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시작되었다'.. 는 특종과 낙종기

by 내일도무사히

간만에 서점 들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필두로 최순실, 김기춘, 우병우, 안종범 등의 사진으로 표지를 디자인한 음울한 분위기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시작되었다], 저자는 이진동 전 TV 조선 기자...


어쩔까 싶었는데 일단 읽기로 했다. 책을 기획하고 집필하고 출간할 때까지는(2월 23일 초판이 나온 걸로 돼 있다) 이렇게 될 줄 몰랐겠지만...


특종기이자 낙종기였다. 2014년 고영태를 소개받으면서 험난한 취재를 시작해서 물꼬를 틀 때까지, 그리고 청와대의 반격과 경영진의 눈치 보기 등으로 취재해놓은 것들을 기사로 쓰지 못하고 묵히고 묵힐 때까지. 태블릿 PC 보도 이후에야 비장했던 의상실 CCTV를 보도할 수 있었던 사연도. JTBC, 그리고 한겨레에 가려질 수밖에 없던 TV조선과 이진동이 합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항변하는 책이기도 하다.


꽤 구체적으로 적었기 때문에, 같은 업계 종사자로서 더더욱 재밌게 읽을 수밖에 없었다. 큰 밑그림을 그리고 팀을 구성해 하나씩 단서를 모아가는 과정은 대개 흥미롭게 읽힐 것. 더군다나 탄핵 결정이 불과 1년 전 아닌가.


가장 쫄깃했던 부분 중 하나는, '한겨레의 참전' 중 김의겸 기자를 만났을 때다. 주류 신문의 좌우를 대표하는 두 신문의 나름 대표 기자가 만나 소주 9병을 마시며 일종의 회담을 하는 장면도 꽤 상징적이다.(이진동은 한국일보에서 조선일보로, 다시 tv조선에 있었기에 정확하게는 조선일보의 대표 선수는 아니지만. 아마 조선일보에 계속 있었다면 이렇게 취재하고 보도하긴 어려웠을 것 같지만) 자존심을 버리고 취재자료를 달라는 김의겸, 그건 안 되겠다고 거절했으나 며칠 뒤 미르재단 사무총장의 연락처를 요청받자 다른 말 없이 찍어준 이진동....

한참 지나 한겨레 다른 기자의 취재기에 이 부분은 서술된다.


"... 전화번호조차 따기 쉽지 않았다. 소주 10병을 마신 뒤 얻은 번호였다. 닷새 전 김의겸 선임기자는 누군가와 한낮부터 술을 마셨다. 깨어보니 서울 한복판이었다고 한다. 시간은 새벽 4시. 소주를 나눠 마신 이는 ‘술정’ 때문인지 김 선임기자에게 번호를 일러줬다. 비밀스러운 거래를 들키지 않게 해달라는 단서가 붙었다..."


나름 동료애를 발휘했던 대목 같은데 '술정' 운운해놓으니 불쾌했다고 적고 있다. 빈정상했던 듯.(마신 소주도 1병 늘었다.)


책에 sbs는 단 한 번 등장한다. '박태환 협박 녹취록'을 입수해 공개하는 기사를 11월 19일에 냈는데 이미 넉 달 전 tv조선이 보도한 것과 사실상 같은 내용이었다는 설명과 함께.


역사의 한 기록으로서 읽어볼 만하다. 단, 감안해야 할 점이 많다. 기자 생활 내내 특종에 특종을 이어간 이진동 기자였으나, 2008년 총선 출마로 언론계를 이미 떠났다. 당선됐다면 다시 돌아오지 않았겠으나 낙선했고 다음 해 재보궐선거에서는 공천심사에서 탈락했다. 2011년 tv조선으로 컴백. 그리고 2018년 3월, 이번엔 성폭력 의혹으로 파면당하며 언론계를 떠나게 됐다.


그와 소주 9병을 마시며 어쩌면 아름답게 기록됐을 수 있던 한 장면을 만들었던 김의겸도 언론계를 떠나 대통령의 입이 되었다. 허망한 일이다. 한겨레 특별취재팀의 [최순실 게이트]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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