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치를 너무도 잘 알아서
뒤늦게 깨달은 것이 있다. 내가 그토록 두려워하며 살아온 수많은 실수들이, 사실은 그리 유별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오랫동안 나는 나의 서툶과 부족함을 오직 나 하나만의 고질적인 결함이라 믿었다. 나보다 앞서고, 훨씬 더 현명한 선택을 하는 이들이 바로 '지극히 평범한 인간'이라 여겼고, 그들에 미치지 못하는 나는 '지독히 뒤처진 인간'이었다. 그렇게 나를 뒤쳐진 인간이라 칭하며 살아가다 보니, 의구심이라는 것이 나를 툭툭 쳐댔다. 그 실수라는 것은, 생각보다 사람을 가려대지 않았다. 내기에서 진 사람에게만 부여되는 벌칙이나, 선천적으로 가진 결함과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예고 없이 날아드는 불티와 같았다.
살아가며 처음 맞닥뜨리는 사건들은 늘 기분 나쁜 불안과 두려움을 안겨준다. 머릿속이 텅 빈 듯 멍해지고, 손발이 떨려대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면 별일 아닌 상황도, 겪기 전엔 도망치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히곤 한다. 이러한 감정은 인간 본성 깊숙이 각인된 생존 본능에서 비롯된다. 인간은 예측할 수 없는 결과나 통제 불가능한 상황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도록 설계되었다. 과거엔 이런 불안이 맹수의 위협과 낯선 환경에서의 위험 요소를 감지하고 회피하도록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현대는 과거와 다르다. 실질적인 생명의 위협은 줄었고, 기술과 제도가 인간에게 뛰어난 안전망을 제공한다. 과거와는 달리, 한 번의 실수가 죽음으로 직결될 가능성이 현저히 낮아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새로운 상황과 낯선 사람, 예측할 수 없는 사건들 앞에서 긴장하고 위축된다. 실수가 더 이상 생존의 위협을 불러오지 않음에도, 이를 통해 드러날 수 있는 나의 약점을 경계하고 긴장한다. 실수를 피하고 싶어 하는 욕망은, 어쩌면 인간 스스로의 삶에 대한 욕망을 증명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현대에서의 실수는 더 이상 생존과 직결되지 않는다. 어색하게 건넨 인사와 엉성한 말투, 사소한 실수들은 대부분은 타인들에게 금세 잊힌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의 실수에 오랫동안 머무른다. 같은 실수도 타인에게는 '그럴 수 있지'라고 말하지만, 정작 자신에게는 지나치게 가혹하다.
과거의 실수는 생존과 직결된 위험이었다면, 현대의 실수는 사회적인 평판과 직결되어 있다. 현대의 인간에게 있어서 실수란 '무능함'과 '결핍', '뒤처짐'의 증표처럼 여겨지며, 결국 우리는 자신이 '무가치해 보일까 봐' 실수를 두려워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잃는 것이, 마치 생존의 위협을 받는 것과 동일한 무게를 지닌 것이다.
우리는 종종 타인의 실수를 유머로 소비한다. SNS나 개그 프로그램에는 예기치 못한 실수나 무안한 순간들이 재치 있게 묘사되어 웃음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 웃음 뒤에는 은근한 안도감도 따라온다. '나만 그랬던 것이 아니구나.' 나의 실수가 별거 아닌 것만 같이 느껴진다. 다른 이들보다 특별한 인간이고 싶지만, 그들과 비슷한 실수를 하는 인간이고도 싶다. 이러한 '보편적임에 대한 증명'이, 사실 우리를 위로한다.
결국 현대의 사람들은, 자신의 실수를 누구나 겪을 수 있다는 증거를 필요로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겪은 수치스러운 상황과 실수들이 나의 무가치함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확인받고 싶은 것이다.
예상치 못한 실수로 스스로에게 가혹한 평을 내리더라도, 그것이 진정 들어맞길 원하는 이는 없다. 무언가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감정 또한, 나의 가치를 알기에 타인에게 시선에서 평가를 받고 싶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자신이 진정 가치 있음을 알기에 간절히 지키고자 하는 것이다. 결국 불안과 두려움은, 자신의 가치와 노력을 잘 알 수록 존재를 더욱 증명한다. 너무나 당연한 감정들이다.
그러니 불안해도 괜찮고, 두려워도 괜찮다. 당장의 상황을 피해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있는 힘껏 버텼음에도 한계가 보인다면, 가끔은 도망쳐도 괜찮다. 하지만 그전에, 스스로에게 묶어놓은 '지독히 뒤처진 인간'이라는 꼬리표는 풀어놓는 것이 어떤가. 그 끈이 금방 풀릴 것을 안다. 그리 단단히 묶지는 않았을 테니까.
인간의 실수야말로, 인간을 진정으로 사랑스럽게 만든다. - 요한 볼프강 폰 괴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