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피트니스, 아무튼 외국어
“당분간은 살살 걷기만 하라고도 했다. 나는 트레드밀을 시속 3.5킬로미터로 걷는 달팽이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아무리 느려도 나는 움직이고 있다. 다시 움직인다는 것이 즐겁기만 했다. 분홍 신을 신고 무대에 오른 발레리나처럼, 운동화를 신고 나는 것 같았다. 나는 뭔가를 몸에 새긴 것이다. 몸에 새긴다! 이 말이 참 좋다.”
- <아무튼 피트니스>
“내게는 ‘외국어 3개월 정도만 배워보기’라는 취미생활이 있다. 심지어 전혀 모르는 말인데 독학을 하기도 한다. 책 한 권을 사다가 그냥 무작정 들여다보거나 오가는 출퇴근길에 괜히 들어보고 마는 식이다... 관심이 많지만 열심히는 하지 않는 이 꾸준함은 또 뭘까 싶지만, 습관적인 게으름 속에서도 꽤 오랫동안 이어지는 이 집요한 미련에 대해서, 이제라도 인정을 해보자는 차원에서, 용도를 알 수 없는 책을 쓴다.”
- <아무튼 외국어>
새해를 맞이하고도 흘러간 두 달, 벌써 춘삼월입니다. 2019년이 이제야 실감납니다. 해가 바뀌면서 다졌던 각오와 약속들, 얼마나 실천했고 또 유지하고 계신가요?
오늘 골라온 건, 새해 다짐과 관련 있는 듯 없는 듯한 책들, <아무튼 피트니스>와 <아무튼 외국어>입니다. 새해 계획을 묻는 설문조사를 보면 늘 상위권인 건강관리와 자기 계발의 핵심 키워드 ‘피트니스’와 ‘외국어’를 제목으로 삼은 책들입니다. “나약한 소리 집어치우고 닥치고 정진” 같은 내용일까요, 아니면 “매일매일 힘드시죠, 우리 같이 힘내 보아요.” 같은 류일까요.
<아무튼 피트니스>의 저자 류은숙 씨는, 뜻밖에도! 인권운동가입니다. 저자 소개를 보면 10년 넘게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로 일했고 운동(movement)을 한 지 25년이 넘었다고 나옵니다. 운동(movement)에 관한 책도 이미 여러 권 썼는데 또 다른 운동(exercise)에 대한 책을 낸 겁니다. 왜 책까지 쓰게 됐을까. 나이 들면서 몸 이곳저곳에서 보내온 신호 때문에, 비자발적으로 운동을 해야 했던 게 컸습니다. 절로 이해가 갑니다. 건강 검진 결과 나오면 한동안 조금이라도 더 걷고 일부러 계단을 이용하는 것과 비슷한 거겠죠.
이번엔 외국어. <아무튼 외국어>의 저자 조지영 씨는, 직장인입니다. 문학청년의 꿈을 품고 불문학을 전공했으나 전공과 무관한 일을 택해 출퇴근에 매진하고 있다는데 독특한 취미를 갖고 있습니다. 맨 앞 인용문에 나왔듯 프랑스어, 중국어, 독일어, 스페인어, 일본어... 한국의 주요 ‘제2외국어’들을 다 공부해 봤다고 합니다. 필요해서가 아니라 “취미가 외국어 공부”라니!! 그런데 ‘명절 피란’ 등을 갔다가 돌아올 때면 꼭 이런 다짐을 한다네요. ‘이 나라 말을 배워서 다시 오자’...??
“재미없는 재미를 아는 사람들의 언어를 본격적으로 좀 알아볼까 싶은 생각이 든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 한참 지나서였다... 업무적으로 외국어 쓸 일이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긴요하게 쓰이는 말들은 영어와 중국어와 일본어였다. 그 외의 말들은 굳이 알 필요도 알아야 할 이유도 딱히 없었다. 그런데도 독일어는 공부를 하고 싶었다. 쓸모없는 진중함, 효용을 바라보지 않는 진실함 같은 것, 1+1=2처럼 딱 떨어지는 에누리 없는 말들의 매력을 느껴보고 싶었다.” - <아무튼 외국어>
저 또한 구텐탁과 당케, 아우프비더젠 밖에 모르지만 20여 년 전 외워댔던 데어데스뎀덴 디데어데어디에 대한 기억은 선명합니다. 그냥 남학생이라는 이유로 배워서 바로 까먹었던 독일어 추억. 또 처음 국제스포츠대회 출장을 다녀왔던 10여 년 전, 동명이소(同名異所)에서 기다려도 기다려도 끝끝내 오지 않던 성화 때문에 담당자와 영어로 싸웠던 그때... 거센 항의를 하지도, 자세한 설명을 듣지도 못해 ‘내 한국 돌아가면 영어를 씹어삼켜주리’ 울분을 삼켰던 내 청춘의 그 시절.
"나의 목적은 뭘까, 친구들은 입 모아 만장일치로 말했다. "계속 마시기 위해서!"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다. 스무 살 때부터 마셔온 인생, 인생에서 이걸 지워버리고 산다면 그런 삶은 내겐 '건강한 삶'이 아니다. 기억이 사람을 만드는 것이라 하지 않는가. 같이 마신 사람들이 기억해주는 게 내 삶이다. 내가 그들을 기억하며 만든 유대가 내 삶이다. 맞다. 계속 마시기 위해선 규칙적으로 몸을 움직여야 한다." - <아무튼 피트니스>
연말이면 미루고 미루던 건강검진을 받습니다. 한 달 앞일 때 비로소 정신 차리고 소울푸드인 치킨을 위시해, 기름진 안주류와 음주와 조금 거리를 두려 하나 몰려 있는 송년회를 피할 길이 없습니다. 올해의 ‘몸 성적’을 그래도 전년보다 조금 향상하기 위한 ‘벼락치기’ 투쟁... 계속 마시기 위해서는 건강해야 한다는 역설.
‘새해 결심’의 양대 축을 제목으로 하고 있지만, 이 책들은 결이 다릅니다. <아무튼 피트니스>는 몸과 삶에 대한 책 같습니다. 저는 아직(앞으로도 당분간!) 젊다고 여기지만 저자의 이 말에 퍽 공감하고 저도 그랬으면 합니다.
“나이는 어떤 사람보다는 많고 어떤 사람보다는 적을 뿐이라 하지만, 세대의 역사와 사회가 만든 흔적에는 차이가 있다.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이 교차하는 삶 속에서 아래에 서려는 자세, 그것이 ‘이해하다’일 것이다. 몸도 마음도 아래에 서려는 태도를 내 운동이 꿋꿋이 버텨줬으면 좋겠다.”-<아무튼 피트니스>
<아무튼 외국어>는 낯선 것들, 그리고 대비되는 일상에 대한 책 같습니다. 지루한 마라톤을 잘 버텨내기 위한 취미 한 조각이랄까요. 저마다 다른 무엇으로 대체 가능합니다.
“잡기는커녕 손에 제대로 닿은 적도 없으나 영어를 이미 잡은 언어 취급하면서 그럼 다른 언어를 만나볼까 하며 이 언어 저 언어 기웃거리고 다녔다. 꼭 배우고 말겠다는 목적성이 약하고, 잘하면 좋지 싶은 정도라서, 번번이 입문과 초급 수준에서 뱅글뱅글 도는 일상이 반복되고 있지만, 가성비 떨어지는 이 취미 아닌 취미를 앞으로도 꽤 오래 지속할 것 같다.”- <아무튼 외국어>
미세먼지가 창궐하고 있으나 그래도 뭔가 다시 시작하기 좋은 3월입니다. 이 <아무튼..> 책들이, 아무튼 뭐라도 하고픈 분들에게 작은 계기나, 즐길 거리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오랜만에 다시 읽은 이 책들 덕분에 그럴 것 같습니다.
*모 매체에 기고했는데... 브런치에도 옮겨봅니다.
*<아무튼 피트니스>는 이렇게 북적북적에서 소개한 바 있습니다. 당시엔 <아무튼 방콕>과! https://brunch.co.kr/@sso5what/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