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의 꿈을 이뤘다.
우리나라 정규 교과과정을 착실히 밟아 학교를 졸업하고, 평생 밥 벌어먹고 살 안정된 직장을 갖기 위해 신림동 고시촌에서 5년간의 지독한 수험생활을 거친 후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직장이 생겼으니 그다음은 결혼이다. 결혼 적령기는 이미 지났고 더 늦어지면 값만 떨어진다는 사람들의 말에 신경 쓰지 않는 척하다 결혼도 했다. 결혼을 했으니 아이도 낳아야 한다. 하나를 낳았는데 '그래도 둘은 있어야 외롭지 않다, 낳을 수 있을 때 하나 더 낳아야 한다'는 육아 선배들의 말을 흘려듣는 척하다 둘째를 낳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하루 24시간, 1년 365일 끝나지 않는 평생 노동 워킹맘 생활이 시작됐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분명 행복했지만 발목에는 족쇄가 채워진 기분이었다. 아이들을 집에 두고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질 때마다 이상한 죄의식이 올라왔고, 세상은 자꾸 이기적인 엄마라고 했다. 폭풍 같은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갇혀 있을 때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싶었다. 그렇게 자꾸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러다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었다. 마흔...
3과 4의 차이는 1과 2의 그것처럼 설레고 낭만적이지도 않고 2와 3의 차이처럼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조급해하지도 않는다. 마흔, 그냥 나이 듦만이 훅 들어오는 때다. 커브길만 돌아서면 바로 맞닥뜨리는 거였지만 직진만 했기에 알 수 없었던 그것처럼, 갑자기 흑 들어오는 나이 듦을 실감하는 때다. 마흔쯤 우리는, 직장도 있고 결혼도 했고 아이들도 낳아 한 가정을 이루어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다. 모든 것은 순조로워 보였다. 평범하게 사는 게 가장 힘든 거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제 인생의 큰 이벤트는 없다. 지금까지 해온 것들을 잘 가지고 살아가면, 인생은 큰 탈 없이 마무리가 될 것이다.
설레는 것도 없다. 가슴 뛰는 설렘이 없으니 기다려지는 것도 없다. 그래서 그런가? 시간은 참 빨리 간다. 처음으로 잠시 멈춰보았다. 이 기분 낯설다. 잠시 멈추고 보니 내가 보였고, 지나온 길이 보였다.
모든 것이 한순간에 찾아왔다.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 해왔던 공부, 노력, 자격증, 시험, 학교, 직장, 가족, 인간관계 등 내가 쏟아부었던 모든 것이 거품처럼 느껴졌다. 순수하게 즐길만한 취미생활 하나 없이 살아온 시간들, 이제는 진짜 하고 싶은 것, 순수한 호기심의 발동으로 나를 깨워 줄 무언가를 강하게 갈망했다.
좁은 통통배에 앉아 흘러가는 물을 따라 오로지 앞만 보고 열심히 노만 저어 왔다. 내가 어떻게 이 배에 타게 됐는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없다. 물은 천천히 흐르기도, 갑자기 빨라지기도, 커다란 바위에 부딪히면서 휘청거리기도 했지만 배에서 떨어진 적은 없다. 떨어지면 바로 끝이라는 생각에 배에서 내릴 생각도 못했다. 물이 얼마나 깊은지도 모른다. 그냥 오로지 이 물길 속에서는 배에 있어야 살아남는다고 했다. 그러다 물길 양쪽으로 뻗어있는 울창한 숲들이 눈에 들어왔다. 저 숲들이 처음부터 있었던가? 하늘과 맞닿을 정도로 쭉쭉 뻗어 있는 나무들, 나무들과 하늘 사이로 당당하게 내리쬐는 햇빛, 사각사각 발에 밟히는 나뭇잎, 지저귀는 새소리와 윙윙대는 풀벌레, 볼을 스치는 바람소리, 콧속으로 들어오는 흙냄새, 풀냄새, 바람 냄새까지 낯설지만 기분이 너무 좋다. 상쾌하다.
이 숲 속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책은 그동안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을 알려줬다. 글쓰기는 그런 세상과 새롭게 소통하는 수단이 되어줬다. 하고 싶은 얘기를 썼다. 나의 이야기를 써 내려갈 때마다 나라는 존재가 선명해지고 그동안 내 속을 휘젓고 다니던 불편한 감정들도 서서히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어려운 수학 문제를 고민하며 풀어내듯이, 고만고만한 단어와 문장들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면서 제법 내용을 갖춘 하나의 글이 완성되면 뿌듯했고, 설렜다. 내 글을 세상에 내보일 때마다 가슴이 뛰었다. 그렇게 글쓰기는 잔잔한 내 삶에 던져진 미세하지만 강한 파동이었다.
글쓰기는 마주하기다.
오롯이 나를 대면할 수 있는 시간이다. 세상 소란스러운 것들은 뒤에 남겨두고 오로지 나와 내 생각들을 마주한다. 키보드 자판소리에 맞춰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검은 활자들이 그것을 세상과 소통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잠시 나의 삶의 속도를 늦춰준다. 유명한 상담심리학 교수이자 강사인 박상미 교수님은, 갑작스럽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심각한 우울증으로 자살시도까지 하는 힘든 시절을 보내다 하루에 A4 1장씩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글쓰기를 통해 내면의 상처가 치유되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고 했다. 글쓰기의 힘은 강했다. 지나온 시간들을 쓸 때면 사라져 버린 줄 알았던 과거의 내가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고, 나를 힘겹게 짓누르고 있던 부정적 감정들이 서서히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 감정들이 살아있는 하나의 존재임을 알게 되고, 그 감정과 나를 분리해서 보기 시작했다. 남자라는 존재 자체가 힘이 되고 권력이 되는 이 사회의 가부장 문화 속에서 타자로 살아가는 엄마들의 이야기를 쓸 때면, 엄마들의 '잔다르크'라도 되는 것 같았다. 소리 없는 강한 외침이었다. 꽉 막힌 나의 삶이 글을 통해 조금은 유연해지고 말랑해지는 기분이었다. 한 줄 한 줄 풀어내면서 꼬인 부분은 어디인지, 행복하지 않았다면 왜 그랬는지 적어도 그 이유는 알 수 있었다. 글쓰기는 턱밑까지 차오른 답답한 생 앞에서 잠시 물러설 수 있는 쉼표가 되어줬다.
글쓰기는 꿈이다. 설레는 진짜 꿈이다.
한 번의 꿈을 이뤘고, 그게 직업이 됐다. 직장생활에 만족하는가? 일하면서 보람을 느끼나? 글쎄,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10년 이상 공무원이라는 안정된 틀 속에서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통장을 확인하면 그것이 만족이고 보람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2학년에 올라가기 전 이과인지 문과인지 결정해야 할 순간이 왔다. 당시 상대적으로 성적이 좋은 아이들이 이과에 가는 추세에 따라 특별한 고민 없이 이과를 선택했고, 이과생이라는 이유 하나로 나는 공부 잘하는 아이의 이미지를 얻을 수 있었다. 뭔가 찝찝한 선택이었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러다 수능을 보고 대학 입시원서를 넣으면서 나는 문과계열의 학과에 합격했다. 이과 성적으로 문과계열에 원서를 넣으니 상대적으로 낮은 등급으로 이래저래 손해를 본 기억이 있다.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삶이 이런 식이 었다.
내가 살아온 삶은 과연 누구의 삶이었을까.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세상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기준에 따라 선택하고 판단하고, 그 길과 다른 길은 이탈이었고 두려움이었다. 누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삶이었나. 직장이 있고, 살림도 하고, 아직 손이 많이 가는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가 책을 읽고 글을 쓴다고? 누군가는 배부른 사치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다른 사람의 시선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진짜 나를 위한, 내가 만족하는 삶, 내 몸과 마음을 꽉 채워주는 전율이 있는 삶을 갖고 싶다. 당장 눈에 보이는 성취가 없더라도, 나의 만족과 설렘이 성취가 되는 그런 삶의 순간순간 들을 글쓰기로 완성하고 싶다.
글쓰기는 함께 하기다.
처음 블로그를 접했을 때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또 다른 세계를 만난 것처럼 놀랐고, 흥분했고, 감탄했다. 예전에는 글을 쓰고 그 글을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서는 책을 출판하거나 신문, 잡지 등의 간행물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블로그는 쓰는 사람의 자격도, 그 내용에도 제한이 없다. 내 글이 터치 한 번으로 세상 곳곳으로 퍼져 나간다. 그동안 수많은 정보검색을 하면서 블로그를 접했지만 내가 직접 블로그의 주인이 되어보니 또 달랐다. '글이 작품이 되는 공간, 브런치'는 평범한 나의 글을 진짜 작품으로 만들어줬다. 브런치에서는 글만 쓰면 매거진이 되고 멋들어진 책 한 권이 된다. 잠시 고개를 돌려보니 낯설지만 멋진 세상이 이미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눈에 보이지 않았을 뿐, 찾으려 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혼자만 쓰고 보는 글쓰기는 건조하고 밋밋하다. 발전이 없다. 음식도 같이 먹어야 제맛이듯 글도 나눠야 제 맛이다. 이웃들이 남겨 준 댓글은 글에 활력을 불어넣어줬고, 예상치 못한 조회수 알림 톡에 가슴 터지는 설렘을 경험했다. 내 글을 다른 사람이 본다고 생각하면 노력과 정성을 좀 더 기울이게 된다. 사람들과 소통하며 다양한 계층의 독자들의 피드백을 받을수록 글은 더 성장하고 발전할 수밖에 없다.
글을 나누며 얼굴도 알지 못하는 낯선 사람들과 정보와 감정을 나누는 친구가 되었다. 책 읽고 글 쓰는 나의 삶을 공감해주고 응원해주는 랜선 이웃들과 찐한 'untact-relationship' 이 만들어졌다. 비록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내 글을 읽어주고 남겨주는 '좋아요' '라이킷' 하나에 어린아이처럼 미소가 지어지고 기분이 째진다.
나는 매일 책을 읽고 매일 글을 쓴다.
남들보다 잘해야 하는 욕심에 뒤처질까 안절부절못하다가도 글 쓰는 순간만큼은 그런 생각, 정서, 가치 나의 태도가 물렁해지고 숨을 고르게 된다. 글을 쓰는 순간, 조금 괜찮은 사람이 된 것만 같다.
특별한 사람이 글을 쓰는 게 아니고 글을 쓰는 사람이 특별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어느 날 불쑥 들어온 글쓰기는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