 제가 덜 공허해지고 더 의미를 느낀다면, 그건 꽤 괜찮은 삶의 방식 아닐까요.
다시 블로그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한때 저는 ‘저품질 블로그’라는 낙인이 너무 억울하게 느껴졌습니다. 아무리 정성을 들여 써도 검색이 되지 않으니, 마치 제 글의 가치 자체가 부정당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저품질’이라는 경험 덕분에 저는 더 깊이 고민하게 되었고, 더 치열하게 실험하게 되었고, 무엇보다 '같은 벽에 부딪힌 사람들'에게 말을 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블로그의 품질을 검색 알고리즘이 아니라, 그 글을 읽고 '조금 덜 외로워진 사람의 수'로 재고 싶습니다. 검색 상단에 노출되지 않더라도, 어디선가 한 사람이라도 제 글을 찾아와 '아, 나만 이런 줄 알았는데, 나만 겪는 문제가 아니었구나' 하고 느꼈다면, 그 글은 이미 그 사람에게 충분히 ‘고품질’이었다고 믿고 싶습니다.
물론 여전히 저는 더 잘 쓰고 싶고, 더 많이 읽히고 싶습니다. 그 욕심이 저를 또 다른 실험으로 이끌겠지요. 그 과정에서 다시 수없이 좌절하고, “저품질”이라는 벽에 부딪힐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그 길을 걸어가는 동안, 저는 또 누군가를 도울 수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그 도움을 건네는 순간마다, 제 안의 행복도 아주 조금씩 채워질 테니까요.
저는 앞으로도 아마 조금은 불완전한 정보, 조금은 서툰 표현, 조금은 삐뚤어진 실험 결과를 가지고도, '이게 누군가에게 작은 힌트라도 되면 좋겠습니다'라는 마음으로 계속 글을 쓸 것 같습니다.
그게 비록 알고리즘의 눈에는 ‘저품질 블로그’로 보이더라도, 저에게, 그리고 제 글을 찾아와주는 몇몇 사람에게만큼은 충분히 의미 있는 기록으로 남을 수 있도록, 오늘도 저는 또 한 편의 글을 열고 커서를 깜빡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