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나의 쓸모는 어떻게 발현되는가.

by 곽준원

어릴 적 제 머릿속에는 하나의 문장이 늘 켜져 있었습니다.


“너는 지금보다 더 잘해야 한다.”


아버지의 목소리였습니다. 지금의 저는 그 말 안에 담긴 의도를 어느 정도 이해합니다. 경쟁이 치열한 시대를 살아온 한 가장으로서, 자식이 조금이라도 덜 고생하길 바라는 마음이었겠지요. 하지만 그 말을 듣던 어린 시절의 저는, 그렇게 깊은 의미까지 헤아릴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저 매번 같은 결론에 도달할 뿐이었습니다.

“나는 늘 부족하다.”

“나는 아직 쓸모가 없다.”


칭찬보다 지적이 많았던 시간 속에서, 저는 천천히 스스로를 ‘결함 있는 존재’로 규정해 버렸습니다. 잘한 일은 금세 잊혔지만, 부족했던 지점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습니다. 시험지의 틀린 문제, 더할 수 있었던 노력, 남들보다 느린 속도. 그런 것들이 켜켜이 쌓여 제 자화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사회에 어떤 쓸모가 있는 사람으로 살고 싶냐'라는 질문은, 오랫동안 제게는 사치에 가까운 문장이었습니다. 쓸모를 상상하기 이전에, '나는 쓸모가 없다'라는 감각이 너무 강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마음 상태에서 맞이한 결혼과 출산은, 제 인생에서 또 다른 혼란의 시기였습니다. 서른 해가 넘는 시간 동안 각자의 테두리 안에서 살아온 두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같은 집, 같은 침대, 같은 식탁을 나누어야 합니다. 머리로는 '당연한 과정'이라고 이해했지만, 실제로 부딪히는 감정의 결은 전혀 달랐습니다.


상대의 말투 하나, 표정 하나에 마음이 크게 출렁이기도 했습니다. 서로 다른 집에서 배워 온 생활 습관, 돈을 쓰는 기준, 피곤할 때 쉬는 방식까지 모든 것이 달랐습니다.


‘나는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왜 저 사람은 힘들어할까.’

‘저 사람은 왜 저런 선택을 당연하게 여길까.’


이런 질문들이 머릿속을 떠다니다 보면, 어느새 결론은 다시 그곳으로 떨어지곤 했습니다.

'내가 부족해서 그렇다.'


아이까지 태어나자, 혼란은 한층 더 짙어졌습니다. 이제는 한 사람의 남편이자 동시에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서 있어야 했습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라는 역할은, 말 그대로 '어깨가 무거운 자리'였습니다.


“어떻게 해야 이 아이에게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

“내가 과연 이 가족을 지켜낼 수 있을까.”


답을 알 수 없는 질문들이 밤마다 머리맡에 앉았습니다. 안 그래도 자신을 부족하다고 느끼던 사람이, 이제는 '가장의 역할'이라는 옷까지 입게 되었으니, 마음은 쉽게 어둠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그 시기를 저는 지금도 암흑기였다고 부릅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을 걷는 기분이었습니다. 앞이 잘 보이지 않으니, 한 걸음을 떼기도 전에 수십 가지 상상을 했습니다.


‘지금 이 선택이 잘못된 건 아닐까.’

‘내가 이렇게 부족한데, 이 가족은 괜찮을까.’


자꾸만 스스로를 깎아내리다 보면, 삶의 의미를 묻는 질문도 깊어졌습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 태어났을까.'

'내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질문은 때로 아주 철학적으로, 또 때로는 아주 절망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마음이 어두운 날에는, 그 질문이 '이렇게까지 애써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가'라는 회의로 바뀌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아주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변화의 씨앗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삶이 답을 먼저 내어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나는 누구인가'를 알고 싶다는 마음이 조금씩 올라왔습니다.


그 마음은 저를 책 앞으로 데려다 놓았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버티기 위한 수단처럼 책을 펼쳤습니다. 누군가의 이야기에 잠시 기대고 싶었고, 내 감정을 조금 객관적인 문장으로 바라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점점, 책 속의 문장들이 제 과거와 연결되기 시작했습니다. 상처받은 어린 시절의 기억, 완벽주의에 갇혀 있던 청년기의 모습, 그리고 아버지가 반복하던 그 말의 진짜 의미에 대한 이해까지. 책을 읽고, 그 안에서 제 마음의 모양을 찾는 일이 이어지면서, 조금씩 어둠 속에서도 방향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에 제가 크게 깨달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내 삶의 쓸모는,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오는 과정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릴 적에는 꿈을 대부분 명사로 배웠습니다. 의사, 변호사, 선생님, 개발자, 공무원.. 하지만 책을 읽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통과하면서 꿈은 결국 동사여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나는 무엇이 될 것인가'보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 사람인가'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몸으로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그 지점에서, 제 ‘쓸모’도 조금씩 모습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자기 계발이라는 말을 저는 예전에는 약간 촌스러운 단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기 계발서 코너에 줄지어 서 있는 책들을 보면 왠지 과장된 희망을 파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암흑기의 터널을 지나면서, 저는 자기 계발을 다른 언어로 번역하게 되었습니다.


“내 안에 쌓여 있던 경험을, 어떻게 하면 지혜로 변환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과정.”


삶에서 겪어온 수많은 실패와 시행착오, 남들에게 말하기 부끄럽던 상처와 결핍, 그리고 그 속에서도 어떻게든 버티며 살아온 시간들. 이것들을 단지 '불행한 과거'로만 남겨두지 않고,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이야기로 바꾸는 작업, 그게 바로 제가 이해한 자기 계발이었습니다.


양파를 까듯 하나씩, 겹겹이 쌓여 있던 감정과 기억을 들춰 보고, 그 안에서 작은 통찰을 발견해 기록하는 일. 그 과정을 통해 '나는 아무 쓸모없다'라고 느끼던 제가 '이 경험, 누군가에게는 필요할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제 쓸모는 비로소 세상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인류의 역사를 크게 보면, 우리는 늘 누군가의 경험 위에서 다음 발을 디뎌 왔습니다.


어느 한 사람이 실패 끝에 깨달은 지혜가 기록이 되어 남고, 그 기록을 읽은 다음 세대가 실수를 조금 덜 하며 살아갑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서로의 삶을 딛고, 또 다른 삶을 꾸려왔습니다.


저는 그 거창한 흐름의 끝자락에 아주 작은 점 하나라도 찍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오늘 겪는 혼란, 깨달음, 후회, 기쁨이 어느 날 누군가에게 적절한 인사이트가 된다면, 그래서 그 사람의 삶이 조금이라도 풍요로워진다면,


그것만으로도 '아, 내 쓸모는 꽤 유용하구나'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제가 쓸모를 느끼는 장면들은 대부분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납니다.


멘토링을 할 때, 대학에서 직무 상담을 할 때, 취업 준비생의 포트폴리오를 함께 들여다보며 방향을 잡아 줄 때, 심리 독서 모임에서 각자의 마음을 나눌 때. 이런 순간들이 모여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역할을 보여줍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듣고, 조금 앞서 비슷한 길을 지나온 사람으로서 조심스럽게 조언을 건네고, 함께 현실적인 선택지를 정리해 주는 일.


그 과정에서 상대가 "아, 이제 조금 알 것 같아요."라고 말할 때, 표정이 조금 편안해질 때, 어깨의 긴장이 살짝 풀리는 느낌이 전해질 때, 그제야 저도 제가 쌓아온 경험들이 헛되지 않았음을 실감합니다.


돌아보면, 이 모든 것은 제가 한때 '암흑기'라고 부르던 시기를 지나왔기 때문에 가능해진 일들입니다. 깊이 파인 상처를 겪어 본 사람만이 비슷한 상처 앞에 서 있는 사람에게 조금 덜 당황하며 다가갈 수 있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과거의 저조차도 이제는 '쓸모없는 시간'이었다고 쉽게 말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쓸모라는 말에는 어딘가 차가운 뉘앙스가 섞여 있습니다. 유용한가, 효율적인가, 성과를 내는가. 하지만 저는 이제 쓸모를 조금 다르게 바라보고 싶습니다.


“누군가의 삶에 작은 흔적을 남기는 것, 그래서 그 사람의 내일이 오늘보다 조금 덜 막막해지는 데 내가 한몫했다면, 그것이 바로 나의 쓸모다.”


그 흔적이 거창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한 문장, 한 번의 상담, 한 번의 진심 어린 경청이라도 충분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눈에 띄는 결과만이 쓸모를 증명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드러나지 않는 자리에서 꾸준히 쌓이는 이해와 위로도 누군가에게는 분명 소중한 자원이 됩니다. 저는 그런 방식으로 저의 쓸모가 발현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저는 여전히 완벽과는 거리가 멉니다. 가끔은 예전처럼 스스로를 깎아내리기도 하고, 마음이 무너지는 날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 달라진 점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나는 아무 쓸모없다'라는 문장이 제 존재 전체를 덮어버리곤 했다면, 이제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완벽하지 않지만, 내가 걸어온 길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믿음은 내일도, 모레도, 어제보다 조금 나은 삶을 살기 위해 한 걸음 더 내딛게 만드는 힘이 됩니다. 오늘도 저는 바랄 뿐입니다. 어제보다 조금 더 성숙한 마음으로, 조금 더 단단한 태도로, 조금 더 따뜻한 시선으로 사람들을 대하며 저의 쓸모가 누군가의 삶 속에서 조용하지만 분명한 방식으로 발휘되기를.


그렇게, 저 자신에게도 '그래, 너는 충분히 쓸모 있는 사람이다'라고 조용히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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