뜸했습니다. 책을 읽지 않는 건 아닌데, 맘 잡고 차분히 읽지는 못하는 날들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최근 며칠 사이 몰아서 읽은 책 이야기를 잠시...
-플라이백, 박창진.
'땅콩회항' 사건의 피해자이자 대한항공직원연대지부장(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산하)인 박창진 사무장이 쓴 책입니다. 블라인드를 통해 의지를 모아 마침내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쓴 대한항공 직원들이 세종문화회관 앞에 처음 모였던 장면으로 시작해 박 사무장이 대한항공에 입사하기까지로 거슬러 올라가고 다시 지금까지로 되짚어옵니다. 원래 글쟁이가 아니었고 우리와 비슷한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박 사무장이 사주 일가의 전횡을 폭로하고 힘든 시간을 견뎌내다 노조지부장을 맡기까지 하는 건 정말 우연한 계기에서였습니다.
"혹자는 왜 굳이 이 처절하고, 외롭고, 질 게 뻔한 싸움에 나섰냐고 묻는다. 내가 아무리 투사가 되어 사회를 변혁하자고 외친 들 무엇이 바뀌고, 어떤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말이다. 그런 질문을 받으면 나는 그들에게 말한다. '적어도 나라는 한 사람은 바뀌었다'고."
책을 읽으며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팩트가 없나 살펴보기도 했지만 그것보다 '인간은 모두 존엄하다'면서도 특별히 더 존엄한 이들과 그 하수인, 그리고 존엄하지 않은 이들로 나뉘어버린 이 사회에서 존엄함을 지키기 위해 분투했던 한 사람의, 투박하지만 솔직한 이야기를 읽어보는 맛이 있었습니다. 휘트니 휴스턴의 The Greatest Love of All 가사 중에 Dignity를 들어 존엄에 대해 말하는 대목과, 왜 특정 기자에게 연락해 폭로 인터뷰를 하게 됐는지가 저에게는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쉽게 읽을 수 있는 두껍지 않은 책입니다.
-좀도둑 가족, 고레에다 히로카즈.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어느 가족'(만비키 가족) 소설 버전입니다. 원작이라기는 뭐한 게 영화와 선후 관계를 모르겠네요. 김태용 감독의 영화 '가족의 탄생'도 언뜻 떠오르는데... 저는 영화는 아직 안 봤습니다만. 좀도둑 가족은 제목처럼 만비키, 좀도둑질까지 더해져 살아가는 가족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피로 맺어진 관계는 아무도 없습니다. 도둑질하다 우연히 구해줬거나, 길에서 주워오거나, 이런저런 상황 속에 만난 이들이 가족처럼 살아갑니다. 어딘가 하나씩 꼬인 데도 있고 상처도 있고 사연도 많은 그런 이들이 모여서 벌어지는 갖은 에피소드 속에 피어나는 가족애 아닌 가족애라고 할까요. 영화를 매우 보고 싶어졌습니다.
-마흔에 관하여, 정여울.
정여울 작가가 마흔이 되면서 쓰기로 했던 책인 것 같습니다. 저는 사실 마흔이 뭐라고, 하는 마음이 없진 않습니다만, 그렇다고 서른이나 마흔이라는 인생의 한 분절에 대한 의미 부여를 부인하지도 않습니다. 제가 부인한다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저에게도 얼마간 의미가 있으니까요. 작가는 마흔이 되고 나니 더 넓어지고 깊어진 자신과 주변에 대해 여러 사례를 들면서 말합니다. 크게 공감가는 대목도, 나랑은 생각이 다르네 싶은 지점도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서른이 되면 세상이 무너질 것만 같았고, 마흔이 되면 인생에서 더 이상 새로움이란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웬걸, 서른의 삶은 하루하루가 박진감 넘쳤고, 마흔의 삶은 예상보다 훨씬 아름답고 눈부셨다. 마흔 이후에야 알게 되었다. 나이 드는 것은 공포의 대상이나 떨쳐버려야 할 원죄가 아니라는 것을. 삶을 소중히 가꾸는 사람에게, 나이 드는 일은 오히려 찬란한 축복임을."
마흔이 지났거나 곧 마흔이거나 아니면 한참 남았더라도 한 번 읽으면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책입니다.
*팟캐스트 골라듣는뉴스룸의 책 읽는 코너 '북적북적'에서 이번 주 낭독하는 책은 [마흔에 관하여]입니다. 업로드하면 여기에도 올리겠습니다.
*여러 기자들과 나눠서 하면서 제가 참여하는 간격이 3주에 한 번으로 벌어졌습니다. 포스트가 더 뜸해진 만큼 책 이야기를 좀 더 적어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