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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일도무사히 Dec 13. 2016

나는 어떤 인간인가...'편의점 인간'을 읽다

*북적북적 71 '편의점 인간' 듣기


편의점 자주 가시나요? 24시간 문을 여니 가끔 잠 못 이루는 새벽이건 밤이건 아무때나 갈 수 있어 참 편하다 싶은 편의점, 국내에는 1989년 처음 들어와서 지금은 3만 곳 정도 있다고 합니다. 


저는 학생 시절 편의점에서 잠시 일한 적 있습니다. 주택가와 유흥가의 경계쯤에 있는 작은 점포였고 야간에 일했기에 손님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자정이 지나 유통기한이 막 지난 삼각김밥과 컵라면 하나를 새벽 2시쯤 먹는 게 잔재미였고, 밤 11시에는 유제품과 김밥류, 12시엔 음료와 술, 새벽 1시엔 과자 등 매일 배송되는 상품들을 창고와 매대, 냉장고 등에 채워넣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당시 최저시급은 2000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딱 그 금액을 받았습니다. 야간 할증이 그때는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밤 10시부터 새벽 5시까지 일해도 할증은 없었습니다. 7시간 야간 노동의 대가는 14,000원이었습니다. 주6일 일하고 나면 84,000원. 일을 시작할 때 주급으로 받을 수 있냐니까 월급으로만 가능하다고 주장해 2주에 한번 받기로 타협했던 기억도 납니다. 2주 일하면 168,000원을 손에 쥘 수 있었죠.

 

자주 가는 편의점 점원들 이름과 얼굴을 혹시 기억하십니까. 저는 지금은 이름이 바뀐 '훼미리마트'의 초록색 앞치마를 두르고 일을 했습니다. 제복 혹은 앞치마를 벗고 평상복을 입은 그들을 다른 데서 마주쳐서 알아보신 일이 있으신가요? 회사 경비일 하시는 분들과 거리에서 만나 어색해했던 일이 더러 있습니다. 많이 본 얼굴인데 누구지.. 제복을 벗으니 모르겠더라고요.


사설이 길었습니다만, 편의점에서 무려 18년을 일하면서 스스로를 '편의점 인간'이라고 칭하는 독특한 여성이 주인공인 소설 '편의점 인간'이 이번에 읽은 책입니다. 


작가 무라타 사야카는 실제로 편의점 근무 경력이 있고 지금도 일주일에 3일씩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크레이지 사야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독특한 면이 있다는데.. 아무튼 군조신인문학상과 노마문예신인상, 그리고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그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이력이 있습니다.(이 세 개의 상을 한 작가가 받은 건 처음이라고 하네요. 일본 작가로 '상' 하면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상 이력을 찾아보니 아쿠타가와 상은 받은 적이 없더군요. 군조상과 노마상은 하루키도 받았습니다.) 아쿠타가와 상을 받은 작품이 '편의점 인간'입니다. 얼마나 재미있기에 혹은 재미없기에 저런 상을 받았을까 궁금해서 읽었습니다. 역시 수상작에 눈길에 가는 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소설의 주인공인 후루쿠라 게이코씨는, 크레이지 사야카라고까지 불린 작가이고보니 그 자신의 모습을 많이 반영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특이한 면이 많습니다. 소설이니까 더욱 특이하게 설정했겠죠. 게이코씨는 보통은 아르바이트로 생각하는 편의점에 취직해 18년을 일했습니다. 스스로를 편의점 나이로 18살이라고 여깁니다. 게이코씨가 편의점에 처음 취직해 연수를 받고 업무를 시작하는 장면부터 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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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1)

"나는 아까와 같은 음색으로 큰 소리로 인사하고 바구니를 받아들었다. 그때 나는 비로소 세계의 부품이 될 수 있었다. 나는 '지금 내가 태어났다'고 생각했다. 세계의 정상적인 부품으로서의 내가 바로 이날 확실히 탄생한 것이다."


"요전날 가게는 열아홉번째 5월 1일을 맞았으니까 그로부터 15만 7,600시간이 지난 셈이다. 나는 서른 여섯 살이 되었고, 가게와 점원으로서의 나는 열 여덟 살이 되었다."


게이코씨는 이렇게 '편의점 인간'이 되었습니다. 편의점 인간이 되기 전에도 예사롭지 않은 데가 있었죠. 공감 능력 내지는 사회성이 극히 떨어진다고 할까요. 이를테면 아이들이 싸우는 걸 말리라고 하니까 삽을 들어 한 아이의 머리통을 후려친다든지, 죽은 새를 보고 슬퍼하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꼬치구이를 만들면 되겠다고 한다든지 그렇습니다. 그렇게 '비정상' 취급받던 게이코가 편의점에 가니 '편의점 인간'으로는 지극히 '정상'입니다. 편의점에선 모든 게 정해져있고 매뉴얼대로만 따르면 됩니다. 그러니 게이코씨에게는 최상의 공간입니다. 


그렇게 잘 살아왔는데 게이코에게도 균열이 옵니다. 연애도 없이 결혼도 없이 18년을 편의점에서 일해왔던 삶, 스스로 좀 불안해집니다. 점장이 여덟번 바뀔 때까지 게이코는 자리를 지켜왔지만 주변 사람들은 알바만 하는 게이코를 이상하게 봅니다. 더 나이가 들면 편의점에서 일하지 못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장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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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2)

"육체노동자는 몸이 망가지면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아무리 성실해도, 분발하여 열심히 노력해도, 몸이 나이를 먹으면 나도 이 편의점에서 쓸모없는 부품이 될지도 모른다."



게이코도 어쨌든 사회적인 '인간'이니까요. 혼자 무인도에 사는 게 아닌 이상 주변 시선을 의식하죠. 주변에선 이상하게 봅니다. "너는 왜 여태까지 결혼도 연애도 안 하고 편의점에서 18년이나 일하고 있고 이상한 거 아니냐" 가족도 친구도 교류하는 사람들도 걱정합니다. 그런 즈음에 게이코씨 주변에 시라하라는 이름의 한 남자가 나타납니다. 여차저차한 과정을 거쳐(과정이 그리 스펙타클하거나 드라마틱하진 않습니다.) 게이코씨는 이 남자에게 먼저 "혼인신고를 하는 게 어떠냐"고 제안합니다. 연애 감정 같은 게 생겨서가 아니라(게이코는 그런 인간이 아닙니다...) '결혼하면 편리하겠다'고 생각해서인데, 알고보니(알고 그런 것이지만) 이 남자의 상황도 조금은 다르지만 비슷했습니다. 이 남자가 게이코씨의 제안을 수락하는 대목을 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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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3)

"밖에 나가면 내 인생은 또 강간당합니다. 남자라면 일을 해라, 결혼해라, 결혼을 했다면 돈을 벌어라, 애를 낳아라. 무리의 노예예요. 평생 일하라고 세상은 명령하죠. 내 불알조차 무리의 소유예요. 성 경험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정자를 낭비하고 있는 것처럼 취급당한다니까요."


혼인신고까지 하진 않지만 두 사람의 동거생활이 시작됩니다. 주변의 반응은 폭발적일 정도로 좋습니다. 드디어 네가 짝을 만났다거나.. '비정상의 정상화' 그 자체랍니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편의점에서 생깁니다. 동거 소식이 알려진 뒤의 편의점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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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4)

"여덟 번째 점장은 일을 열심히 하는 점이 존경할 만하고 최고의 동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만나기만 하면 시라하 씨 이야기만 하기 때문에 진절머리가 났다... 점장의 마음 속에서 나는 이제 편의점 직원이기 전에 인간 암컷이 되어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편의점 인간'으로 매뉴얼대로 잘 살아오던 게이코의 삶이 흔들립니다. 단지 좀 편리하려고 시작한 동거인데 어쩌면 존재가 부정당하는 상황이랄까요. 어쨌거나 두 사람의 묘한 동거는 게이코씨의 여동생과, 시라하씨의 제수가 한번씩 들이닥치면서 위기를 맞기도 하지만 이어집니다. 그런데 사건이 발생합니다. 시라하의 강권으로 인해 게이코씨는 18년간 잘 다니던 편의점을 갑자기 그만둬버립니다. 편의점을 그만두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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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5)

"18년 동안 그만두는 사람을 몇 명이나 보았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그 빈틈은 메워져버린다. 내가 없어진 자리도 눈 깜짝할 사이에 충원되고, 편의점은 내일부터 전과 똑같이 굴러갈 것이다."


"나는 모두의 뇌가 상상하는 보통 사람의 모습이 되어간다. 모두의 축복이 기분 나빴지만, "고맙습니다" 하고만 말했다."


이후 게이코는, 그리고 시라하는 어떻게 될까요? 200쪽 정도로 분량이 길지 않은 소설이니 뒷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직접 읽어보시도록 남겨놓겠습니다. 


'편의점 인간'을 읽으면서 저는 저도 회사 인간일까, 그럼 회사 나이 열 세살인가.. 회사에서 정해준 매뉴얼에 따라 살아가고 있는 걸까.. 이런 저런 생각을 했습니다.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경계는, 비범과 평범을 가늠하는 기준은? 저는 대체로 그 사회의 규범을 지키면서 살고 있는 편인데.. 그럼 잘 살고 있는 걸까요. 별로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 말이죠.


아마존에서 최근 새로운 개념의 쇼핑 스토어를 내놨습니다. 아마존 고라는 이름인데.. 스마트폰 앱을 실행시키고 가게 입구에서 찍고 들어가면 인공지능 카메라가 어떤 상품을 사는지 포착해 자동 결제한다.. 그냥 상품을 골라들고 나가면 된다.. 그런 컨셉입니다. 이 상점에서는 '편의점 인간'의 역할을 인공지능이 하게 되는 셈이죠. 매뉴얼대로 행하면 되는 '편의점 인간' 조차 필요없는 세상이 오는 걸까 싶기도 하고.. 그럼에도 사람의 역할은 줄어들지 않을 것 같고.. 


이런저런 상념이 많습니다. 저는 읽고 나서 생각이 풍성해지는 책이 좋은데 '편의점 인간'도 그렇습니다. 



*이 글은 SBS 보도국 팟캐스트 '골라듣는 뉴스룸(골룸)'의 일요일 책 읽는 코너 '북적북적'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책 내용은 일부만 옮겨왔고 낭독 사이사이 코멘트를 옮기면서 말을 더 보탰습니다. 낭독 내용이 전체가 궁금하시면 글 맨 위 링크 통해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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