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황작물 Dec 17. 2023

이삿짐을 받지 못한 채 한 달 반을 살았다

 짐 없이 사는 삶은 꽤 괜찮습니다

남편의 회사에서 직원 가족의 현지 정착을 위해 제공하는 것은 한국-우즈베키스탄 왕복 항공권과 국내선 항공권(또는 기차표), 월세, 국제 이사 비용이었다. 즉, 살림을 장만하는 비용은 지원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현지에서 구입하면 간편하겠지만 물건의 질을 장담할 수 없으니 한국에서 마련해 보내는 것이 실리적이라고 판단했다. 


필수적인 것만 추려도 꽤 많았다. 귀국할 때 전부 가져오면 되고 평생을 쓸 것이니 잡다하지만 꼭 있어야 하는 것들은 모두 준비했다. 수저, 그릇, 냄비, 찻잔, 조리도구, 밀폐용기와 같은 주방살림부터 사계절 옷과 이불, 양말, 속옷, 수건 등. 


결국 내 계획은 와장창 깨졌지만 출국을 준비할 때까지만 해도 1년간 귀국하지 않을 계획이었기에, 1년 치 식료품도 챙겼다. 고추장과 된장, 갖은양념, 김치, 말린 나물과 어물류, 현지에서 구하기 어려운 통조림 등. 가전과 가구를 뺀 모든 것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준비를 꼼꼼히 마치고 한국-우즈베키스탄 국제이사를 전담하는 업체에 물건을 보냈다. 그 과정에서 수 차례 상의해 날짜를 조율했고 내가 현지에 도착한 이튿날 받기로 했다. 


그러나 약속된 날, 짐은 도착하지 않았다. 해가 저물도록 짐이 오지 않아 연락을 했더니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이 돌아왔다. 짐은 전부 안전하게 타슈켄트에 도착했지만 세관을 통과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문제될 만한 짐은 하나도 없었음에도 그랬다. 이사업체 사장님은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며 양해를 부탁했다.


나는 웃으며 이해했다. 예상하지 못한 일은 언제나 일어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짐은 그다음 날에도, 일주일 뒤에도, 한 달 뒤에도 도착하지 않았다. 이사 비용은 모두 지불한 상태. 그 상황에서 업체가 연락이라도 받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스러웠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그럼에도 한 달이 넘어가자 불길한 예감이 엄습하기도 했다. 


당시 우리가 소유한 것은 내가 두 개의 캐리어에 챙겨간 것이 전부였다. 당장 입을 옷과 속옷, 양말 등. 그중 가장 큰 존재감을 발휘한 것이 있으니 깨질까 봐 우려해 직접 챙겨간 작은 뚝배기 두 개였다. 


그때 사용한 뚝배기. 뚜껑은 깨져서 없지만 여전히 잘 쓰고 있다.


애초부터 짐이 한 달 반 뒤에 올 줄 알았다면 급한 대로 이것저것 샀을 것이다. 하지만 이사업체에서는 계속해 며칠 내에 될 거라고 말했기에 나는 짐을 늘이고 싶지 않아 버티고 또 버텼다. 젓가락은 파는 곳이 없어서 남편의 직장에서 빌려왔고 밀폐가 전혀 되지 않는 플라스틱 반찬통 몇 개만 구입했다.


모든 요리는 뚝배기 두 개로 다했다. 1인분의 솥밥을 위해 장만한 사이즈여서 불편했지만 그럭저럭 할 만했다. 쇠고기 장조림과 멸치볶음, 오이무침도 전부 뚝배기로 만들어 반찬통에 옮겼고 식사 시간에 맞춰 한쪽에는 국이나 찌개를 끓이고 다른 한쪽에는 밥을 안쳤다. 


처음엔 기껏해야 1.5인분의 밥밖에 짓지 못했지만 차츰 요령이 늘어 3인분까지 지을 수 있었다. 든든한 저녁상이 완성되었다. 그렇다고 이른 새벽에도 솥밥을 짓기는 무리였다. 나는 다음 날 아침을 위해 1인분은 누룽지로 만들고 싶었는데 남편이 먹성 좋게 밥을 많이 먹는 날이 잦았다. 그때마다 나는 식사량을 줄여 기필코 누룽지를 사수했다.


몇 주가 지난 뒤 남편이 조심스레 건넨 말에 나는 폭소하고 말았다. 그는 말했다. 미안한데, 밥이 너무 많다고. 내가 그를 위해 식사량을 줄이는 동안, 그는 나를 기쁘게 하기 위해 식사량을 늘리고 있었던 것이다. 짐이 오지 않아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나를 위해 애써 차린 밥을 남김없이 먹는 모습이라도 보여주고 싶었다고. 


우리는 서로를 위한 배려가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으며 양껏 먹었다. 뚝배기 두 개로 차린 단출한 식사는 충분히 근사하고 만족스러웠다. 몇 년간 떨어져 지내다 매일 만나 저녁을 같이 하는 삶. 이것만으로도 더 바랄 것이 없어서 그 보잘것없는 살림살이가 연신 충격을 안겼다. 내게 다른 물건들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한 것이다. 


새로 장만한 것들이 많아 한번 써보지도 못한 채 공중분해되는 것은 아닐까 맘 졸인 것은 사실이지만 당장 그 물건이 없어서 느끼는 불편은 크지 않았다. 오히려 자질구레한 노동으로부터 벗어나 보다 자유로웠다.


한 달하고도 반쯤 지난 뒤에서야 짐이 도착했지만 물건을 바라보는 나의 눈은 바뀌어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물건을 늘리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되었다. 순간적인 충동으로 갖고 싶은 것이 생겨도 깊이 고민한다. 내 삶의 질을 높일 물건인지, 결국 유지하고 보관하고 또 버리느라 애만 쓰게 될 물건인지. 풍요는 결코 물건에서 오지 않으므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