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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5) 내가 편안히 쉴 수 있게 해주는 장소는 어디?

[작가와 공동집필] 고마운 일상 C.환경 및 상황_ 질문 15.

by 쏘스윗

A) 나의 자작캠핑카!


벌써 두 질문의 답이 되는 곳이다.

이 질문을 본 날, 이 공간에서 나는 나만의 시간을 보내다 돌아왔다.

글쓰기로 이어볼까 했으나, 그날은 몸이 좋지 않아 오롯이 그 공간에서 쉬었다.


몸이 좋지 않아도 집에서 가만히 누워만 있는 것보다,

잠시 산책을 하며 상쾌한 공기를 쐬고, 햇살을 쬐어 준 뒤,

그곳에서 전기장판과 팬히터를 튼 채 문을 열어 놓고 있으면,

상쾌한 공기와 더불어 따스하게 몸을 녹일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갑갑한 집 보다

그곳에 머물며 몸과 마음을 쉬게 할 때가 많았다.


처음이 이 공간을 만들게 된 건 강아지들로 인해 여행이 자유롭지 못했던

10년 차 캠퍼들의 아쉬움으로 시작되었다.

나이가 들면서 캠핑 짐을 이고 지고, 치고 걷고,

여행이 점차 피로해졌기 때문이다.

마지막엔 ‘장박’(캠핑장에 계속 텐트를 쳐두는 것)까지 해보았지만,

장비가 쉽게 상하는 것들이 아쉬워 선호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던 중 ‘자작캠핑카’를 만들어 보자고 작은 밴을 하나 사게 되었다.

남들이 많이 만들고 기성품 자작(? 업체)이 가능하다는 편한 스타렉스를 나는 기어코 못생겼다고 거부했고, 외관이 예쁘다는 이유로 웬 중국차를 하나 찾아다 가져왔다. 회사 이름을 듣고 약 3달 만에 웃었던 기억이 난다. (심지어는 수입업체가 지금은 한국에서 철수를 했고 다른 회사에서 전기차로 나오고 있다.) 아무튼 그 중고차 하나를 가져와 '동풍소콘'이라는 회사명에 배꼽을 잡고 웃은 기억으로 귀엽게 '동풍이'라 이름을 지었다.


손재주가 남다른( 당당ㅎ) 나는 다이소 톱을 가지고, 페인트를 사다가,

방풍재와 벽돌스타일 벽지 등등 인터넷으로 주문만 해주면- 뚝딱뚝딱 공간을 만들어 냈다.

(뚝딱뚝딱은 아닌 것 같다. 뽀짝뽀짝 정도? 천장 루바를 자르고 붙이는 것을 나중에는 결국 아버님이 도와주셨고,

내가 한 부분은 엉망진창으로 다 내려앉아 올해 초에야 다시 손을 봐야 했으니. )


청소를 하고 부품들을 뜯어내고, 장판을 깔고,

집에 있던 싱글 침대를 차의 내부에 맞추어 타이어 부분을 자르고 (이것도 다이소 톱으로ㅎ)

내가 좋아하는 아기자기한 소품들로 공간을 채워나갔다.

단번에 만들어낸 공간이 아니라,

나답게 하나하나 고쳐나간, 하나둘 채워나간 공간이기에

어떤 좋은 캠핑카보다도 내게는 소중하고 애정이 많은 공간이다.


문득 이 캠핑카를 처음 가지고 와서 만들어 갈 때,

‘살아가는 이유 만들기 프로젝트’ 라 이름 붙인 것이 떠오른다.

아마도 그 시간 전즈음, 나는 삶에 많이 지친 상태였다.

좋아하는 일들 보다는 해야만 하는 일들을 하면서 삶의 낙이 없던 시기.

그래서 나무 하나 자르는 것도, 소품 하나 고르는 것도 정말 행복했다.


그런 행복으로 가득한 공간 이어서일까.

나는 마음이 힘들어질 때면, 그곳을 찾는다.

강아지들과 산책 끝에 잠시 쉬었다 가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과 그곳에서 함께 한다.


푸르른 잔디와 파아란 하늘을 보면서 음악을 듣고,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눈다.

한 밤의 야경은 정말 낭만적이다.

맛있는 것을 먹고, 영화를 보는 시간도 참 좋다.


한 번은, 밤에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마음이 가던 이들과

셋이 그곳에서 맥주 한잔을(나는 빼고) 하게 된 적이 있었는데,

천장이 나무로 되어있고 그 좁은 공간에 셋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꼭 고해성사 방 같다는 얘기를 했다.

( 정말 그날 우리는 눈물 콧물을 쏟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


편안함은 어느새 무장해제되어 마음속 깊은 이야기들을

나도 모르게 털어놓게 되는 힘이 있는 것 같다.

그 공간에서 나눈 이야기들은 모두 나에게

조금은 남다른 의미를,

가끔은 특별한 감정들을 가져다주곤 했다.


떠올리면 참 행복하면서도 깊이 슬픈 감정이 드는 순간들,

가장 친한 친구와 가장 오랜 시간 떨어져 있던 시기를 지나

3년 만에 만나 그곳에서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나누어 먹던 순간,

갑자기 나를 보고 싶다고 찾아온 이와 앉아, 갑자기 내린 빗소리를 듣던 순간,

엄마가 된 친구들의 아이들과 함께 조잘대며 노래하며 소꿉장난을 하던 순간,

고해성사를 하던 겨울에 만나 봄을 맞이하고 함께 벚꽃엔딩을 바라보던 순간,

전기장판에 코드가 빠진 줄 모르고 추위에 떨다 발꼬락의 따스함을 느낀 순간.

캄캄한 밤, 숨소리마저 깊어져 마음으로 귀 기울이며 고요함을 느껴보던 순간.

꼬순내 나는 나의 작은 아이들을 그저 가만히 끌어안고 따스함을 느끼던 순간.


나다운 모습으로 가꿔낸 나에게 편안한 공간이,

타인에게도 편안함을 준다는 것도 참 행복한 감정이었다.

그곳에 다녀간 나의 소중한 사람들의 마음에도 그 순간을 떠올리면,

행복하고 편안하고 미소 지어지는 기억으로 남겨지고,

또다시 함께하고 싶은 공간으로 이어지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 얼른 수동운전을 더 연습해야겠다.

(아직 집 앞 말고는 멀리 못 가기 때문에 ㅎㅎ)


자작과정(청소-단열-바닥장판-침상-벽지폼-페인트-천장루바-보수)
자작하는 중간중간 여행지로 뿅뿅
집 앞 작업실이자 나만의 힐링공간

자작 과정부터 힐링 순간까지 영상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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