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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황작물 Dec 28. 2020

정크푸드를 함께 먹는 것,
사랑인가요?

아직도 사랑을 몰라 늘 배웁니다, 영화 '반쪽의 이야기'를 보고

나는 같이 사는 남자의 높은 혈압을 걱정한다. 그가 영양 면에서는 형편 없는 주제에 칼로리만 높은, 그래서 오죽하면 정크 푸드라고 이름 붙은 것들을 먹으려고 할 때마다 과장 좀 보태 등골이 오싹하다. 그러니 자주 실랑이를 벌인다. 이걸 꼭 먹어야겠느냐고. 나와 오래 살고 싶지 않으냐고.


나야 혈압은 괜찮지만 전에 없던 문제가 생겼다(굳이 따지자면 전지구적 문제, 코로나19). 체육관을 못 가게 된 뒤 체중이 다소 늘었는데 그보다 더 많은 양으로 체지방이 늘었다. 무에서 유가 창조되기도 했고 근육도 지방에게 자리를 넘겼다. 이제 트레이닝복을 제외하면 맞는 바지가 하나도 없다. 


이러니 그 뿐만 아닌, ‘우리’를 위한 식단 조절이 필요할 때다. 그런데 어쩌나. 그는 내가 결코 거부할 수 없는 조합으로 나를 유혹한다.


“떡볶이에 김말이 튀김, 콜?”


내 늘어난 지방의 대부분은 복부에 달라붙은 모양인데, 잘 먹어서 더 불룩 튀어나온 상태가 되고 나면 볼멘 소리가 튀어 나온다. 내가 유혹을 떨치지 못한 것은 뒷전으로 하고, 삼류 드라마에서도 찾아 보기 힘든 촌스러운 대사로 그를 다그친다. 


“이런 게 사랑이야? 엉? 우리 이런 거 먹으면 안 되는 거 알면서?”


그 말을 고이 받아 이제 그 역시 내게 반문하곤 한다. 과자 하나 못 먹게 하는 거, 그건 사랑이냐고. 우리 사랑 그거 밖에 안 되느냐고. 


반쯤 장난 섞어 말하고 있지만 가끔 궁금하긴 하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건강을 위해 지금의 즐거움을 빼앗는 것, 순간의 행복을 위해 미래에 해가 될 수 있는 것을 함께 하는 것, 이 중 정답은 있을까. 뜬금 없는 생각을 하다 보면 질문은 더 내달린다. 옳고 그른 게 없다면 과연 인생이란 무엇인가. 



<반쪽의 이야기> 포스터 @넷플릭스


<반쪽의 이야기>는 사랑에 대해 다소 냉소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고교생 엘리 추로부터 시작한다. “사랑이란 완전함에 대한 추구와 갈망에 붙인 이름일 뿐”이라며 플라톤을 인용하고, 반쪽을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야말로 “인생은 비이성적이고 무의미하다”는 카뮈의 이론을 증명할 뿐이라고 일축하는 소녀.


이러한 문장들은 그녀의 수업 과제물을 통해 센스 있게 등장하는데, 그녀에겐 이 과제들이 곧 아르바이트이기도 하다. 돈을 받고 (친구라고 하기 힘든) 급우들의 과제를 대신해주는 것으로 수입을 창출하고 있는 것. 


교사 역시 이 사실을 알고 있지만 눈 감아 준다. 엘리의 글이 놓치기 아까울 만큼 훌륭하기 때문에. 제자가 재능을 이렇게 허비하는 것이 아까워 그 날개를 펼칠 수 있는 대학에 입학할 것을 추천하지만 엘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장학금을 주는 지역 내 대학에 가기로 이미 마음을 굳혔다. 


엘리에게는 이 마을을 떠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철도 회사의 엔지니어로 승진할 것을 기대하고 이곳에 온 아빠는 언어 때문인지, 아니면 중국계 이민자라는 이유 때문인지 승진이 되지 않아 절망에 빠져 있다. 간이역에서 하루 두 번씩 지나가는 기차를 향해 신호를 보내는 것도 다 엘리의 몫이 되었다.


그런 엘리에게 어느 날 단순하고 우직한 남학생, 폴이 다가온다. 다짜고짜 사랑이냐고? 그럴리가. 리포트가 아닌, 자신의 연애편지를 대신 써달라는 것. 엘리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대신할 수는 없다며 거절하지만 높은 고료(?)와 그의 진실된 마음에 흔들려 애스터를 향한 편지를 쓰게 된다. 


이쯤 되면 많은 관객이 설마, 설마 하며 마음을 졸이진 않았을까. 모의작당을 하던 두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것은 너무 흔한 전개가 아닌가. 뻔한 구석이 아예 없지는 않지만, 또 그렇게 뻔하게만 흘러가지는 않는 것이 이 영화의 매력이다. 


엘리는 애스터와 편지를 주고 받으며 서로가 너무도 잘 통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졸업 후 부유한 집안의 동급생과 결혼이 예정되어 있는 애스터. 그럭저럭 괜찮은 삶이라며 만족하려 하지만 불안과 의심, 저버릴 수 없는 꿈과 갈망이 있다. 그런 애스터를 바라보는 엘리의 눈이 심상치 않다.


굳이 덧붙이자면, 이 영화는 LGBTQ 장르로 구분되어 있다. 하지만 해봐도 모르겠는 게 사랑이라는 것에 공감한다면 누구나 웃으며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뒤섞인 사랑의 작대기가 어디로 향할 지 궁금하신 분들은 영화를 직접 볼 것을 권하며, 나는 청춘들의 인상 깊은 대사 몇 줄을 옮겨 보련다. 


폴: “난 늘 사랑은 한 가지 방식 뿐이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더 많아.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많아. 난 사랑의 방식 때문에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을 관두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아.”


엘리: “사랑이란 엉망진창에 끔찍하고 이기적이고 대담한 거예요. 완벽한 반쪽을 찾는 게 아니라… 노력하는 거예요. 손을 내밀고 실패하는 거예요. 괜찮게 그린 그림을 기꺼이 망치는 거예요. 훌륭한 걸 그릴 기회를 위해서. 이게 정말 네가 그릴 수 있는 제일 대담한 선이야?”


난 그들이 던진 말을 곱씹으며 이번 주말은 또 어떤 정크 푸드를 먹을까 고민해야겠다(이런 전개, 죄송합니다). 가득 차오른 포만감에 몸도 마음도 나른해 질 때쯤, 잘 만든 다큐멘터리 한 편을 틀 생각이다. 철저히 건강과 식이요법에 관한 것을 골라 우리 커플의 정신을 번쩍 차리게 만들어야지. 


사랑, 해봐도 잘 모르겠는 그것을 나는 오늘도 이렇게 만지작거린다. 



(오마이뉴스 기고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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