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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황작물 Jul 20. 2021

병원, 뒤엉킨 실루엣을 보며 공포에 떨었다

납량특집입니다만

수년 전, 급성 간염으로 입원한 적이 있다. 한 달 전부터 몹시 아팠지만 나의 안일함과 지나친 인내력, 감기와 장염 등 반복된 오진이 겹쳐 병을 키웠다. 결국 40도 가까이 오른 열이 내려가지 않아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되고서야 응급실을 찾았다.


30대 초반의 가임기 여성이라 그런지 응급실에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임신 가능성이었다. 없다고 해도 또 한 번 물었고, 다른 사람이 와서 물었고, 종결어미를 바꿔 물었고, 조심스럽게 다시 물었고, ‘만의 하나'를 또 붙여 물었다.


고열과 통증에 시달려 말할 기운도 없던 나는 이마에 써붙이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최근 3개월 간 고추 본 적 없음. 사내랑 말도 섞어 본 적 없음.'


지난한 과정을 거쳐 몇 시간 뒤에서야 간염으로 밝혀졌고, 나는 링거를 주렁주렁 매단 채 소화기내과 병동으로 옮겨졌다. 6인실이었는데, 뜻밖에도 내 옆 침상의 주인은 정신과 환자였다.


병원의 확장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고 내가 입원할 당시 마침 공사 중인 곳이 바로 정신건강의학과 병동이었다. 그리하여 그곳에 입원해야 할 사람들이 곳곳으로 흩어지게 된 것.


모든 환자에게는 귀마개가 지급되고 있었지만 소음을 막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치료를 하겠다는 의지를 높이 사야 하는 건지, 영업을 멈출 수 없는 탐욕인지 모르겠으나, 입원 당시의 나는 소음조차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처음 사흘간은 열이 내려가지 않아 내내 고통스러웠다. 의사들은 병도 병이지만, 열이 내려가지 않는 것 자체가 오래 지속되면 그 자체로 위험하다고 했다. 나는 일단 병원에 왔고 병명을 알게 되었다는 것에 안도했지만, 통증이 쉬이 사라지지 않아 침대에 누운 채 눈물만 뚝뚝 흘려야 했다.


누가 볼 세라 커튼을 꼭 닫은 채 울고 있던 그때, 옆 침대 환자가 한 마디 양해도 없이 그녀와 나 사이의 커튼을 열었다.

“언니. 언니는 어디가 아파요? 왜 울어요?”


나는 갑자기 튀어나온 그녀의 얼굴에 몹시 당황했지만, 애써 진정하며 답했다.

“… 간염이에요. 열이 안 내려서 힘들어요.”


“엄마, 엄마! 언니는 간염이래. 열이 안 내려간다고 울고 있어. 많이 아픈가 봐.”

“…”


나는 지척의 그녀가 무서웠다. 또 말을 걸까 봐, 내가 속옷이라도 갈아입을 때 커튼을 열어젖힐까 봐. 더욱 나를 공포스럽게 한 것은, 아직 열도 내리기 전에, 그러니까 내가 기운을 회복하기도 전에, 그녀가 그녀의 엄마를 때리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한밤 중이었다. 내가 열에 달떠 잠을 이루지 못하고 가만히 눈만 꿈뻑이고 있던 때였다. 그녀의 엄마는 보호자용 간이침대에서 자고 있었는데, 그녀가 갑자기 꺅 하는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나 텀블러를 들고 엄마의 머리를 내리찍었다.


“날 왜 죽이려고 했어? 야, 이 미친년아! 내가 가만 둘 줄 알아?”


달빛이 비추었던가. 복도나 건물 밖의 조명 때문이었던가. 내겐 커튼 너머 그녀들의 뒤엉킨 실루엣만 보였는데, 그건 히치콕 영화를 방불케 하는 공포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나는 몸을 일으키기도 힘들 만큼 버거웠지만 응급벨을 누르기 위해 이를 악물고 일어났다. 다행히 그녀의 엄마가 나보다 재빠르게 일어나 그녀를 제지하는 동시에 벨을 눌렀다. 간호사가 달려와 둘이 함께 그녀를 막았고, 잠꼬대였는지 뭐였는지, 그녀는 그대로 잠이 들었다.


다음 날, 회진이 있을 때 그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 일에 관해 진료실에서 더 심층적인 대화를 나누었는지, 아니면 그걸로 끝이 났는지 나로선 알 수 없다. 그런 일이 자주 있었는지, 처음이자 마지막인지도 나는 알지 못한다.


사람 좋게 생긴 그녀의 아버지가 반찬을 바리바리 싸들고 방문하는 것도 여러 번 보았다. 그의 목소리는 무척 작아 들리지 않았고, 그럴수록 그녀의 목소리는 커져만 갔다. 어느 순간, 그녀는 소리를 질렀다.


“내가 창피해? 나 이거 우울증이라고! 병이라고, 병! 내가 암에 걸리면 그게 창피해? 그게 내 잘못이야? 왜 부끄러워하는데? 자해한 것도 다 병 때문이라고! 충동조절장애라고 하잖아. 의사 말 못 들었어? 아, 왜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데?”


얼굴이 시뻘게진 그녀의 아빠는 병실을 빠져나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고, 그녀는 그의 등 뒤에 대고 더 크게 소리를 질렀다.

“다신 오지 말라고! 나 창피하게 여길 거면 그냥 오지도 말라고!”


다인실은 그녀에게 장악되어 있었다. 나는 사람을 관찰하는 걸 좋아하여 다른 환자들에 대해서도 한 번쯤 관심을 기울일 법 하나, 그때 입원한 보름의 기간 동안 그녀 외에는 아무런 기억이 없다. 타인의 프라이버시를 간절히 존중하고 싶었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늘 우렁찼고, 나와 그녀의 거리는 채 1미터도 되지 않았다.


내 몸이 조금 나아졌을 때, 그녀는 병원에 상주하는 수녀님을 모셔 와 상담을 나누기도 했다.

“수녀님, 제가 종교는 없고 어렸을 때 절에 다녔는데요. 그래도 상담받아도 되는 거죠?”


수녀님은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요. 그럼요. 아무 이야기나 편하게 하세요. 전 여기 그러려고 있는 거예요.”


“저기요. 저는 연애도 막 많이 하고 싶고 남자도 만나고 싶거든요. 이런 이야기도 해도 돼요? 아, 수녀님한테는 진짜 이건 아닌가? (꺄르륵) 근데 옆 침대 언니 보셨어요? 되게 이뻐요. 근데 또 얼마나 도도한지 알아요? 말 걸어도 단답형으로 답해요. 분명히 연애도 많이 해봤을 거 같아요. 나도 그렇게 도도하고 싶은데 잘 안 돼요. 언니 한번 보여드릴까요?”


미추의 진실 여부를 떠나 이건 또 무슨 대화인가. 다행히 수녀님은 나를 보려들지 않았고, 대화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정돈되었다. 나는 돌아 누운 채, 안도의 한숨을 깊이 내쉬어야 했다.  


정신과 병동에 입원하는 사람들 중에는 극단의 경우도 있겠지만, 나는 대개 정상과 비정상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나 역시 그 경계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쭉 생각해 왔다. 고로 관련된 질환에 대해 별다른 편견을 가진 바가 없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녀는 내게 여러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녀는 내가 퇴원할 때까지 계속 커튼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나는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열린 부분이 없도록 다시 꼼꼼하게 커튼을 닫았으나, 열지 말라고, 제발 말 좀 걸지 말라는 말은 하지 못했다. 나는 그녀가 몹시 무서웠는데 그게 나를 때릴까 봐였는지,  그저 상처주고 싶지 않아서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그녀의 부모를 깊이 연민했다. 그들만의 내밀한 가족사를 알 수는 없으나 그녀의 엄마는 이틀에 한 번 집에 잠시 다녀오는 것 외에는 딸의 곁을 내내 지켰다. 그녀의 아버지 역시 병원에서 숙식을 하지 않을 뿐, 늘 환영받지 못했음에도 부지런한 방문을 멈추지 않았다.


무엇이 문제인지, 혹은 문제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그녀 말대로 그녀의 병이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고 창피하지 않은 병’이라면, 그들은 부모로서, 가족으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녀가 엄마를 때리고, 아빠에게 소리 지르고, 수녀님께 내 이야기를 하던 모든 일을 거치는 동안, 내 병은 점차 호전되어 갔고, 나는 조금씩 기운을 차렸다. 하루 빨리 퇴원할 수 있기만을 고대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른 아침부터 내 커튼이 활짝 열렸다. 이제까지 열리던 커튼은 옆자리 그녀가 마치 친밀한 사이처럼 그녀와 나 사이의 공간을 조금 연 것이라면, 이번에는 활짝, 조금의 남김도 없이 완전히 다 열어젖혀진 것이었다.


어안이 벙벙한 가운데, 내 눈앞에는 그녀의 엄마가 있었다.


“웃어요. 아침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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