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안부는 전해줘요
어느 순간부터, 예전처럼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늘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고등학교 친구들, 밤을 새우며 고민을 나누던 대학교 동기들, 힘든 시간을 함께 견디며 의지를 다졌던 직장 동료들까지. 특별한 사건도 없었고, 관계를 멀어지게 할 만한 갈등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들과의 대화가 어긋나고 있음을 느낀다. 말은 여전히 오가지만, 예전처럼 공감은 되지 않는다. 주체할 수 없었던 웃음도, 억지로 토해내야만 하는 것이 되었다. 여전히 그곳에 있는 당신과 이미 그곳을 떠나온 나. 여전히 이곳에 있는 나와 이곳을 떠난 당신. 당신과 나의 방향이 달라졌고, 서로의 시차가 벌어졌다.
우리는 한 시절을 함께하며 가까워졌다. 서로의 이야기에 흥미를 가지며 귀를 기울였고, 같은 길을 걸어간다고 믿으며 서로를 격려했다. 그 당시 품었던 고민과 불만은 비슷했고, 유머코드는 또 왜 그리 잘 맞았을까. 그리고 나는 그것들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했던 친구들, 같은 수업을 들었던 동창들, 희로애락을 나눈 직장 동료들, 그리고 과거의 스쳐간 연인들까지. 한 사람의 인생에 담았다기에는 너무나 많은 관계들이, 그보다 더 많은 미련과 아쉬움을 남길 때가 있다.
함께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했던 시절이 있었다. 함께 나눈 시간과 감정이 관계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 것이고, 나 역시 그들의 옆을 끝까지 지킬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시간은 나의 확신에 동의하지 않았다. 공유하는 것이 줄어들수록 관계는 소원해졌고, 그 사이사이 불편한 공백이 끼어들었다. 여전히 대화는 나눌 수 있지만, 함께 나눌 수 있는 감정과 공감은 한정된 것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자신의 삶에 집중하고 새로운 것들에 도전할수록, 삶의 형태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새로운 상황과 사람을 마주하며 삶을 바라보는 관점 또한 조금씩 바뀌어간다. 무엇을 고민하고 어떤 목표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인간이 걸어갈 방향은 수없이 틀어진다.
단 한 번의 실수와 단 한 번의 행운이 누군가에게 있어서는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인생의 굴곡은 결코 균등하게 주어지지 않고, 그로 인해 주어지는 각자의 삶의 흐름은 그 누구와도 동일하지 않다. 결국 살아간다는 것은 모든 상황을 겪어내고 감안하는 과정이다. 원하지 않은 것들을 감당하고, 원했던 것들을 포기하며 인간은 변화하고 성장한다. 그 변화에 예외는 없으나, 단지 형태만 다를 뿐이다.
누군가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겠다고 한다. 누군가는 목표를 바꿨다고 말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잠시 여기서 쉬어가겠다고 한다. 각자 자신의 방향과 속도에 적응하며, 서로에게는 어색해진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낯설어지는 그들의 모습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할 수밖에. 더 이상 공감받을 수 없음을 알기에 꺼내지 않는 이야기들이 쌓여가고, 공감받을 수 없는 감정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이런 나 역시, 어느새 너무 많은 것이 변해있었다.
변화와 그로 인한 멀어짐은 모든 관계에 있어 필연이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일은 쉽지 않지만, 받아들이지 않으면 미련이 발목을 잡는다. 소중했던 관계들을 뒤로한 채 다가올 관계들에 집중하려고 해도, 그 미련이라는 것이 도통 내 발목을 놓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것은 안다. 단지,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버린 것이다.
어떤 사람은 보답받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관계를 유지하려 애쓴다. 또 다른 사람은 관계의 소원해짐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사람이 관계를 대하는 방식은 제각각이며, 그것은 그 관계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였는지에 따라 다르게 드러난다. 대부분의 관계는 결국 변화한다. 서로의 속도와 방향이 달라지고, 무조건적인 공감은 잠깐 스쳐가는 찰나의 순간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날이 온다. 그렇다면 나는 그 과정 중 어떤 태도를 취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한 번 더 손을 뻗어보고 싶은 관계는 나에게 어떤 의미인 걸까. 수많은 관계를 겪으며 나는 종종 이런 고민을 한다.
소원해진 관계는 감정을 동요하게 한다. 서운함, 미련, 아쉬움, 때로는 배신감까지 다양각색하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애틋한 여운을 남기는 관계가 있는데, 그저 조용하게 멀어진 관계다. 각자의 삶을 살아가며 온전히 애쓴 그 노력들이, 조용히 공백으로 나타나 그들이 내 삶에 존재했음을 증명한다.
모든 관계를 붙잡을 수는 없다.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도, 결국 내 삶을 위한 노력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 노력이, 그들의 삶 속 공백으로 조용히 나를 증명하길 바란다.
기구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사람은 자신이 떠오르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땅이 점점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본다 - 쇼펜하우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