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죄책감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버림받을까 봐 두려운 마음에서 시작한다.

by 곽준원

부모들은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면 심부름도 시키며 슬슬 사회생활을 맛보게 한다. 가장 좋은 연습은 직접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소심해서인지 해보라고 권해도 잘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들은 나와는 다르게 이상하게도 자신이 직접 하겠다고 호기심을 발동한다. 무슨 차이일까. 아마도 어려서부터 완벽주의 성향이 강해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부모의 부정적 피드백에서 비롯된다. 호기심의 크기는 부모가 지지해주고 든든한 후원자가 되는지에 따라 달라지지 않을까.


초등학교를 입학한 후 어머니는 심부름을 종종 시키셨다. 어느 날 1,000원을 주시며 빵집에서 자주 먹는 식빵을 하나 사 오라고 심부름을 시키셨다. 밖에서 실컷 놀지 못하고 거의 집에만 있었던 시기였다. 기회는 바로 이때다 싶어서 어머니에게 돈을 받고 신나게 대문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집에서 나와 길을 따라 조금 내려가다 보면 왼편에 빵집 간판이 보였다. 그리고 오른편에는 아이들의 신세계가 있었다. 바로 오락실.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옮긴 곳은 빵집이 아닌 오락실이었다. '한 판만 하고 빵 사서 집에 가야지.'라고 다짐했다. 그 다짐은 한 판을 하고 난 후 까맣게 잊어버렸다. 아쉽게 끝난 한 판이 또 다른 한 판을 불러일으켰다.


오락실에서 하는 게임이 너무나 즐거웠다. 게임이 자극적이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집에서 혼자 심심해서 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열심히 동전을 바꾸고 이 게임 저 게임 번갈아가며 신나게 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게임을 하고 있는데, 뒤통수에서 무언가 이상한 느낌을 감지했다. 강력한 살기가 느껴졌다. 뒤를 돌아보니 어머니가 있었다. 꿈이었으면 하고 생각했다. 그래도 진행하던 게임을 멈추고 집으로 돌아가기가 너무 아까웠다. 어차피 혼날게 뻔한데 하던 게임은 끝내고 가려고 했다. 열심히 조이스틱을 움직이고 버튼을 눌렀다. 평소에 돈이 아까워 구경만 하던 복싱 게임이어서 더욱 그만두기 싫었다. 그 게임이 왜 그렇게 재밌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열을 올리며 열심히 버튼을 눌렀다. 결국 끝내지 못하고 어머니 손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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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공개 장소에서는 절대 야단치지 않으셨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도 있지만, 나름 아이를 위한 배려였다.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하면 아무래도 아이가 수치심을 느낀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계셨다. 집에 도착하고 어마 무시하게 화가 난 어머니는 심부름시킨 돈은 어디 있냐고 물어보셨고, 게임하고 남은 돈 650원을 주머니에서 꺼내 바닥에 놓았다. 사실 그 뒤로는 기억이 없다. 엄청 맞았고 울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심부름을 시켰더니 사 오라는 빵은 안 사 오고 그 돈으로 오락을 했으니 뒤지게 혼날만하다. 어머니에게 호되게 혼난 후 집에 잠시 머물고 계셨던 외할머니께서 나를 달래주셨다. 외할머니의 품에 안겨 오래도록 훌쩍거렸다. 외할머니는 아무 말씀하시지 않고 그저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그러는 중에도 부엌에서 여전히 어머니는 호통을 치셨다. "뭘 잘했다고 계속 훌쩍거려!"


외할머니께서 아무 말씀 안 하셨지만 나는 외할머니에게 죄송한 마음에서 오는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사실 어머니가 주신 돈은 그대로 있었다. 외할머니가 머물고 계셨던 방의 옷장에서 1,000원을 꺼내 오락실에서 사용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외할머니는 돈을 꺼내 사용한 것을 알고 계셨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 말씀하지 않으시고 그저 혼나서 훌쩍거리는 손주를 달래주셨다.


외할머니와 어머니에게 지금껏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오직 아내만 알고 있다. 이야기를 꺼내면 분명 다시 혼날 것이 분명하고 나의 잘못으로 인해 외할머니가 저를 멀리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불안감 때문이다. 그런 불안감으로 인해 중년이 되도록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어린아이의 마음에 이런 식으로 죄책감이 만들어지는 듯하다. 죄책감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감정은 본능적으로 갖고 태어난다고 볼 수 있다. 그저 인간이 성장하며 느끼는 다양한 감정은 표현해야 알 수 있다. 그래서 이제는 다 털어놓고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들어주실 외할머니는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다. 작년 3월 말에 모든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하셨기 때문이다.


나의 완벽주의 성향은 사실 외할머니로부터 시작되었다. 외할머니는 서랍장에 있는 옷을 차곡차곡 깔끔하게 정렬하여 넣으셨고, 옷을 꺼낼 때마다 흐트러짐 없이 깔끔하게 정리된 상태여야 했다. 그 성향은 어머니로 이어져 지금의 나에게 영향을 미쳤다. 하늘에서 어쩌다 어른에서 진짜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나를 보시고 계신 외할머니에게 죄송하고 고맙다는 말 정말 전하고 싶다. 지금 생각해보면 솔직하게 이야기했어도 혼내지 않으셨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랬으면 나의 내면 아이는 조금이나마 불안을 해소했을 텐데 말이다. 이제 정말 내면의 슬퍼하는 아이에게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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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죄책감이 지나칠 경우 아이의 정서적 발달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자기 비하적인 부정적 사고방식을 갖게 되어 매사 자신감이 떨어지고 위축된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행동은 실패라고 생각하여 무기력한 삶을 살아간다. 자율성을 회복하지 못한 울분은 부모의 모든 기대를 파괴하려는 행동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표현하지 않은 감정은 다시 본인을 향해 되돌아와 모든 기대에 부정적으로 반응하기에 이른다.


아이들이 갖는 죄책감은 나의 잘못을 표현했을 때 상대방이 멀어질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시작한다. 그런 불안함을 안고 계속 삶을 살아간다. 절대로 아이의 정직함을 혼내지 말아야 한다. 솔직한 마음과 행동을 공감해주어야 하고 잘못된 행동은 왜 잘못된 것인지 설명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행동을 하면 부모의 감정이 어떤지 아이에게 알려주어야 아이는 부모의 말을 신뢰하기 시작한다.


어린 시절 불안한 마음은 내면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어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상처 받았던 내면 아이는 어딘가에 웅크리고 앉아있고 다른 행동으로 불쑥 나타난다. "네가 정말 잘못하고 실수해도 사람들은 너를 버리지 않아, 하지만 나쁜 짓을 계속한다면 그런 행동들로 인해 외할머니가 더 슬퍼하실 거야. 앞으로는 그러지 말자. 알았지?"라고 불안해하는 내면 아이를 위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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