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아닐 수도 있지만
종종 이런 토론을 한다. '인간은 선한가, 악한가?' 질문 자체는 단순하지만, 명확한 답을 내리기란 쉽지 않다. 상대방을 '좋은 사람' 또는 '나쁜 사람'만으로 판단하기에는, 이중적이고 융통성 없는 태도와 상황을 심심치 않게 마주한다. 평소에 다정한 모습을 보여줬던 친구가, 이상하게 어제는 무뚝뚝하더니 오늘 웃으며 농담을 건넨다. 길거리에서 큰 목소리로 통화를 하던 아저씨가, 한 노인에게 다가가 짐을 들어준다. 이 상황만으로 그들의 본성을 파악하기에는 너무도 불완전하다. 우리는 종종 나에게 포착된 행동으로 상대방의 모든 것을 정의하려 하지만, 그것은 마치 사진 한 장만으로 찍히지 않은 풍경을 예측하는 것과 같다. 외부의 상황과 다양한 내면의 심리는 인간을 끊임없이 진동하게 한다. 그 진동의 흐름에 따라, 상대방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내리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인간을 단순히 선악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데에는 한계가 따라온다. 우리는 종종 상대방을 첫인상이나 그 사람이 나를 대하는 태도, 순간적인 표정과 행동 등을 통해 해석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상대방으로 인해 내가 받을 수 있는 피해를 최소화하고, 혹시 모를 손해를 방지하기 위한 무의식적 방어기제일 가능성이 크다. 다른 이의 행동을 해석하고 판단하려는 욕구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해석이 나의 감정만을 기반으로 편협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상대방이 나를 잠시 무표정으로 바라보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성격이 안 좋다'거나, '차가운 사람이다'라고 결론을 내리는 행동을 예시로 들 수 있겠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이 그 자체로 나쁜 것이라고 하기에는, 득을 보는 경우도 상당한 것이 사실이다.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을 관찰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자신을 보호하는 것에 도움이 될 확률도 확실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전에 생각해봐야 하는 것은, 인간이 상황이나 감정에 따라 보이는 태도는 유동적이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자신이 보이는 반응에 대하여 스스로 정확한 인지를 하지 못하는 경우도 꽤나 있다. 나의 시선은 나로부터 뻗어나가고, 결코 나를 상대방의 입장에서 보지 못하는 것이 그 이유이다. 나는 상대방에게 최대한 친절한 태도를 보였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상대방이 추후 나에게 '인상이 좀 차가우셨어요'라고 말했을 때의 당혹감을 잊지 못한다. 인간은 스스로의 상황과 감정에 있어서도 상당히 예민한데, 이것도 모자라 수많은 예민함으로 일방적 정의를 당해버린다.
그렇다고 해서, 나를 대하는 상대방의 부정적 태도를 무조건적으로 이해하라는 것은 아니다. 자기감정에만 몰두해 나를 존중하지 않는 태도, 예의 없는 말투나 태도 등이 그 예시이다. 이로부터 받은 실질적인 상처나 불쾌감은 무시하지 않고, 상대방의 태도를 정당하게 비판할 필요가 있다. 상대방의 감정에 밀려 내 감정이 무시당하는 것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다. 내 감정은 충분히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
이 글로 전하고 싶은 것은, 내가 느낀 감정만을 근거로 그 사람의 본성을 일반화하거나, 즉각적으로 그 사람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 것은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상황과 감정에 따라 유동적이라는 말은 곧, 나의 상황과 감정으로 인한 나의 태도도 유동적임을 뜻한다. 더불어 인간 한 명의 가치관과 성향도 크게 한몫한다. 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판단을 내린 상대방이, 또 다른 사람에게는 차갑고 부족한 사람으로 비추어질 수도 있다. 누구나 삶을 살아가며 모든 이들의 기준을 충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들을 다 판단하여 노력하기에는, 인간은 신이 아니다.
나의 삶을 되돌아보면, 나조차 나를 정의 내리지 못하겠다. 어렸을 적에는 평소 온순하고 말을 잘 듣는 아이였으나, 어쩌다 한 번 원하는 것이 생기면 끝까지 고집을 부려대며 엄마 속을 썩였다. 나를 재미있고 유쾌한 성격으로 봐주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내향적이고 조심스러운 성격으로 봐주는 친구가 있다. 살아가는 동안, 한 사람에게 나의 모든 성격을 온전히 드러내는 경험을 얼마나 할 수 있을까. 내가 나를 온전히 드러내고 정의할 수 없는 것처럼, 상대방도 나의 시선으로 온전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상대방의 단편적인 모습과 정보만으로 정의를 내리기보다는, 다층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나의 가치관과 감정을 근거로 상대방을 판단해 버리는 것에는 반드시 조심성을 갖추어야 한다. 나의 감정이 존중받는 선에서 상대방의 다양한 면모를 포용하고, 진심 어린 대화를 통해 관계를 개선하는 것이 관계를 위한 최고의 방법이 아닐까.
인간이라는 존재는 단순히 선악으로 나누어 평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나에게 비추어지는 상대방의 모습은 상대방의 상황과 심리뿐만이 아닌, '나'의 가치관과 고정관념, 감정과 같은 것들이 상상 이상으로 투영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타인의 온전한 모습을 마주하는 것이, 결국 관계에 있어 최대의 과제일 수도 있겠다. 착하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은, 그것들을 대체할 어떠한 부가적인 평가도 내리지 않은 온전한 모습 말이다.
진정으로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신발에 들어가 그들이 걸어온 길을 봐야만 한다 - 하퍼 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