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보이지 않는 일직선 고속도로에서 100킬로미터의 안정된 속도로 달리고 있다. 조금 더 속도를 올려보기도, 내려보기도 하면서 목표지점을 향해 달려간다. 고속도로에는 비슷한 속도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달리는 많은 차들이 있다. 목표지점이 보인다. 조금만 더 달리면 된다. 속도를 더 내면 좀 더 빨리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순간 어디선가 북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둥- 둥-둥
둥-둥- 둥
북소리는 점점 더 커지더니 귓가에서 울리기 시작했고 가슴 깊이 파고들어 머릿속과 온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북소리의 울림에 이끌려 천천히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속도가 줄어드니 다른 차들이 나를 앞질러간다. 어디서 북소리가 들리는 걸까? 조금만 더 달리면 목표지점에 도달할 것 같지만 속도를 더 줄인다. 급기야 차를 멈추고 차에서 내린다. 고속도로에서 벗어나, 차를 그대로 두고, 북소리를 따라 걷기 시작한다. 처음 보는 길, 낯선 풍경들 속으로 계속 걸어간다. 잠자고 있던 낯선 감각들이 깨어나는 기분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느 날 아침, 어디선가 멀리서 들려오는 북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를 듣고 있는 동안 하루키는 문득 긴 여행을 떠나고 싶어졌다. 일상생활에 얽매여서 속절없이 나이만 먹어 버릴 것 같다는 두려움, 그리고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싶은 간절함이 몰려왔다.
그는 서둘러 유럽 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3년 만에 로마의 섬에서 쓴 두 권의 장편소설을 들고 일본으로 돌아왔다. 하루키를 세계적인 작가로 만든 '노르웨이의 숲'과 '댄스 댄스 댄스'는 그렇게 태어났고, 그리스와 이탈리아를 오가면 살았던 하루키의 3년은 '먼 북소리'라는 책으로 묶였다.
나에게 글쓰기는 하루키의 먼 북소리였다.
북소리는 내 심장 속에서 간절히 울렸다. 처음엔 희미했지만 점점 커져서 도저히 모른 척할 수가, 거부할 수가 없었다. 뭔가를 결심하라고 자꾸 졸라대는 느낌, 지금 당장 시작하라고 속삭이는 듯했다.
지극히 평범하지만 치열한 일상을 보내던 중 글쓰기는 그렇게 나를 찾아왔다. 8살, 4살 아이들의 엄마로,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24시간은 흘러가는 시간보다 몸과 마음이 더 바쁜 일상들 속에 파묻혀 그렇게 나이를 먹어가다 마흔이 되었다. 마흔이란 나이는 나이 듦이 훅 들어오는 시기였다. 마흔 앓이라는 말이 있었다. 마흔쯤의 사람들은 비슷한 시기에 고만고만한 이유로 한 번쯤은 처럼 흔들리는구나, 마흔이란 나이가 그런 나이구나 싶었다.
마흔쯤의 나의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들을 하얀 백지에 채워 나갈 때마다 둥, 둥 북소리는 내 심장 깊은 곳까지 울려 퍼졌다. 소모되는 삶이 아닌 무언가 창조하고 생산적인 일을 하면서 나를 기록한다는 것은 꽤 멋진 일이었다. 설레는 순간이었고, 내가 빛나는 순간이었다.
블로그와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글쓰기'를 시작한 지 이제 1년쯤 되어 간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글벗들과 내 글을 나누는 일상은 나에게 또 다른 세상을 알게 해 줬다. 점점 욕심이 생겨 마감이 있는 글 모임에 참여하기 시작했고, 공저로 종이책도 만들어 보고 전자책도 만들어봤다. 전문적인 글쟁이가 아니라서 시간 안에 주제에 맞는 글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확실히 쉽지 않았다. 쥐어 짜내도 글감이 떠오르지 않고 글감이 떠올랐어도 어떤 내용으로 풀어나갈지, 문장과 단어들은 왜 이렇게 어설픈지, 발행 버튼을 누를 때 까지도 고치고 또 고쳤다.
이런 게 창작의 고통이구나, 그런데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라 그럴까? 고통이 조금 즐거웠다. 외부로부터 오는 고통과는 뭔가 달랐다. 내가 만들어낸 고통엔 달달한 구석이 있었다. 힘겹게 발행 버튼은 누루고 난 뒤에는 묘한 성취감도 몰려왔다.
글쓰기는 나에게 새로운 꿈과 도전이라는 열정을 품게 해 줬다. 글쓰기로 무엇을,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나를 위한 글쓰기에서 나아가 다른 사람을 위한 글, 도움이 되는 글을 쓰고 싶은 열망도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내일은 나에게 어떤 일이 있을까?
글쓰기는 앞으로 나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내일이 기대되는 삶, 두근거림이 있는 그 순간이 좋다. 현재의 안정적이고 안락한 삶에 만족하는 삶은 생기가 없다. 가슴속 뜨거운 열정을 품고 생기 넘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나는 오늘도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