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도 다 때가 있는 법이야.”
어릴 적부터 어른들이 입버릇처럼 하던 말입니다.
“나이 들어서 하려고 해 봐라, 머리가 안 돌아간다.”
“학창 시절에 죽어라 공부해야 한다.”
저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속에서 작은 반항심이 올라왔습니다. 왜 굳이 지금 해야 하는데? 왜 하라는지 이유도 모르겠는데?
“공부를 왜 해야 하나요?”
이 질문을 진지하게 던져 봐도, 누구도 제게 속 시원한 답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좋은 대학 가려고, 좋은 회사 들어가려고, 나중에 힘들지 않으려고. 그런 대답은 있었지만, 제 안에 불이 켜지는 느낌은 없었습니다. 납득되지 않는 행동에는 끝까지 몰입하지 못하는, 저는 그런 타입이었습니다.
그런 제가, 마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 스스로 교과서를 사서 공부를 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보통 35세 정도가 지나면 근육량도 줄고, 신진대사도 떨어진다고 합니다.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이 실감 나는 시기이지요. 그래서인지, 뇌도 비슷할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습니다.
‘이제 새로운 공부를 하기엔 너무 늦었나?’
예전 어른들의 말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머리가 안 돌아간다'는 말. 그런데 이상하게도, 저는 이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공부’라는 것을 진심으로 대하게 되었습니다.
이유는 의외로, 책 한 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심리 독서 모임을 운영하면서, 저는 자연스럽게 마음에 관한 책들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대중 심리서 정도였습니다. 읽기 편하고, 사례가 많고, 글이 친절한 책들이지요. 그런데 점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 왜 상처받은 사람은 비슷한 패턴을 반복할까? 마음이 이렇게 복잡하게 움직이는 건, 결국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
이런 질문을 따라가다 보니, 심리는 곧 뇌와 연결되어 있다는 지점에 닿게 되었습니다. 뇌과학, 신경과학을 다룬 책들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fMRI로 뇌의 어느 부위가 활성화되는지, 어떤 감정을 느낄 때 어떤 영역이 반응하는지, 스트레스가 쌓이면 뇌의 구조가 어떻게 변하는지.
이런 내용을 읽다 보니, '공부는 머리로만 하는 게 아니라, 머리 자체를 이해하는 일이기도 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에게 뇌과학은 '그냥 열심히 살아라'라는 막연한 말 대신 왜 우리가 그렇게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구체적인 설명을 들려주는 학문이었습니다.
심지어, 늘 막연하게만 느껴졌던 심리학도 ‘이야기’가 아니라 ‘과학’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대중서가 아니라, 실제 이론서를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상심리학, 교육심리학, 발달심리학, 심리학개론, 임상심리학..
두께부터 압도적인, 딱 봐도 대학교 전공 수업용 교재들이었습니다. 십 년 전이었다면 책 표지만 보고도 도망쳤을 것입니다. '저런 건 전공생들이나 보는 거지, 나 같은 사람이 볼 책이 아니다'라고 생각했겠지요. 그런데 그 시점의 저는 달랐습니다.
‘이제는 내가 알고 싶어서, 내가 선택해서 공부해보고 싶다.’
이 마음이 생기자, 교재의 두께는 더 이상 위협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이 안에 얼마나 많은 내용이 들어 있을까' 하는 기대가 생겼습니다.
저는 하나씩 그 책들을 주문해 읽기 시작했습니다. 퇴근 후에, 주말 오전에, 틈틈이 시간을 쪼개어 책을 펼쳤습니다. 처음에는 용어 하나를 이해하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한 문단을 읽고, 다시 위로 올라가서 다시 읽고, 표시를 하고, 노트를 옮겨 적고. 속도는 느렸지만, 이상하게도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이제야 조금씩, 인간과 마음을 이해하는 언어를 배우고 있구나.’
이런 감각이 공부를 계속 붙잡게 해 주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작은 목표를 하나 세웠습니다.
“어차피 이렇게 공부할 거라면, 자격증 시험도 한 번 쳐보자.”
국가공인 자격증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름의 커리큘럼과 시험이 갖춰진 과정이었습니다. 한 달에 두 권씩 이론서를 읽고, 핵심 내용을 정리하고, 기출문제를 풀어보고, 시험을 치르고, 합격증을 받아 들었습니다. 종이에 적힌 ‘합격’이라는 두 글자가, 그토록 묵직하게 느껴진 적이 없었습니다.
누가 시켜서 한 공부가 아니었습니다. 학점이나 스펙을 위해 억지로 외운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제 안에서, '이제는 알아야겠다', '이제는 제대로 해보고 싶다'라는 마음이 생겨 시작한 공부였습니다.
그 과정을 끝까지 해낸 제 자신이, 정말 대견했습니다. 살면서 시험을 치르고 이렇게 기뻤던 적이 있나 싶었습니다. 그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공부에도 내게 맞는 시기가 따로 있구나.”
사람들이 말하던 '공부의 때'는 그저 나이와 학령기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제는 내가 알고 싶다’는 마음이 준비되는 시기, 그게 바로 각자에게 찾아오는 ‘적절한 시기’라는 것을요. 그 이후로 저는 결정했습니다.
“이왕 여기까지 온 거, 아예 심리학 전공을 제대로 따보자.”
학점은행제를 알아보고, 과목을 하나씩 수강했습니다. 온라인 강의를 듣고, 리포트를 쓰고, 시험을 치렀습니다. 회사에 다니면서, 새로운 직장으로 이직하고 적응하면서도 틈틈이 공부를 이어갔습니다. 업무 메일을 마무리하고 나면, 이번에는 학습 사이트를 열고 강의를 듣고, 주말에는 카페에서 리포트를 쓰고, 기말고사 기간이 되면 시험 일정에 맞춰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렇게 모은 학점이 어느새 53학점, 드디어 심리학 학사 학위를 취득하게 되었습니다. 졸업장을 받아 들고 있자니, 참 묘했습니다. 스무 살에 받았어야 할 것 같은 서류를, 훌쩍 나이를 먹은 뒤에야 손에 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저는, 예전의 그 어떤 때보다 공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이 모든 과정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직장에 적응하면서, 낯선 사람들과 협업하고, 업무적으로도 많은 부담을 안고 있으면서, 그 와중에 강의까지 듣고, 리포트를 쓰고, 시험을 준비하는 일은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쉽지 않았습니다.
여러 번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있었습니다.
“이걸 해서 뭐가 달라질까.”
“지금도 벅찬데,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그럴 때마다 떠올렸던 생각은 하나였습니다.
“누군가의 마음을 이해하고 돕는 일을 하려면, 최소한 기본 이론은 제대로 배우고 싶다.”
전문성을 가진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마음, 감으로만 이야기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론과 경험을 함께 갖춘 사람이고 싶다는 욕심이 저를 다시 책상 앞으로 불러냈습니다.
이건 누가 시킨 공부가 아니라, 제가 앞으로 되고 싶은 사람의 방향에서 나온 선택이었습니다. 이제 저는 '공부는 다 때가 있다'라는 말을 조금 다르게 이해합니다.
누군가는 열여덟의 나이에, 누군가는 마흔다섯에, 또 누군가는 쉰이 넘어 비로소 공부의 맛을 알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언제 시작했느냐'가 아니라 '왜 시작했느냐'가 아닐까 싶습니다.
저에게 공부의 시기는 지금입니다. 머리가 예전보다 덜 돌아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체력도 예전 같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저는, 이걸 왜 배우는지를 압니다.
내 삶과 연결되는 이유, 내가 돕고 싶은 사람들과 이어지는 지점, 내가 앞으로 가고 싶은 방향 속에서 공부는 하나의 도구가 아니라 하나의 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믿게 되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적절한 시기가 있다.”
그 시기가 남들보다 늦었다고 해서 가치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이미 지나갔다고 해서 다시 오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때로는 인생의 우회로를 한참 돌아 나와서야 비로소 ‘이제다’ 싶은 순간을 맞이하기도 합니다.
저에게는 심리학이 그랬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여러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마음이 괴로운 이들에게, 제 경험과 공부가 작은 힌트가 될 수 있다면, 제가 이해한 이론과 제가 겪은 삶을 연결해 조심스럽게 건네보고 싶습니다.
그 길 위에 서기 위해, 저는 오늘도 조금씩 배우고, 정리하고, 쓰고 있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공부의 시기'가 제게 온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시기를 놓치지 않고, 끝까지 잘 살아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