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FM [책,그리고 이야기] 46회

스윗쏭의 Music is my life #1 소녀와 엄마의 인생곡

by 쏘스윗

인생의 첫 기억이 어느 가을날, 아빠의 병실에서 많은 환자와 보호자들, 그리고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언니들 앞에서 노래를 하던 장면입니다.


제 나이 네 살, 세상 맑은 영혼을 가진 꼬맹이의 역사적인 순간이지요. 그 어린아이의 첫 기억이자 인생 첫 무대는 참으로 암울하고 캄캄하며 삭막한 풍경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깊이만큼의 정도로 대비되던, 눈물 나게 빛나는 관객들의 환한 표정은 제 인생 가장 찬란한 순간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아빠는 그 해 여름부터 그 어린 4살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시간까지 부산의 한 대학병원의 그 병실에 계셔야 했습니다. 갑작스런 대형 교통사고로 미래가 유망하던 기술자 아빠는 왼 다리를 굽힐 수 없게 되었고, 왼 팔도 하나 잃었습니다.

지금의 제 나이보다 10살이나 어렸고 보드라운 꽃같이 연약한 새댁이었던 엄마는 그 세월 동안 대학병원 인턴보다도 상처 드레싱 전문가가 되어 남편의 비명에도 끄떡없는 억척 아주머니가 되셨습니다.


고통 속의 절규와 감정조차 메말라 가던 슬픔의 고요 속에, 맑고 고운 저의 노래는 한줄기 빛과 같이 그들의 얼굴에 밝음을 가져오곤 했습니다. 계속, 힘겹게 살아가는 엄마와 아빠의 얼굴에 웃음을 가져오는 것이 마냥 좋아, 늘 노래하며 살아왔습니다.

우리 가족의 삶에 점차 평온이 겨우 찾아들려고 하던 중3 시절, 또 한 번의 청천벽력과 같은 사건으로 갑작스레 엄마와 이별을 해야 했고, 감당할 수 없는 슬픔과 충격에 빠진 저를 계속 살아가게 한 것은 ‘음악’이었습니다.


건강상의 문제로 노래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을 수는 없었지만, 노래는 살고자 하는 저의 처절한 외침이었고, 엄마와 꿈을 잃고 헤매던 제게 이어폰을 타고 들려오는 음악과 따스한 이야기로 가득한 라디오는 유일한 생명줄이었습니다.


음악은 저희 가족에게도, 그 옛날 어린 날 병실의 사람들에게도, 학창 시절 꿈을 찾아 방황하던 친구들에게도, 세상을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에게도- 지친 하루를 위로하고 다시 힘을 내도록 해주는 신비로운 것이었습니다. 더불어 그 모든 삶 속의 이야기는 그들만의 드라마가 아닌 세상의 빛이 되기도 하고, 머물다 함께 치유되는 온천이 되기도 합니다.


희로애락 모두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삶,

그 삶이 담긴 라디오의 사연,

마음을 울리는 음악과 함께 울고 웃으며 말이죠.


시간이 흘러, 치열했던 삶에 또다시 찾아온 신호로 삶을 뒤돌아보는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혈액암 투병의 시간으로 15년 간 아이들을 가르치던 삶을 정리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다시 노래를 하며 나를 찾아가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 시작으로, 어린 날의 꿈을 데리고 오면서 시작한 합창으로, 작년 세종 점자도서관의 ‘흰지팡이의 날’ 행사에 찬조출연을 하게 되었지요. 그 가을날, 양손 없이도, 눈앞이 보이지 않아도, 멋지게 하모니카를 연주하고 노래를 하시는 한 시인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시한부의 삶으로 곧 임종을 앞두고 계신 저희 아버지가 떠올랐습니다. 또한 그분의 다큐멘터리 영상에서 어린 시절, 제가 엄마와 함께 피아노를 치며 부르던 ‘아름다운 것들’ 무대도 보게 되었지요.


어느새 저는, 그 다큐멘터리의 영상을 제작하신 영상제작봉사자님이 어렵게 찾은 그 시인님의 30년 전 시집이 온 세상에 더 널리 알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전자책 출판을 도왔습니다. 시인님의 책​을 교정 교열하고, 그림을 그리고, 처음으로 시 몇 편의 낭송 영상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작년 마지막 ‘점자도서관 가는 날’ 공연에서, 시인님의 ‘블레싱 하모니카 연주단’의 ‘아름다운 것들’ 무대에서 독창도 함께 하게 되었지요. 이후, 낭독 봉사자를 모집하기에 지원하여 선정되었고, 자원봉사자들이 모여 함께 진행하는 라디오 제작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제 이름은 흴 ‘소’에 햇빛 ‘현’, “하얀 햇빛”이라는 뜻입니다.


어둡기만 했던 저의 지난날에 스민 한 줄기 빛이었던 ‘음악‘처럼,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스하게 전하는 제 목소리와 눈부신 노래가 주변으로 번져나가 세상을 조금 더 환히 밝혀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_2025.08.18. 방송자원활동가 송소현

라디오98.9MHz 세종FM [책, 그리고 이야기]46회

스윗쏭의 Music is my life #1 유튜브 바로가기​



이 글은, 참으로 무덥고 지쳤던 올여름,

16년간 나의 아이였던 나의 앙이를 떠나보내고, 홀로 버티며 썼던 마지막 글이다.


올 초에 신청했던 라디오 교육이었지만 앙이가 다시 아프기 시작해서 고민하던 차에 강아지를 안고 참여할 수 있게 배려해 주셔서 시작할 수 있었다.


라디오 교육의 첫 녹음을 하루 앞둔 날,

여름의 절정이 채 다가 오기 조금 전,

그리고 23년 전 엄마의 실종일과 발견일 사이,

그 어린 날 꿈속의 엄마가 기차역에서 안녕을 전했던 그 시기즈음,


앙이는 자신의 엄마인 내가 올여름 병시중으로 더 이상 힘들지 말라는 듯이 바람이 솔솔 불던 날, 기다리던 이를 맞이하고는 빠르게, 고요히, 그리고 편안하게 떠나갔다.


그 이후, 나는 일상을 잃지 않기 위해 키보드를 닫았다. 생각과 감정을 닫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울보인 내가 몇 번 울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깊은 슬픔과 비집고 나오는 셀 수 없이 많은 감정은, 계속해서 나의 노래들 사이사이 흘러넘쳤다.


음악은 여전히 나를 또 살려가고 있었다.


진행 중이던 라디오 교육의 녹음을 추가로 배려해 주셔서 겨우 마무리하고, 방송자원활동가 신청을 위해 글을 썼다. 무어라 썼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아 지금 다시 읽어보니 얼마나 두서없이 마구잡이로 썼는지, 괴롭던 그 순간의 필체가 느껴진다.

(어쩌면 지금도 마찬가지일 지도)


메마른 생각과 억누른 감정 사이, 아무 생각 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아주 괜찮았다가 아주 힘들다가 무한한 반복에 지쳐갈 즈음,


다시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가을이 왔다.


나의 앙이와 책 한 권을 들고나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씽씽이를 타고 달리고, 공원에 앉아 책을 읽던.


선선한 바람과 함께 잊혀졌던 나의 라디오 속 이야기가 방송된다는 소식도 함께 들려왔다.


23년 전 나의 엄마와의 여름날과,

10년 전 나의 엄마의 엄마와의 겨울날과,

올해 나의 앙이가 마지막으로 함께한 여름날의-

만들어 낸 것이 기적 같고 소중한,

그래서 더욱 감사한 제작물이었다.


나는 오늘 그 방송을 앙이와 함께 달리던 차를 타고 앙이와 엄마가 있는 이곳 대청댐을 향해 달리며 들었다.


앙이와 함께 엄마를 향해 달렸던 지난날을 회상하며함께 찾은 카페​​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라디오의 다짐처럼, 눈물 젖은 미소를 띠며.

받았던 사랑을 내 모든 주변사람들에게 나누는 모습을 여전히 잘 간직 한 채.


오랜만에 이렇게 눈물이 나는 순간도 맞이해 본다.

그동안 키보드를 꺼내지 못했던 이유가 이 때문이었을까.


글을 쓰는 자판의 두드림만큼

마음을 두드리는 울림이 깊어,

하염없이 떨어지는 눈물방울 속에서

나는 나의 방문을 마냥 기뻐하고 있을,

마음을 다해 토닥이고 있을 그이들과 함께하고 있다.


지금 당장 이 눈물을 매 순간 마주 할 수 없겠지만,

때로는 무거워진 이 눈물을 털어내며,

또다시 하루하루 나를 씩씩하게 잘 살려가며,

그렇게 아직 끝나지 않은 이별 준비를 또 잘 마쳐야 한다.


그리고 홀로 남을 그 순간,

나를 살릴 이 모든 것들 또한.

잘 넓혀놓아야 한다. 잘 지켜놓아야 한다.


역시 오늘도 나의 숲에서 찾은

나의 정답은 늘 이것이다.


나는 나를 살리는 선택을

잘한다. 잘해왔다. 잘할 것이다.


라디오 첫 방송을 기록하며,

아빠와 시인님의 이야기를 담을

다음 사연을 기획하며.


아마도 연말, 혹은 내년 초 내 생일즈음,

선물처럼 또다시 인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때도 무사히,

또한 감사히 따스한 목소리를 전할 수 있기를 바라며.


_2025.10.15. 아빠와 엄마의 생신 사이 어느 가을날.

빠르게도 흩어지는 시간의 흐름을 이제야 느껴보며.

2025/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