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둘째치고
인간은 종종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하기 두려워한다. 이 두려움에서 비롯된 불안은 삶을 살아가는 중간중간 쉽게 마주친다. 어린 시절, 수업 중 선생님의 갑작스러운 질문을 받은 기억은 누구나 하나쯤 있을 것이다. 모든 학생들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된 그 적막 속에서, 내 대답이 틀릴까 봐 노심초사하며 덜덜 떨어댔다. 속으로는 하필 나를 지목한 선생님을 원망하면서 말이다. 이 불안은 성인이 되면서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사회의 구성원으로서도 우리는 자신의 의견이 틀리기를 원하지 않는다. 자신의 행동을 인정하고, 사과하며 배우는 행위 자체가 은근 자존심을 살살 긁기 때문이다. 자신이 남들보다 더 나은 사람이어야 하고, 더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 그 감정은 연배와 직급이 높아질수록 쥐도 새도 모르게 덩치를 키워간다. 생각해 보자, 높은 연배와 직급을 가진 이가, 자신의 행동에 대해 나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배움을 구한 적이 얼마나 있던가.
너무나 당연하지만, 인간은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완벽하지 못하기에 완벽을 갈망하고, 완벽할 수 없으니 그 치부를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 이렇듯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일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틀림'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다. 스스로 구축해 온 자아가 흔들리는 듯한 착각을 하게 만든다. 인간은 자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해 가며 살아간다. 그렇게 자아를 정당화한다. 그러나 그 증명의 끝은, 곧 자기 자신이 부정당할지 모른다는 불안이라는 꼬리를 달고 있다.
끊임없는 자아의 증명은 자아의 유동성을 인정하지 않는 데서 비롯된다. 인간이기에 실수할 수 있고, 인간이기에 끊임없이 배워야 하며, 인간이기에 가치관이 바뀌고, 때로는 수치스럽거나 악한 감정을 품을 수도 있다. 이 사실은, 자아에 투영해 온 완벽이라는 가치를 정면으로 뒤흔든다. 완벽한 인간이어야 한다는 강박은 자아 자체를 단단히 키우는 것이 아니라, 자아를 둘러싼 벽을 두텁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결박된 자아는 타인의 의견 앞에서 쉽사리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저 벽을 방패 삼아 자신에게 향하는 '부정'을 막으며 은둔한다. 자신의 내면이 굳세고 옳다고 믿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굳세고 옳은 것은 자신의 자아가 아닌, 그 자아를 가둔 벽일 수도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자아는 분명, 더 성장하길 원한다.
자아의 성장은 단지 자신에 대한 부정을 인정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진정한 성장은 다른 사람, 특히 자신보다 낮다고 여겨지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선명히 나타난다. 나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건네는 사과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심지어 나의 잘못이 아님에도 인심 쓰듯 사과를 건넨다. 그들에게는 나의 무지함을 드러낸 것에 수치스러움도 적다. 나보다 높다고 생각되는 이들 앞에선, 나에 대한 부정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나의 잘못이 아님에도, 자처하여 스스로에게 누명을 씌운다.
하지만 그 반대로, 자신보다 직급이 낮거나 연배가 적은 사람들에게는 사과와 배움이 쉬웠던가. 상사의 안일함으로 부하직원이 타박을 받았음에도, 그 상사는 왜 아무 말 없이 넘어갈까. 자신보다 어린 사수에게는 왜 적극적으로 질문하며 배우려 하지 않을까. 그 이유는 자아를 방어하는 본능에서 비롯된다. 사람들은 자신의 뿌리인 '자아'가 혹여나 약해질까, 본능적으로 자신보다 낮은 이에게 사과하거나 배우는 것을 거부한다. 이런 태도는 자신의 자아에 대한 유동성을 부정하고, 그 한계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나온다.
무엇이든 움직이고 흔들리지 않으면 강해질 수 없다. 고개를 숙이지 않으면 자신의 발 앞에 있는 돌부리를 보지 못한다. 걸음을 돌려 피할 수 있음에도, 자존심 때문에 끝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다. 자신보다 낮다고 여겨지는 사람에게 사과하고 배우는 것은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고 위계를 무너뜨리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정면으로 무언가를 맞설 수 있는 강인함을 얻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을 토대로 자아는, 비로소 진정한 성장을 맞이한다. 직급과 나이, 외적인 무언가가 자신의 인격을 포장하는 것에는 반드시 한계가 있다. 갑작스럽게 태풍이 몰아치는 와중에도, 가장 마음에 드는 옷 하나만 걸친 채 버티고 있는 것과 같다. 자존심은 태풍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주지 못한다.
상대방의 직급이 아닌, 그가 나로 인해 겪은 억울한 상황을 바라봐야 한다. 상대방의 간판이 아닌, 진정으로 배워야 할 그 지혜를 바라봐야 한다. 상대방의 연배와 직급이 높다는 이유로, 나를 존중하지 않고 깎아내리게 할 자격을 부여해서는 안 된다. 또한 자기 자신에게 상대방을 억울하게 하고, 의견들을 무시할 자격을 멋대로 쥐어주어도 안 된다.
현대의 사회에서는 이것이 물론 쉽지 않음을 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이 있다. 사과할수록 나에게 진정으로 사과하는 이들이 많아질 것이고, 배움을 구할수록 나에게 배우려 하는 이들 또한 많아질 것이다. 여전히 나에게 자존심을 세우는 이들은, 그냥 이렇게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저 사람은 두터운 벽 안에 은둔 중이구나'라고 말이다.
내가 만나는 사람은 누구나 그 어떤 면에서 나보다 낫다. 그런 점에서 나는 그에게 배운다. - 랄프 왈도 에머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