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쯤 알려나.. 암튼 함부로 말하지 말 것!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

by 내일도무사히

“당신의 과거는 당신의 미래가 아니다”

“당신은 당신이 알고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내가 누구인지 함부로 말하는 그는 누구인가


“당신이 무엇을 먹었는지 말해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


프랑스의 법관이자 미식평론가 사바랭의 (나름) 유명한 말입니다. ‘의식이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어느 선현의 말씀도 떠오릅니다. 어떤 사람을 판단하기에 가장 좋은 재료가 되는 건 그 사람의 말과 행동, 행적일 터, 당연하고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것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나도 종종 나를 잘 모르겠는데 말이죠.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처럼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큰 사람은 범죄자 취급하는 게 타당한 걸까요.


조금 다른 듯 비슷한 얘기 하나 더. 이번엔 자존감입니다. 영어로는 Self-esteem. 풀어쓰면 ‘나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 정도일까요. ‘자존감 높은 사람이 되자’, ‘자존감 높은 아이로 키우자’ 등등 요 몇 년 새 많이 쓰이는 것 같아요. 2000년대만 해도 이렇게 많이 쓰지 않았던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자존감’이 주목받는 단어가 됐을까요.

오늘 함께 읽었으면 하는 책은 ‘나’를 조금 더 알아보자, 그리고 삶에 치여 지치고 힘든 나를 위로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뇌과학과 심리학의 시선으로 들여다본 ‘나’. 허지원 교수의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입니다.

●유니콘처럼 환상 속에 있는 ‘높은 자존감’


“어떤 사람을 만나면 이렇게 행동하고, 다른 사람을 만나면 또 다르게 행동하는데, 이게 너무 위선적이고 가식적이라는 걸 저는 계속 의식하고 있거든요. 집에서의 모습과 친구들한테 보이는 모습, 직장에서의 모습이 다 달라요.”


책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K의 사연. 자존감이 너무 낮다면서 괴로워하는 그의 심정이 그리 낯설지 않습니다. 저도 그런 경험 있으니까요. 언제, 어디서나 쿨하고 시크하게, 때로는 자신감 넘치게 직장 상사든, 권력자든, 부자든 만나면 당당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나. 하지만 일상에서의 저는 때때로 비굴하고 가식적이고 그래서 씁쓸한 소시민입니다. 그럴 때마다 저 자신의 자존감은 땅에 처박힌 것 같습니다.


왜 그렇게 저의, 그리고 우리의 자존감은 높지 못할까요. 노력이 부족해서? 치열하게 살고 있지 않아서? 그렇게 개인의 책임이라고 질타하는 자기계발서가 무수히 많습니다. 제시하는 해법은, 1만 시간을 노력해야 한다거나 인문학 서적을 매일 읽어야 한다거나 책마다 제각각, 여러 가지입니다. 서너 살 유아의 자존감을 측정한다는 검사지까지 나올 정도로 ‘자존감 높이기’ 열풍이 몰아쳤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렇게 진단하지 않습니다.


“높은 자존감이란 ‘착한 지도교수’나 ‘부모의 손이 필요 없는 아이’처럼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신화 속 동물인 유니콘 같은 것.”


사실 그렇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어떤 상황에서든 견고하게 높은 자존감을 유지하는 사람, 얼마나 있을까요? 그건 자신의 사회적 위치와 관계에도 좌우되는 것 같아요. ‘갑질’ 프레임과 자존감은 떼어놓고 생각하기가 쉽지 않다는 거죠. 당장 나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갑’을 상대로 누가 봐도 ‘자존감 높게’ 말하고 행동할 수 있을까요.


심리학의 대가인 융에 따르면 사람은 누구나 사회적 압력에 적절히 반응하기 위해 천 개의 가면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혼자 있을 때 자신과, 다른 사람과 있을 때 자신, 사회생활할 때의 자신은 당연히 달라야 하고 만약 언제나 똑같은 태도로 있다면 그것은 병리적인 상태라고 허 교수는 말합니다.


그러고 보면 떠오르는 한 인물, 걸을 때 보폭이 늘 한 자 일곱 치로 일정했다는 그는, 한국 무협소설 <태극문>에 등장하는 천하제일고수 화군악입니다. 자신의 신체를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기에 매일매시 일정한 보폭의 유지가 가능했다고 묘사되는데 이것도 병리적인 거겠죠!


●‘너 잘하고 있지, 잘해왔지’... 조금씩 알아갑시다!


이렇게 ‘자존감’이라는 키워드로 시작한 책은, ‘타인을 시험에 들게 하지 말 것’, ‘완벽주의적 불안에 휘둘리지 말 것’, ‘의미를 찾으려 하지 말 것’, ‘당신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하지 말 것’으로 이어집니다.


“실패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나 (일희일비는 고사하고) 일비일비할 필요가 없음을 꼭 말해주고 싶습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과 생각, 신념들에서 부드럽게 물러서고... 반드시 해야 할 일에는 당신과 당신의 사람들이 불행하지 않을 만큼만 전력을 다하되 그다음은 운명의 시간으로 떠나보내기를...”


저는 특히 이 장이 좋았습니다. 위로와 힐링, 치유와 공감을 내세우는 책들이 워낙 많고 더러는 읽어봤지만 이 책은 조근조근, 그러면서도 너무 응석받아 주듯도 아니라 적당히 조언해주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평생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는 말장난도 그만둬야” 한다고 질타하기도 하고요. ‘당신의 인생을 살라’, ‘당신의 가치를 부정하는 사람이나 환경과는 우아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그렇게 품위를 잃지 말라’고요.


나도 아직 나를 모르니까 우리 함부로 자신을 말하지 말자! 이 책 읽으면서 우리 모두 ‘너 잘하고 있지, 잘해 왔지’ 하며 스스로를 다독이고 조금씩, 아주 조금씩 알아주면, 알아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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