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감정에서 분노가 쉽게 드러나는 감정이다. 분노는 분개하여 몹시 화를 내는 감정 상태를 뜻한다. 화는 내면 낼수록 더 커지고 그 당시의 아주 작은 카타르시스이며, 끝내 허무감과 공허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분노를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어디 그게 쉬운 일인가. 도저히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분노하는 순간도 많다.
그렇지만 분노로 인해 무엇을 얻는지, 혹은 어떤 손해가 뒤따르는지 냉정히 따져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어떤 상황에 분노라는 감정이 나타나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일생을 살며 가장 분노가 발생하는 지점은 3가지가 있다. 그 3가지는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꼰대 마인드', '근거 없는 억지 주장'이 그 3개다. 어찌 보면 나를 무시하거나 모욕감을 주는 행위라고도 볼 수 있지만, 세분화해서 3가지로 분류하고 싶다.
유년 시절부터 부모님의 교육 철학은 신뢰, 신용이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있다. 둘의 차이는 감정을 믿느냐 안 믿느냐다. 그러니 신뢰는 감정적으로 믿는 사람, 신용은 경제적으로 믿음을 주는 관계를 뜻한다고 생각한다. 신뢰는 어머니에게서 신용은 아버지에게서 파생되었다. 아버지는 남을 믿지 않으시고, 오로지 경제적 가치인 화폐로 사람을 판단하신다. 그런 영향으로 감정은 언제나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듯하다. 그리고 믿지 못한다.
그래서일까. 아버지의 경제 행동 이외의 모습에서 '내로남불'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유교 문화에 길들여져 있는 제사 문화 속에서 가끔 어머니와 명절을 보내려고 충청북도 청주로 길을 떠났다. 그 당시에는 고속도로가 지금처럼 유연하게 건설되어 있지 않았고, 중부와 경부 고속도로 둘 뿐이었다. 당연히 모든 사람들이 민족 대이동인 추석과 설 명절에는 교통 대혼잡으로 이어졌다. 청주라는 도시를 가기 위해 12시간이라는 시간을 자동차 안에서 보낼 정도였다. 아버지는 가끔 참석하지 않은 고통의 명절 나들이였다.
세월이 흘러 나에게도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생기고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했다. 그리고 가끔 부모님을 만나러 주말 시간을 이용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는 독박 육아에 지쳐 에너지를 회복하고 싶어 했다. 때마침 열렬히 응원하는 야구팀인 한화 이글스 경기의 단체 관람 소식이 들려왔다.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아내에게 경기장에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오라고 했다. 아들과 나는 부모님을 만나러 다녀왔다. 나의 분노는 그날 발생했다.
아버지는 며느리가 없이 방문한 모습을 보며 언짢아하셨다. 가족이 다 함께 다녀야 한다며 나를 책망하셨다. 아내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이유에 대해 아무리 설명해봐야 막무가내셨다. '내로남불'이다. 나는 어머니와 단둘이 민족 최대의 명절을 몇 번이나 보냈는데, 아버지는 그건 자신이 이유가 있어서 괜찮고, 아내 없이 아들과 둘이 방문한 나의 행동에는 잘못이 있다고 하셨다. 이렇게 며느리 없이 올 바에는 오지 말라고까지 언급하셨다. 서로의 마찰로 공기는 급속도로 차가워졌다. 급기야 아버지는 하루 종일 불편한 내색을 보이시며 집으로 돌아가는 아들과 손주의 인사도 받지 않으셨다. 그 모습을 보며 분노가 사그라들지 않아 며칠 동안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언제나 호통은 아버지의 몫이고, 인내는 나의 몫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분노의 상태가 지속되면 나도 모르게 약자에게 화를 낸다는 데 있었다. 나의 상태를 점검해야 했고, 심리 상담을 받았다. 그렇게 마음을 다스리는 와중에 매형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평소에 연락을 자주 하지 않아서 무슨 일인가 궁금해하며 전화를 받았다. 서로 안부를 묻는 대화가 끝나고 매형은 아버지와 있었던 일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꼰대의 조언을 시전 했다. "야. 너 그러다 나중에 후회해. 나는 뭐 아버지와 관계가 좋아서 그러는 줄 아냐. 나도 참으면서 지내는데 너도 아버지에게 잘해." 그 순간 지금까지 잘 다스리던 분노가 다시 한번 폭발했다.
지금껏 분노를 다스리려고 노력한 상담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어떤 이유로 분노가 발생했고, 마음 상태가 어떤지 가족 중에 물어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공감하지 못하고 어떤 상황인지만 파악하는 의사소통 방법은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꼭 정답이 있어야 하고, 그래야만 하는 당위적 사고로 옭아맨다. 이렇게 분노가 치밀어 오를 경우에 미친 듯이 달리지만, 그날은 아무리 달려도 도저히 분노가 가라앉지 않았다. 신경 안정제를 복용하고 평상시 상태로 돌아올 수 있었다.
분노를 다스리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상황을 인지해야 하고, 내가 어떤 상황에서 화가 나는지 알아야 한다. 인지한다면 마음의 상태를 인정해야 한다. 분노라는 감정 상태를 거부, 회피, 합리화하다 보면 분노를 전혀 다스릴 수 없고, 그 이면에 있는 다른 감정을 파악할 수 없다. 극한 분노의 감정 상태에서는 사실 이성적인 뇌가 기능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절제력 없이 폭력을 휘두르거나 폭언과 실언과 같은 실수를 한다.
대부분의 분노는 관계 속에서 발생한다. 그러니 분노가 발생하는 그 자리를 피하는 게 우선이다. 회피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일단 분노 자체를 더 키우지 않기 위해 필요한 처방이다. 지금은 타인의 다름을 상당히 배려하고 인정하는 마음가짐으로 분노의 감정이 쉽게 나타나지 않지만, 최대한 내가 분노하는 지점을 알고 있어서인지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한다. 마음이 가라앉지 않을 때는 산책을 하거나 운동으로 침투적 사고를 막으려고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