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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황작물 Dec 13. 2023

타슈켄트에 대해 욕하기 없기

나에게 당연한 것이 누구에게나 당연하진 않다는 것

타슈켄트 공항은 신세계였다. 그간 다녀 본 곳 중 독보적인 인상을 남겼다. 공항이 그리 크지 않아 비행기에서 내려 조금만 걸어가면 곧 입국심사대였는데, 어디에도 줄이 없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질서 없이 우르르 몰려가는 것이다. 몇 번 경험이 반복되니 그 와중에도 내 자리를 찾는 법을 배우게 되었지만 처음에는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우왕좌왕했다. 


어디나 그렇듯, 입국심사대 직원은 복불복이었다. 내 여권 사진은 맨 얼굴로 찍고 보정도 하지 않아 민망할 정도로 사실적인데도 실물과 다르다며 한참을 붙들려 있다가 앞머리를 까기도 했고 두 명의 직원들이 다가와 동물원 원숭이 구경하듯 보고 간 적도 있다. 물론 아무런 지체 없이 바로 통과된 적도 있다. 


타슈켄트 공항의 공식 서비스인지, 사설 서비스인지 모르겠으나 얼마간의 돈을 지불하면 짐을 빨리 찾을 수 있다. 덕분에 짐은 어려움 없이 찾았지만 또 한 번의 신세계가 펼쳐졌다. 짐을 기다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비행기에서 참아 온 흡연 욕구를 동시다발적으로 해소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도 내가 어릴 적에는 실내 흡연이 당연시되었으니 처음 보는 광경은 아니지만 새삼 놀라웠다. 


타슈켄트 도심은 제법 현대적이고 고층 건물이 즐비하다. 하지만 건물의 특색이 없어서 아름다움에 감탄한 기억은 없다. 그보다는 부하라와 사마르칸트의 오래된 건물들이 더 감동적이었다. 


내가 살게 될 도시로 가는 국내선 비행편이 많지 않아서 우즈베키스탄에 입국할 때마다 타슈켄트에서 하루 머물러야 했다. 처음 묵었던 호텔은 5성급임에도 건물도, 서비스도 볼품없어서 내가 다 겸연쩍었다. 그다음부터는 저렴하지만 가성비 좋은 숙소를 이용했고 차라리 편했다. 


우즈베키스탄이 다민족 국가라는 것은 타슈켄트에서 또렷하게 드러난다. 따지고 보면 다민족 국가가 아닌 곳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내가 살았던 소도시에서는 내가 어쩔 수 없이 튀는 사람이었고 타슈켄트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이것이 타슈켄트에 대한 내 짧은 인상이다. 



내가 만난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은 손님을 환대했다. 오며가며 만난 이웃들도 집으로 놀러오라고 초청하는 일이 많았다. 한국에서는 낯선 이를 집에 들이는 일이 흔치 않지만 이들은 달랐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막막한 도시에서 이렇게 환영받는다는 것은 무척 고맙고 황송한 일이었다.


몇 번인가 나를 불러주는 이들과 어울리기도 했다. 하지만 언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 채로 어울리는 데는 큰 한계가 있었다. 내가 몸짓 발짓으로 소통하는 적극성이 있는 편도 아니었던 터라 점점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들과만 제한적으로 만나게 되었다. 돌아보면 적잖이 아쉬운 부분이다. 


그렇게 어울리게 된 이들은 나와 처음 대화를 나누게 되면 약속한 듯이 똑같은 질문을 했다. 타슈켄트가 어떠했느냐고. 나는 물색없이 말했다. 공항 내 흡연자들 때문에 숨이 막혔다고. 줄이 없어서 당황스러웠다고. 돈을 내면 짐을 빨리 찾을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고. 건물이 특색이 별로 없는 것 같았다고. 


대화는 곧 다른 주제로 넘어갔고 나는 한동안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많진 않지만 몇 명의 외국인 친구가 있고 그들에게 나는 늘상 한국 흉을 보곤 했던 터라 이 정도는 아주 태연한 잡담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몇 번을 반복하고서야 알았다. 이들이 내게 기대하는 것은 타슈켄트에 대한 감탄이었다는 것을. 이들은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었지만 그보다 현실적인 대상으로서 타슈켄트에 대한 선망을 품고 있었고 나에게도 인정받고 싶어했다. 극심한 지역 불균형 때문일 것이다. 


얼마 안 가 나는 타슈켄트의 넓고 쾌적한 거리, 다양한 사람들, 다채로운 먹거리, 활기 넘치는 번화가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표정은 눈에 띄게 밝아졌다. 이들은 자부심을 느끼며 말했다. 그래서 다들 타슈켄트로 가고 싶어하는 거라고. 나는 그래, 그럴 만해, 맞장구쳤다. 


마음에 없는 말을 하는 것을 무척 싫어하지만 이때만큼은 조금의 거리낌도 느끼지 않았다. 호사스러운 환영에 대한 보답으로 내가 줄 수 있는 것을 주고 싶었고 그 역시 진실이었다. 


우리가 서양인의 나이를 잘 파악하지 못하듯이, 이들은 내 나이에 항상 놀라워했다. 어려 보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피부 관리 비결을 묻곤 했다. 도대체 한국인은 어떻게 그리 피부가 좋냐고, 무슨 크림이라도 바르는 것이 아니냐고 묻는 일도 허다했다. (내 피부는 결코 좋지 않다. 관점의 차이다.)


나는 내숭 없이 답했다. 당연히 바른다고, 왜 아니겠냐고. 역시 뒤늦게서야 알았다. 나에게 당연한 것이 그들에겐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우즈베키스탄 여성은 한국 여성처럼 아침저녁으로 여러 개의 화장품을 겹겹이 바르지 않는다. 화장품을 평생 한 번도 쓰지 않는 경우도 흔하다.


화장품을 쓰는 문화가 선진하거나 그 반대가 후진한 것은 아니다. 굳이 덧붙이자면 나는 현재 어떠한 화장품도 사용하지 않는다. 화장품은 살아가는데 필수적이지 않으며 내겐 아주 귀찮고 성가신 존재일 뿐이라 사용을 중단했다. 그래도 된다는 사실을 알려준 것이 그들이니 내가 한 수 배웠다. 


배운 것은 그것만이 아니다. 내가 당연하다고 느끼는 모든 것들이 결코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배웠다. 나는 빼도박도 못하는 흙수저이지만 대한민국 서울 태생이기도 하다. 어떤 조건들은 내가 택하지 않았음에도 내 입장과 시선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나 당연한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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