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을 통해 본 '불촬지옥 대한민국'(3)

by 내일도무사히

제목을 조금 과하다 싶게 붙여봤다. 그럼에도 이건 코로나 대응과 마찬가지로 과해도 되는 문제다.


● 불법촬영이 계속되는 세 가지 이유


불법촬영, 왜 이렇게 근절되지 않을까. 첫째, 처벌이 가벼워서. 둘째, 단속이 적당해서. 셋째, 인식이 저열해서. 이 세 가지는 맞물려 있다.


처벌이 가볍기에 '호기심' 운운하며 범행하는 이들이 끊이지 않는다. 걸려도 '잘못했다' 그러면서 선처를 호소하면 대개 벌금형 받는 게 가능하다. 아예 3분의 2는 기소조차 하지 않는다. 처벌이 두려워 범행을 주저할 이유가 크게 없는 것이다.


단속이 적당하다는 건, 경찰의 단속이 다른 범죄에 비해 강하지 않다는 의미다. 경범죄와 비슷하다. 경찰력이 한정돼 있으니 세상 모든 범법 행위를 단속할 수 없어 '선택'하고 '집중'하는데 그 대상에 불법촬영은 들어가지 않는다. 불법촬영이 주요 이슈로 떠올랐던 2018년 경찰이 한시적으로 특별단속을 벌인 적이 있다. 그때뿐이었다. 처벌은 가볍고 단속은 적당하니 적발 가능성 낮다.(그럼에도 1년에 6천 건 적발... 어마어마한 거다.)


인식의 저열함은, 불법촬영은 '몰카'라는 이름의 장난으로 여기는 행태와 연결된다. 이에 대한 인식을 바꾸거나 인식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게 궁극적인 해법이 되겠으나 멀고도 험한 길일 터. 단기 해법은 역시 단속 강화, 처벌 강화다.


● 누구는 벌금, 누구는 징역 '들쑥날쑥 판결'... 왜?


먼저 보여주고 싶었던 건, '들쑥날쑥 판결'이었다. 비슷한 사건인데 제각각인 판결. 구상은 그러했으나 비슷한 사건부터가 문제였다. 쌍둥이라고 해도 같은 사람이 아닌 것처럼 비슷해 보이는 사건이라도 다른 점이 적지 않을 것이었다. 그걸 놓고 왜 다른 판결이 나왔냐고 문제 제기한다는 게 어쩌면 억지 아닐까 하는 고민이었다. 한편으로는, 불법촬영 사건의 판결문 자체가 대개 짧고 범죄 사실 서술도 간략하기에 그것만 놓고 보면 유사 사건을 가려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지하철에서 연령 불상의 여성 신체부위를 휴대전화로 2-9회 불법촬영한 사건". 2018년 서울에서 선고된 불법촬영 1심 432건 중 가장 흔한 사건으로 유사 사건으로 묶이는 게 23건이나 됐다. 이 사건들의 선고 형량은 어땠을까. 최소 벌금 150만 원부터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까지 다양했다. 이 정도 범죄면 이만큼 선고받을 것이라고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양형에 참고할 만한 여러 요소가 다르기 때문에 그럴 수 있겠다 싶지만 또 다른 이유... 불법촬영 범죄에 대한 별도의 양형 기준이 없다는 것도 크게 영향을 준 것으로 보였다. 판사들이 판결에 참고할 만한 준거가 없다 보니 다른 범죄, 혹은 성폭력 범죄에 준해 판결할 수밖에 없고 그러니 제각각, 들쑥날쑥 판결이 나오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추론이 합리적이었다.(불법촬영 양형기준은, 대법원 양형위원회에서 올해 상반기 목표로 마련 중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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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 판사 vs. 현실 판사


시민의 눈높이와는 얼마나 차이가 날까. 아예 시민들에게 판결을 맡겨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시민이 판사가 되어 판결을 내린다면 불법촬영 범죄에 어떤 형을 선고할까. 예상컨대 지금의 선고 형량보다는 더 높을 것.


그래서 제작한 게 '시민판사 불법촬영 범죄를 판결하다'(http://mabu.newscloud.sbs.co.kr/201905cam/)였다. 2018년 불법촬영 판결문 분석을 통해 추출한 가장 흔한 5건에 대해 시민판사가 판결을 내려보는 참여형 콘텐츠였다.


공개 이후 나흘 만에 1,123명이 참여했다. 기대 이상이었다. 이를 통해 1천 개 이상의 판결이 나왔기 때문에 시민판사의 판결을 비교 분석하는 것도 의미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그다음에 쓴 기사가 '시민판사 1,123명의 불법촬영 범죄에 대한 판결은?'(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5289018)이었다.


● 2020년에는 어떻게?


늘 그렇듯이 아쉬운 점이 적지 않았다. 작년 5월 당시엔 뭔가 쫓긴 듯이 시민판사의 판결도 나흘 수집하는 것에 그쳤다. 좀 더 시간을 갖고 데이터를 수집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후에도 비슷하게, 혹은 다르게 이어갈 수 있도록 설계에 반영했어야 했으나 그때는 그런 생각을 못했다. 각자 소셜미디어에 공유할 수 있도록 자신의 판결과 실제 판결, 다른 시민판사의 판결을 잘 모아 비교할 수 있게 했다면 좋았을 것 같다.


한 사람이 여러 번 참여하는 것도 가능하다 보니 과연 저 결과가 시민 일반을 대표할 수 있냐는 지적에는 대표할 수 없다고 답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법촬영을 소재로 국내 데이터저널리즘팀 중에서는 처음으로 의미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 시민 참여까지 이끌어냈다는 점은 조금 뿌듯하다. 이런저런 한계와 아쉬움을 어떻게 극복하면서 올해도 이어갈 수 있을지 고민이다.


*시민판사의 판결문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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