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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황작물 Feb 05. 2021

누구도 나를 버릴 수 없어서 사랑할 일만 남았다

과거와 결별하고 싶은 이들께 권합니다, 넷플릭스 영화 '탈룰라'

어린 시절, 부모님의 다툼이 잦았다. 이혼 이야기 또한 심심치 않게 흘러나왔다. 밤중에 싸움이 시작되면 나는 돌림 노래 같은 기도를 올렸다. 부디 이 싸움이 빨리 끝나게 해 달라고. 그런다고 크게 달라질 것 같진 않았지만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었다.


싸움이 고조되면 이혼 후 삼남매의 거취 문제까지 단골 소재로 불려 나왔다. 아빠는 자식은 엄마가 키우는 거라며 우리를 떠넘겼고, 엄마는 본인은 키울 능력이 없으니 당신이 키우라고 맞받아쳤다. 나는 언니와 함께, 때로는 잠든 언니 옆에서, 참 많이도 울었다.


부모님의 이혼보다 더 무서웠던 것은 내가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공포였다. 보육원에서의 삶을 일반화하거나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당시의 내게는 세상 무엇보다 두려운 일이었다.


엄마를 쏙 빼닮은 언니는 늘 엄마 편이었고, 그래서 더 사랑받는다 생각했다. 대단한 대우를 받은 것은 아니지만 동생은 나와 다른 ‘아들’임을 감지했다. 그러니 누군가 버려져야 한다면, 필시 나일 거라고 짐작했다.


당시라서 가능했던 비합리적인 사고다. 실제 부모님은 우리에 대한 책임을 방기하지 않았고 그런 상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설령 그런다 해도 굳이 나만 홀로 떨어뜨릴 리도 없다. 하지만 나는 꽤 자주, 세상에 혼자 버려지게 될까 두려웠다.


한 번 달라붙은 공포는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성인이 되었고, 누가 떠날지언정 ‘버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늘 불안했다. 사랑을 할 때면 연인을 끝까지 시험했다.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 내게 얼마나 실망해야 떠나지 않을지 확인하려고 들었다.


결국 모두가 떠났다. 그들이 못나서가 아니라, 그들이 떠날 때까지 내가 악랄했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이길 수밖에 없는 공식이었다. 당신은 반드시 떠날 거야, 하는 믿음을 증명하는 것.


내 인생에 결혼은 없으리라 다짐했다. 실패할 거라 확신했고 굳이 그것까지 증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누군가를 만났다. 첫 만남에서 되도 않는 비트박스를 하고, 아메리카노를 후후 불어 먹는 모습이 대체 뭐가 좋았는지, 그와 결혼하게 되었다.


하지만 마법은 없었다. 나는 지금도 종종,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사소하게 찾아오는 불운 앞에서 극단을 상상하고, 행복한 순간에도 언젠가 찾아올지 모르는 불행을 떠올린다. 상상력은 희망이자 괴물이 되었다.


숫자로서가 아닌 진짜 성인이 되길 희망하는 나는, 공포심이 덮치려고 할 때마다 되뇌인다. 누구도 나를 버릴 수 없다고. 어떤 상황이 오든, 나는 결코 버려질 수 없는 존재라고. 이 독백의 힘은 꽤 커서 어두운 공상 속에서 나를 건져 올린다.


<탈룰라> 포스터 @넷플릭스


넷플릭스 영화 <탈룰라>는 과거에 얽매인 세 여인을 축으로 하고 있다. 처음엔 영문도 모른 채 해맑게 웃고 또 우는 아이 때문에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나니, 모두가 나였다.


주인공 탈룰라는 남자친구 니코와 함께 부랑자와 같은 삶을 살아간다. 식당에서 버린 음식을 주워 먹고, 가끔은 도둑질도 하고, 볼 일은 아무데서나 본다. 낡은 밴이 그녀의 집이고, 이것이 그녀의 삶이자 현실이다.


여섯 살 때 엄마가 떠난 뒤 되는대로 살아온 탈룰라와 달리,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온 니코는 이런 삶이 지겹다. 그가 직업을 갖고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으며 ‘현실적으로’ 살아보자고 제안하자, 탈룰라는 단번에 거절한다. 그녀로선 다른 삶을 상상할 수 없다.


니코가 한 마디 작별 인사도 없이 떠나버리자 탈룰라는 그의 엄마인 마고를 찾아가지만 문전박대를 당한다. 허기를 해결하고자 아무 호텔에 들어가 누군가 남긴 룸서비스 음식을 주워먹던 중, 그녀를 청소부로 오인한 캐롤린이 덜컥 아이를 맡기고 외출한다.  


엉겁결에 한 살짜리 아이를 돌보게 된 탈룰라. 밤늦게 캐롤린이 돌아왔지만 술에 취해 아이는 안중에도 없다. 탈룰라는 돈만 챙겨 떠나려 했지만 우는 아이를 두고 떠날 수 없어 저도 모르게 아이를 데리고 나온다. 그리곤 갈 데가 없어 다시 마고를 찾아간다.


마고는 학업을 마치기도 전에 계획에 없는 임신을 하게 되어 아내이자 엄마가 되었다. 남편과 아들을 사랑하며 그것이 최선인 줄 알았지만, 뒤늦게 성 정체성을 찾은 남편은 이혼을 요구하고, 아들도 집을 나가 행방조차 알 수 없다. 고급 아파트, 비싼 물건들에 둘러싸여 살지만 그녀에게 남은 것은 고독뿐이다.


어린아이를 방치한 캐롤린을 지탄하기는 쉽다. 아동보호국에서 나온 직원 역시 그녀를 거세게 비난한다. 지독하게 가난하거나 약물에 쪄들었다면 죄는 용서할 수는 없어도 이해는 할 수 있다고. 하지만 당신은 용납조차 되지 않는다고. 캐롤린은 말한다.


“내 인생을 살아보고 말해.”


남들에게 운 좋다는 소리를 들으며 결혼했지만 남편은 캐롤린을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행복해지고 싶어서 아이를 낳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다. 스스로 엄마 자격이 없다는 생각에만 빠져 들어 헤어나올 수 없다. 타인지향적인 삶의 폐해라고 차게 일갈하고 싶지만, 나 역시 이에 자유롭지 못하다.


어디까지가 과거이고, 어디서부터가 현실일까. 그 모호함에 경계를 긋기 위해서라도 나는 과거를 직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를 딛고 일어서려면 최소한 내가 밟고 있는 게 무엇인지는 알아야 할 게 아닌가.


사람이라 실수한다. 때로는 나의 실수로, 때로는 타인의 실수로 고통스럽다. 과거의 나와 남을 비난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내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인지 알아보는 건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영화의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겠다. 다만 이것만 덧붙이고 싶다. 세 여인은 서로를 알아보았고 나아가 그들 자신을 만났다고. 나는 배우자의 사소한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을 그만두었다. 실컷 사랑할 일만 남았다.


과거의 연장이 아닌, 오늘을 살고 싶은 이들과 함께 보고 싶은 영화, <탈룰라>다.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 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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