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황작물 Apr 08. 2021

짚신도 짝이 있다는 말,
하마터면 속을 뻔했다

넷플릭스 영화 <넌 실수였어>, 이상형이란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꿈에 그리던 이상형을 만나 사랑하게 될 확률이 얼마나 될까. 한평생 이상형이란 것을 가져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영 뜬 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나 역시 예의 바른 사람을 좋아하고 무례한 사람을 싫어하는 등 기준이 있긴 하나, 가만 보면 퍽 당연한 것들의 조합이라 나만의 특별한 애호를 드러내진 못한다.


특정한 유형의 사람을 만나길 꿈꿔본 적은 없지만 확실한 건 있다. 책을 좋아하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접속사를 쓸 줄 모르는 사람을 만나 사랑에 빠지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설마 수준 높은 언어 구사력을 요구하느냐 하면, 천만의 말씀. 그의 말을 들어보자.


“이 대리가 어제부터 몸이 좀 아팠어. 그런데 병가를 냈더라고.”


몸이 아파 병가를 내는 그 자연스러운 흐름에 ‘그런데’라니! 연애 초반, 나는 그의 접속사 때문에 종종 혼란을 겪었다. 분명 저기엔 뭔가 있어! 혹시 회사에 무슨 일이 있나? 병가를 낼 수 없는 상황인가? 나는 그에게 반문하곤 했다. 무슨 뜻이야? 뭔가 있는 거지?


정답은? 아무 일도 없다. 맥락? 없다! ‘그래서’가 맞지 않느냐고 물으면 그는 배실배실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이는 것으로 상황 종결. 참고로, 토종 한국인이다. 머리가 상당히 좋은 사람이라는 걸 굳이 덧붙이고 싶은 건 팔은 안으로 굽기 때문인가.


그러나 그 비상한 머리는 정확함은 날려 버리고 오직 창의적인 언어 구사력에 활용되는 듯하니, 나는 늘 폭소를 터뜨리고 만다. 가령 이런 것.


“이제 정말 여름인가 봐. 메뚜라미 우는 소리가 엄청 크게 들려.”

“어릴 땐 산에 가서 민달래로 옷이 하얗게 되도록 신나게 놀았어. 왜 웃어? 민달래 몰라?”


나로선 생각해 낼 수 없는 신세계가 하루에도 여러 번씩 펼쳐진다. 그는 내가 짚어주기 전까진 뭐가 잘못된지 몰라 어리둥절해 하고, 그 앞에서 나는 늘 허리를 접어가며 웃어댄다. 덕분에 많은 영감도 샘솟아 그의 어록을 기록하는 것은 나의 일상이 된 지 오래다. 


그런 그, 얼마 전엔 다소 무시무시한 조어까지 선보였으니….


“여보, 당신도 늙나 봐. 얼굴에 지옥꽃이 피었어.”


저승꽃이렷다! 나는 여러 이유로 뒷목을 잡지만 웃음은 빠짐없이 튀어나와 우리의 순간들을 채운다. 단순한 것도 복잡할 때까지 생각해 결국 만사가 어렵다고 한숨 짓는 나를, 이토록 투명하게 웃게 만드는 건 이 사람뿐이다. 책 읽는 여자와 책 싫은 남자의 이 조합, 난 격하게 찬성한다. 



<넌 실수였어>의 팀(데이빗 스페이드 분)은 할머니의 소개로 미시(로렌 랩커스 분)를 만나게 된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이 여자, 만만치 않다. 아이스브레이킹을 한답시고 웬 덩치와 시비가 붙게 하지 않나, 술에 젖은 머리카락을 쪽쪽 빨아 먹기까지.


예의 바르고 교양 있는 팀으로선 고개를 흔들 수밖에 없다.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고 화장실 창문으로 몰래 빠져 나가려고 하는데, 어쩌나. 눈치라곤 1도 없이 거기까지 쫓아오는 그녀다. 한 마디로 이번 소개팅은 폭망!


며칠 뒤, 공항에서 실수로 가방이 바뀌는 바람에 낯선 여인 멜리사(몰리 심스 분)를 만나게 된 팀. 이들은 서로가 퍽 닮은 꼴이라는 사실에 감탄하며 한 눈에 빠져 들게 된다. 


소심한 팀은 용기를 끌어모아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관계는 더 깊어진다. 이 기세를 몰아 회사 임직원 휴가의 파트너로 멜리사를 초청한 팀. 완벽한 이상형인 그녀를 다시 만날 생각에 가슴이 두근대는데, 아뿔싸! 팀 앞에 나타난 것은 바로 엉망진창 소개팅 상대였던 미시. 


알고 보니 그가 이름을 착각해 문자를 잘못 보낸 것에서 모든 사달이 시작된 것이다. 진실을 말할 타이밍은 놓쳐 버리고 우여곡절 끝에 휴가를 함께 보내게 된 이들. 더이상의 스포일러는 하지 않겠다. 살짝 선을 넘나드는 미시의 매력에 모두들 풍덩 빠져 보시길 권한다. 


파격적인 여주인공 덕분일까.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을 벗어나지 않지만 신선하고 발랄해 퍽 유쾌하다. 천방지축 대책 없는 듯하지만 다재다능한 미시. 팀에게 수시로 병을 주지만 곧이어 명약을 내미니 도무지 미워할 수가 없다. 


이상형은 뭐고 천생연분이란 무엇인가. 나와 닮거나 반대여서, 혹은 꿈에 그리던 모습을 찾아서가 아니라 상대의 꽁꽁 숨겨진 모습을 알아보고 또 좋아하게 되는 것, 그러다 상대는 물론 나 자신까지 더 사랑하게 되는 것이야 말로 천상 배필이 되어가는 과정이 아닐까.


짚신도 짝이 있다는 옛말이 있다. 반쯤은 맞고 반쯤은 틀린 말이라는 것을 아시는지. 처음부터 정해진 짝은 없지만 잘 찾아 신다 보면 어느 새 내 발에 꼭 맞는 왼쪽과 오른쪽, 한 쌍이 된다는 것. 얼마 전에서야 이 기막힌 해석을 들으며 선조들의 지혜에 무릎을 탁 쳤다. 


우리 커플은 오늘도 서로가 들려줄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나는 그의 엉뚱한 말과 대책없는 낙관 덕분에 행복을 누리고 그는 사방으로 뻗는 내 관심사를 징검다리 삼아 시선을 넓힌다. 물론 그 반대가 되는 일도 숱하게 있으니 서로의 존재로 웃고 또 배울 수 있다면 그것이 천생연분 아니겠나. 


나는 그의 어록을 풀어놓는 이 순간 또 폭소를 터뜨리며 한없이 즐거웠다. 행여 이상한 유머코드로 읽는 분들을 어이 없게 했다면 심심한 유감의 말씀을 올린다. 우리 커플이야 서로의 팬이 분명하니 ‘지옥꽃’으로 뒤덮일 때까지 사랑할 지어다.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 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나를 구할 당신을 찾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