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왜 이것밖에 안 되니.”
어릴 적부터 저는 늘 같은 문장을 들으며 자랐습니다. 시험지 위에 적힌 점수, 엉성한 손글씨, 서툰 행동 하나하나가 아버지의 비난을 불러왔습니다. 잘한 부분은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고, 부족한 부분만 확대되어 제 귀에 꽂혔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목소리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떠나 제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나는 항상 부족한 사람이다.'
이 문장은 어느새 제 정체성이 되어버렸습니다. 부족한 사람은 누군가를 도울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부족한 사람은 관계에서 폐를 끼치지 않으려면 최대한 조용히 지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갈등을 피하는 방향으로 자라났습니다. 누가 다가오려 하면 한 발짝 물러서고, 마음을 기대고 싶다가도 '이러다 실수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입을 닫았습니다.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것을 저도 알고 있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서 있으면 어딘가 자꾸만 어긋나는 느낌이 났습니다. 어울리면서도 혼자인 것 같고, 혼자 있으면서도 불안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구석에는 늘 이런 마음이 있었습니다. “나도 누군가를 돕고 싶다.” 하지만 그 마음을 행동으로 옮길 근육이 너무 약했습니다.
도움이 되고 싶다는 바람과 달리, 막상 상황이 닥치면 '내가 나서면 더 망칠 거야', '괜히 나섰다가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휘몰아쳤습니다. 그렇게 저는 또 한 번 뒤로 물러났습니다. 결국 제가 선택한 방식은 회피였습니다. 관계를 줄이고, 기대감을 줄이고, 상처받을 가능성도 줄이는 삶.
“혼자 살 수 있으면 편하지 않을까.”
갈등을 해결할 자신도 없고, 문제가 생기면 그 장면이 머릿속에서 수십 번, 수백 번 반복 재생되는 강박적인 사고를 견디기도 힘들었습니다. 한 번 틀어진 대화 하나가 며칠 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제가 했던 말과 표정, 상대의 반응을 끝없이 되감아 보았습니다. 그러다 보면 결국 이런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역시 관계는 어렵다. 차라리 혼자가 낫다.”
그렇게 저는 '혼자 살 수 있다'라는 생각을 믿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믿음이라기보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방어막에 가까웠습니다. 관계에서 상처받지 않기 위해, 처음부터 관계를 최소화하려는 선택이었습니다.
변화의 기점은 의외로 조용하게 찾아왔습니다. 어느 날부터 저는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도망치듯 책 속으로 숨고 싶었습니다. 현실에서 느끼는 불안을 잠시라도 잊고 싶었고, 누군가의 문장을 빌려 제 감정을 설명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조금씩, 책을 읽고 느낀 것을 글로 적어 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공책 한 구석에 짧게 메모하는 수준이었습니다. 마음에 걸린 문장, 떠오른 기억, 그날 내 기분을 몇 줄 적어 내려가다 보니, 어느 순간 저도 모르게 제 이야기를 쓰고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기억, 아버지에게 들었던 말들, 그때 느꼈던 수치심과 분노, 관계를 피하면서도 속으로는 외로워했던 제 마음까지, 그동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것들이 글 위로 하나둘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내 마음에 달라붙어 있던 굴레를 조심스레 풀어 하나씩 바깥으로 꺼내는 작업이었습니다.
“아, 나는 이래서 사람을 피했구나.”
“내가 ‘부족한 사람’이라고 믿게 된 데는 이런 이유가 있었구나.”
이렇게 이해가 붙기 시작하자, 제 감정의 정체가 조금씩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제야 저는 혼자만의 힘으로는 버티기 어려운 영역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강박적인 사고와 불안이 더 심해지던 시기, 저는 정신과 문을 두드렸습니다. 약을 처방받아 먹고, 상담을 받으면서, 마음의 문제와 몸의 문제가 서로 얽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음먹기에 달렸다'라는 말로 버티기에는 이미 너무 오래 축적된 것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신과 약을 통해 신체적인 균형을 조금씩 되찾으려 했고, 동시에 상담과 책을 통해 왜곡된 사고의 틀을 조금씩 바로잡으려고 애썼습니다. 처음에는 약을 먹는다는 사실 자체가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내가 약까지 먹어야 하는 사람인가.”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용기였습니다. 혼자 버티겠다는 고집을 내려놓고, 도움을 청하는 첫걸음이었으니까요. 그 과정을 지나오며, 제 안의 긴장은 조금씩 내려앉았습니다. 머릿속에서 같은 장면이 끝없이 재생되던 강박도 서서히 옅어졌습니다.
물론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그 생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흘려보낼 힘이 생겼습니다. 독서 모임을 시작한 것도 비슷한 시기였습니다. 5년 동안 독서 모임을 운영하고 참여하면서, 저는 여전히 매번 긴장했습니다. 책 이야기보다는 사람들의 시선이 먼저 신경 쓰였습니다.
“지금 내가 한 말, 이상하게 들리진 않았을까.”
“너무 유치한 생각이라고 평가받으면 어떡하지.”
모임이 끝난 뒤에도 집에 돌아오는 길에 혼자 복기하곤 했습니다. 아까 그 자리에서 하지 말았어야 할 말, 조금 더 부드럽게 표현했어야 할 문장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모임을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긴장하면서도 계속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그 시간을 통해 천천히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만족을 주지 못해도 괜찮다.”
예전의 저는,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불편함을 줄 가능성이 있다면 차라리 관계를 맺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두가 저를 좋아해야만, 누군가를 도울 자격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조건이었습니다. 어떤 행동도, 어떤 말도, 어떤 선택도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불편할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면서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그래, 아무리 내가 좋은 일을 한다고 해도, 누군가는 불편할 수 있겠지. 그렇다고 해서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멈춰야 할까?”
결국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갈등이 생겼을 때, 그 관계를 회복하려는 마음과 태도였습니다. 실수해도 괜찮다는 것, 그리고 그 실수를 다루는 방식을 배우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관계에서 오는 갈등을 감당할 수 있는 탄력성이 생기자, 저는 예전보다 훨씬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멘토링을 할 때도, 예전 같으면 '내가 감히 누굴 가르쳐'라는 생각이 앞섰겠지만, 지금은 '내가 아는 만큼만 솔직하게 나누면 된다'라고 생각합니다.
대학교에서 직무 상담을 할 때도, 완벽한 해답을 주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함께 고민하고 방향을 찾는 동행자가 될 수 있다는 마음으로 학생들을 만났습니다.
누군가 제 앞에서 자신의 불안과 막막함을 털어놓을 때, 예전 같으면 그 감정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다가 제 불안까지 폭발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은, '혼자 살 수 있다'라는 착각에서 조금 벗어나, '우리는 서로에게 기대며 살아갈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체감하게 되었습니다.
관계는 위험이 아니라, 서로의 버팀목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몸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결국 그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저는 더 이상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있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살아온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작은 희망이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믿어 보고 싶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마음 깊은 곳에 쌓여 있던 상처와 왜곡된 믿음을 책과 상담, 약과 시간, 그리고 글쓰기를 통해 조금씩 풀어내면서 저는 '혼자 살아야 한다'라는 믿음이 얼마나 큰 착각이었는지 깨달았습니다.
지금의 저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혼자서도 살아갈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함께 살아갈 때 비로소 내 마음이 조금 더 건강해집니다.”
가장 작은 단위로는 가족, 아내와 아들, 그리고 조금 더 넓게는 얼굴도 모르는 불특정 다수에게까지, 저는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게 제가 8년 전, 독서를 시작하면서 조심스럽게 적어 내려갔던 새로운 꿈이기도 합니다. 그때 저는 ‘꿈’을 명사가 아니라 동사로 적었습니다.
“나는 누군가를 돕는 사람이고 싶다.”
그 꿈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책을 읽고, 마음을 들여다보고, 글을 씁니다. 언젠가 이 글을 우연히 읽게 된 누군가가 '아, 나만 이런 생각을 하며 살아온 게 아니구나' 하고 한 번만 더 숨을 고를 수 있다면, 그 순간 저는 또 한 번 '혼자 살 수 있다는 착각'에서 조금 더 멀어져 있을 것 같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서툴지만 서로를 붙잡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남기 위해, 오늘도 저는 제 마음의 건강을 향해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걸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