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올 그날까지 미루리라!...<미루기의 천재들>

by 내일도무사히

“어쨌든 아직은 때가 아니옵고.”


● 미루고 미루다가 그날이 오면 어떻게?


여름휴가도 막바지입니다. 이번 휴가만큼은 자신 있게 몸매를 뽐내겠다! 겨울부터 운동과 다이어트를 했던 저를 비롯한 여러분들. 그 목표, 얼마나 달성한 채 휴가 떠나셨나요? 휴가를 차마 미룰 수 없었다면 (환상 속) 멋진 몸매는 이번에? 아니면 다음 휴가로?


저의 다이어트는 늘 내일부터 시작! 오늘까지는 일단 먹고요. 어찌 됐든 아직은 때가 아닌 거죠. 이렇게 미루고 또 미뤄 온 ‘미루기 인생’, 매번 이렇게, 늘 이처럼 미뤄도 괜찮은 걸까. 의구심 가득하던 때 나타난 단비 같은 책이 있습니다.


오늘 함께 읽는 책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찰스 다윈에서 당신과 나에게로 이어지는 미루기의 역사’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그렇죠, 우리는 역사를 완성해가고 있는 겁니다. 오늘, 지금은 아직 때가 아니고, 내일부터! 미국 작가 앤드루 산텔라가 쓴 <미루기의 천재들>입니다.


● 미루기는 꼭 게을러서만은 아니더라


“오늘날 우리는 레오나르도가 그린 헬리콥터나 잠수함, 심지어 로봇의 도면을 보며 감탄한다. 하지만 그 시절 레오나르도를 고용한 이들이 궁금해했던 건 단 하나였다. 과연 이자가 약속한 날에 약속한 일을 마칠 것인가?”


우리는 대개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벼락치기일망정 맘 잡고 시험공부 좀 하려고 보면 책상이, 공부에 방해될 만치 너무 지저분합니다. 책상 위를 치우다 서랍 정돈까지 눈길이 가고 그러면 저쪽 구석에서 옛 연인의 사진이 튀어나옵니다. 이참에 정리해볼까, 그러고는 다음 서랍에서 또 무언가가... ‘아 그때는 풋풋했는데.’ 추억에 잠기고 어느새 시계는 자정으로 향하고 이런 패턴. 마감이 임박한 보고서나 원고를 써야 하는 경우(지금!)도 그렇습니다. 전에 읽다 던져둔 소설의 다음 대목이 매우 궁금하다거나 잠깐 열어본 유튜브 영상에 빠져든다든지. ‘일은 나를 바른 길로 이끌어줄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지만 ‘내가 무슨 일을 해서든 피하고 싶은 유일한 것’이기도 하니까요.


“우리는 지금 일할 것이다. 아아, 하지만 너무 늦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위인들이 실은 그러했다고 합니다. 찰스 다윈은 “모든 종은 변화한다”면서 1838년에 이미 진화론에 대한 설명을 노트에 적어놓고 20년 동안 꾸물거렸습니다. ‘긴 기다림’을 거친 끝에 <종의 기원>을 출간한 건 1859년이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1483년 밀라노의 성도회로부터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의 그림을 의뢰받습니다. 7개월 안에 완성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암굴의 성모>가 예배당에 걸린 건 25년 뒤였습니다.


이들은 왜 그렇게 미루는 걸까요? 저와 여러분은 그렇다 치고 천재성이 빛나는 위인들이 그러는 건 게을러서만이 아니라 뭔가 다른 심오한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요. 작가는 몇 가지 이유를 찾아 적어놨습니다. 결과에 대한 불안으로부터 회피하기, 지나친 완벽주의에서 오는 부담감이나 혹은 자기 통제 능력을 결여했다는 것, 또는 귀차니즘?


● ‘진짜 글’을 쓰기 위하여 글쓰기를 미룬 것일까


“...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지금 나는 술 한 잔을 손에 들고 누워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은 글을 쓰고 있는 거야. 때가 되면 ‘글쓰기’를 멈추고 진짜 글을 쓰기 시작할 거야.”


십 년 넘게 기자로 일하고 있는 저는, 제가 왜 기자 시험 준비는 미루지 않고 비교적 착실하게 할 수 있었는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입사 준비를 하던 즈음에 개봉한 유명 영화나 출간된 소설, 드라마 같은 걸 저는 빼먹는 거 별로 없이 다 봤거든요.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했던 말, “이것도 다 시험공부!” 상식 시험과 논술·작문을 준비해야 하니까 모든 게 시험 준비의 일환이었고 그러니 무슨 딴짓을 해도 마음이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남는 시간엔 글도 쓰고 다른 공부도 하긴 했죠. 정작 기자가 되니 마감시간을 제 맘대로 미룰 수 없는 게 안타깝습니다.)


여유와 낭만이 필요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질러가기만 할 게 아니라 가끔 돌아갈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 사소하면서도 다양하게 시간 보낼 일들을 찾아내 또 다른 길을 찾고 예상하지 못했던 틈새를 발견해간다는 것. 최선을 다해서 미루고 또 미루고 미루기 위한 이유를 찾는 건 일에 대해 그만큼의 경외감을 갖고 있다는 것.(이렇게 합리화합니다.) 그렇게 준비를 하노라면 언젠가는 그저 글쓰기를 멈추고 진짜 글을 쓰기 시작하겠죠.


● 500년 뒤 백마 타고 찾아올 초인을 기다리며...


휴가 시즌 굳이 이 책을 함께 읽고 싶었던 건, 소중하고 또 소중한 휴가만이라도 언젠가, 조만간 해치워야 할 일들을 조금은 미뤄두고 한숨 돌리는 여유와 낭만을 가져보시면 어떨까 하는 마음에서입니다. 멋진 몸매를 위한 도전도 좋지만 다이어트는 내일부터 시작하는 거니까요. (일찍 휴가를 다녀와 해야 할 일만 쌓여 있는 저 자신에게 조금은 심술이 나서이기도 하고요.)


‘미루기 천재’의 후일담 하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죽을 때까지 그란 카발로, 청동상을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레오나르도의 사후 500년, 미국의 미술품 수집가가 고용한 조각가에 의해 동상을 완성해 밀라노에서 선을 보였습니다. 책에 나오진 않지만 안토니 가우디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4분의 1 짓고 1926년 사망했는데 가우디 사후 100주년인 2026년 이 성당은 완공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참을성을 갖고 기다리면 100년, 혹은 500년 뒤에 어느 초인이 나타나 내가 해내지 못한 일을 마무리해줄지도 모르다는 것. 이 또한 낭만적이지 않나요?


<함께 읽으면 좋을 책>

'아무튼 술', 김혼비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의 김혼비 작가가 아무튼 시리즈에서 술을 맡았습니다. 세상의 모든 술꾼들을 위한 책, 술술 넘어가는 글솜씨가 이번에도 빛을 발합니다. 술과는 거리가 먼 분들이라도 이렇게라면 나도 한 잔 해보고 싶은 마음이 동할 정도. 휴가 즈음에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으로 함께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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