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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황작물 May 20. 2021

친구가 문제집을 훔쳤다

정의란 무엇인지, 여전히 헷갈립니다

주변에 질풍노도의 청소년이 없어서 지금은 어떤지 잘 모르겠다만, 20여 년 전 내가 단발머리 중학생일 때는 꽤 많은 아이들이 도둑질을 했다. 정의감에 불타오른 친구들은 악덕으로 부를 쌓은 이들의 돈을 훔쳐 어려운 친구들에게 골고루 나눠 주며 새로운 사회 정의를 실현했다.


… 는 개뿔. 홍길동 뺨치는 대도 이야기는 들어본 적도 없다. 머리핀이나 껌, 기껏해야 포스트잇 정도의 좀도둑질이 판을 쳤다. 집안 형편이 어렵거나 불량한 아이들의 전유물이었던 것도 아니다. 타의 모범이 되던 우리 반 1등이 내게 했던 말을 또렷이 기억한다.


“요즘 어느 바보가 껌을 돈 주고 사 먹어?”


멀리서 찾지 말자. 그 바보, 바로 여기 있다. 


딱히 도덕관념이 투철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내 안엔 예나 지금이나 못된 악마가 수백쯤 득실거리고 가끔 표출되기도 한다. 다만 나는, 만일 발각될 시 집에서 쫓겨날 것을 굳게 확신했다. 곱게 쫓겨나면 다행이지, 엄마에게 머리털을 다 뜯기고 만신창이가 된 상태로 집 밖을 배회할 것을 생각하면 멀쩡한 머리털까지 쭈뼛 섰다.


친구들이 문제집을 훔쳤다


어느 날, 친구 둘과 함께 서점에 갔다. 가는 길에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다. 친구들이 문제집을 훔치려고 작당 모의를 했던 것. 나는 절대 그 일에 동참할 수 없다고 말했고, 겁 많고 고지식한 나를 아는 친구들은 서점 안에서는 아예 따로 다니며 내 곁에도 오지 않을 것을 약속해주었다.


더 근사한 사람이었다면 친구들을 바른 길로 설득했겠지만, 난 그럴 능력이 없었다. 이 정도의 소외감을 이겨내는 것만 해도 나에겐 모든 에너지가 필요했다. 터덜터덜 서점에 들어선 나는 당시 유행하던 유달리 긴 제목의 시집들을 구경했고, 친구들은 목표물로 향했다.


한참 책을 읽다 고개를 들어보니 친구들이 보이지 않았다. 부랴부랴 나오는데 어디 있었는지 보이지 않던 친구들이 내 곁으로 와 팔짱을 꼈다. 그저 웃으며 함께 출구를 빠져나가는 순간, 올 것이 왔다. 삐-하는 경보음이 울린 것이다. 


친구들의 가방에서 문제집이 나왔다. 우리는 서점 직원에 의해 사방이 책으로 둘러 쌓인 비좁은 창고로 끌려가다시피 했다. 나는 왕따가 될 것을 불사하고 사실 그대로, 나의 결백을 주장했다. 


“전 아무것도 훔치지 않았어요. 보내주세요.”


그날, 책등으로 머리를 사정없이 맞은 건 나 하나다.


“네가 제일 나빠. 넌 양심도 없고, 의리도 없냐?”


문득, 얼굴도 가물가물한 그 아저씨에게 자필 편지라도 쓰고 싶다. 아저씨, 그때 그 소녀는 정말 도둑질을 하지 않았답니다. 아저씨에게 의리란 무엇입니까? 저에겐 친구들을 계도할 힘이 없었습니다. 


내가 본보기로 맞았기 때문인지 뒤이어 결백을 주장하는 친구들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아저씨는 당장 집 전화번호를 내놓으라고 말했다. 나는 결단코 그 일만은 막아야 했기에 그럴 수 없다고 강하게 저항했다가 몇 대 더 맞았다. 친구 하나가 결국 전화번호를 댔다. 


@pixabay

택시를 타고 헐레벌떡 오신 친구 어머니는 딸에게 정말 네가 훔쳤냐고 물었다. 친구는 그러지 않았다고, 아까 다른 학교 애들과 잠깐 시비가 붙었는데, 그 애들이 넣어 놓은 것 같다고 말했다. 내 눈에도 연기가 약간 어색했지만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어머니는 격분하며 직원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이봐요! 지금 애가 아니라고 하잖아요. 훔친 게 아니라고 하잖아요. 봤어요? 당신이 봤냐고요? 보지도 않았으면서 왜 사람 말을 안 믿어요? 이렇게 비좁은 데 가둬 놓고 몰아세우면 어떡해요? 내 새끼 상처 받으면 그건 어떡할 거예요? 죄 없는 애 도둑으로 몰아넣으니 속이 시원해요?”


지금까지도 어머니의 기세를 잊을 수가 없다. 일동 모두 당황한 가운데 어머니는 안 되겠다고, 경찰서에 가자고, 모두 다 같이 가서 잘잘못을 따져 보자고 주장했다.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은 몰랐는지 아저씨는 우리를 황급히 돌려보냈다. 어머니는 여기서 물러서지 않고 아이들에게 사과하라고 주장했지만, 우리의 만류로 그 일은 일단락되었다.


우린 그날 친구 어머니가 사주신 떡볶이와 김밥을 배 터지게 먹었다. 어머니는 살다 보면 별 일이 다 있는 거라며 우리를 위로했다. 떡볶이는 맛있는데 눈물 콧물이 쏟아졌다. 집에 돌아와서도 내내 착잡했다. 나를 콕 짚어 때린 서점 아저씨가 미운데 불쌍했고, 친구가 부러웠고, 뭔가 찜찜한데 할 말도 없고. 


가끔, 일 없이 그때가 떠오른다. 나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 친구는 좋은데 도둑질은 싫었다. 소외되긴 싫은데 동참하기도 싫었다. 의리와 정의감을 두루 갖춘 소녀라면 어떻게 했을까. 아, 난 그런 소녀가 아니니 생각해봤자 소용없구나. 




...


작은 반전. 그 뒤 며칠 동안 친구와 연락이 되지 않았다. 어머니는 딸을 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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