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이상한 마음 서재.

by 곽준원

독서 모임 이름을 정하던 날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그냥 '심리 독서 모임'이라고 부르면, 설명은 되지만 마음에 오래 남을 것 같지 않았습니다. 책을 읽고 마음을 이야기하는 모임이긴 한데, 그보다 조금 더 솔직하고, 조금 더 삐뚤어진 우리 마음을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떠올린 이름이 ‘이상한 마음 서재’였습니다.

“내 마음이 이상한데..”


사실 많은 사람들이 속으로만 중얼거리는 문장이지 않습니까. 남들은 다 잘 사는 것 같은데 나만 유난히 예민한 것 같고, 별일 아닌데도 혼자 오래도록 곱씹게 되고, 분명 기쁜 일인데도 어딘가 허전한 마음이 따라붙을 때, 우리는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나만 이상한가?”


저는 그 ‘이상함’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책 속에서 함께 들여다보는 모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름 앞에 굳이 '이상한'이라는 단어를 붙였습니다. 이상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서재. 그래서 더 솔직할 수 있는 공간.


그 이름을 정하고 첫 모임을 열었을 때만 해도, 이렇게 오래갈 줄은 몰랐습니다. ‘이상한 마음 서재’는 2주에 한 번씩, 5년 동안 이어졌습니다. 숫자로 적어 놓으면 참 단순한데, 그 안에는 많은 계절과 얼굴, 그리고 이야기들이 쌓여 있습니다.


2주에 한 번, 한 권의 책.


소설과 에세이는 과감히 제외하고, 심리학·뇌과학·인문학·철학 책들로만 채워 갔습니다. 감정의 구조를 다룬 책, 트라우마를 다룬 책, 뇌의 보상 시스템을 설명하는 책, 자기 결정권, 애착, 공감, 자존감, 삶의 의미를 다루는 책들까지.


그렇게 모임을 하다 보니, 어느새 130권 정도의 책을 함께 읽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1년에 책 한 권도 읽지 않는 사람이 절반 가까이 된다는 통계를 떠올리면, 참가자들은 아마 '평생 읽을 책을 5년 안에 몰아서 읽은 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중요한 건 책의 권수가 아니었습니다. 진짜 중요한 건, 책을 핑계 삼아 자기 마음을 꺼내 놓을 수 있는 자리가 생겼다는 점이었습니다. 모임을 오래 진행하다 보니, 어느 순간 제가 느끼는 바가 하나 있었습니다.


“이 모임, 구조만 다를 뿐 내용은 거의 집단 상담인데?”


실제로 그렇다고 느꼈습니다. 우리는 공식적으로 상담사가 있는 치료 집단이 아니었고, 그저 책을 읽고 느낀 점을 이야기하는 독서 모임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집단 상담에서 기대하는 주요 목표들이 자연스럽게 달성되고 있었습니다.


먼저, 자기 이해와 자기 인식이 깊어졌습니다. 책 속 이론을 이야기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기 이야기를 꺼내게 됩니다.


“저도 이런 상황 많이 겪었어요.”

“이 부분 읽는데, 자꾸 제 어릴 적 생각이 나더라고요.”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시작된 나눔이었지만, 몇 번 모임을 함께 하다 보면 서로의 반복되는 패턴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항상 남의 감정을 먼저 살피는 사람, 어떤 주제만 나오면 유난히 표정이 굳는 사람,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내용은 늘 자기 비난으로 끝나는 사람.


그 모습을 다른 사람이 말해 줄 때, “어? 내가 그런 사람이었나?” 하고 거울을 보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 순간, 자기 이해가 한 걸음 나아갑니다.


다음으로, 대인관계 능력이 자연스럽게 향상되었습니다. 서로의 말을 끊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는 연습, 내가 동의하지 않는 의견이라도 곧바로 반박하지 않고 “저는 이렇게 느꼈어요”라고 말하는 연습, 누군가의 힘든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래도~”로 시작하지 않고 그냥 “그랬구나” 하고 함께 있어주는 연습.


이런 것들이 모임 안에서 반복되다 보니, 참가자들은 어느 순간 회사나 가정에서도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대화하고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바로 훈수부터 뒀는데, 요즘은 일단 듣게 돼요.”

“괜히 상대 기분부터 맞추던 버릇이 조금씩 줄어드는 것 같아요.”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저는 모임이 단순히 책을 소비하는 자리가 아니라 서로의 관계 방식이 조금씩 바뀌는 연습장이 되고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감정 표현의 변화였습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분노, 슬픔, 불안 같은 감정을 마음껏 표현하는 데 익숙하지 않습니다.


“이렇다고 징징대면 안 되지.”

“다들 힘든데, 나만 유난 떠는 것 같잖아.”


그래서 웬만하면 감정을 삼키고 넘어가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상한 마음 서재에서는, 책을 매개로 그 감정들이 천천히 떠올랐습니다.


어느 날, 한 참가자가 말을 하다가 끝내 눈물을 터뜨린 적이 있습니다. 책 속 문장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내 놓으면서, 그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온 듯했습니다. 그때 다른 사람들도 함께 울거나, 눈을 붉히며 각자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요.”

“저는 그때 너무 답답했는데, 아무한테도 말 못 했어요.”


한 사람이 먼저 마음의 밸브를 연 순간, 다른 참가자들도 덜 두려운 표정으로 자기감정을 조금씩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장면을 여러 번 지켜보면서 저는 깨달았습니다.


“누군가가 ‘이만큼 해도 괜찮다’는 걸 먼저 보여주면, 그제야 나도 ‘나도 이렇게 해도 괜찮구나’ 하고 느낄 수 있다.”


그렇게 모임 안에서는 '이렇게까지 말해도 괜찮다'는 안전감이 조금씩 커졌습니다. 누군가는 오랫동안 품고 있던 외로움과 소외감을 털어놓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이해와 공감, 지지를 받으면서 '나도 여기 있어도 되는 사람이구나' 하는 감각을 회복해 갔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변화는,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힘이 자라난다는 점이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이상하지?”

“나는 왜 항상 이런 식으로 생각하지?”


이런 자기 비난이,

“아, 내가 이런 패턴이 있었구나.”

“내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구나.”

라는 이해의 문장으로 바뀌어 갔습니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조금 더 부드럽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을 때, 참가자들의 얼굴 표정도 함께 달라졌습니다. ‘이상한 마음 서재’를 운영하면서 저는 집단 상담의 효과를 아주 또렷하게 체감했습니다.


그 경험이 쌓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회사 안에서도 이런 경험을 나눌 수 없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내에서도 독서 모임을 한번 추진해 보았습니다.


처음 마음을 내기까지가 참 오래 걸렸습니다. 회사라는 공간은 아무래도 평가와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곳이기 때문에, ‘마음 이야기’를 꺼내는 일에 더 많은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그래도 지난 5년간의 모임이 있었기에, 저는 예전의 저였다면 상상도 못 했을 시도를 해볼 수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그 모임은 조직 개편과 함께 금세 와해되고 말았습니다.


부서가 나뉘고, 팀이 이동하고, 일정이 바뀌면서 모두가 한자리에 모이기 힘들어졌습니다. 아쉬움이 남지 않았다면 거짓말입니다. '조금만 더 자라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 시도를 후회하지 않습니다.


예전의 저라면, '어차피 잘 안 될 거야'라고 미리 포기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제는 한 번이라도 더 도전해 본 사람으로 남았습니다. 그 자체로 제 안의 변화였습니다.


'다시 시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이, 저는 참 뿌듯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전히 생각합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이상한 마음 서재’를 다시 열어보고 싶다고.


형태가 완전히 똑같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오프라인이든 온라인이든, 회사 안이든 바깥이든, '내 마음이 좀 이상한 것 같다'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읽고, 듣고, 나누며 조금 덜 외로워지는 공간이라면, 어디든 좋을 것 같습니다.


책은 그저 들어가는 문일 뿐입니다. 정말 중요한 건, 그 책을 매개로 서로의 마음을 건네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5년 동안 2주에 한 번씩 문을 열어 두었던 그 시간들이 저에게도, 참가자들에게도 작은 발판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혼자서는 잘 꺼내지지 않던 감정들, 내가 왜 이토록 지나간 일을 붙잡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던 순간들, 사람들 사이에서 계속 부딪히던 패턴들이 조금씩 말이 되고, 이해가 되고,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 모든 과정은 결국 이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상한 마음끼리 모여 있었더니, 조금 덜 이상한 하루를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그런 모임을, 그런 서재를, 언제든 다시 열 수 있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그게 제가 책을 읽고, 사람과 마음을 나누며 조금씩 다듬어 온 제 나름의 꿈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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