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철, 정남규, 강호순... 2000년대 초중반 사회부 기자로 일했던 이들이라면 아마 이 셋 중 적어도 1명 혹은 2명 이상은 잊을 수 없는 이름일 것이다. 나에게는 유영철과 정남규가 그렇다. 20명을 연쇄 살인한 유영철은 2004년 7월 검거, 13명을 연쇄 살인하고 20명에게 중상을 입힌 정남규는 2006년 4월에 검거, 이 두 시기 모두 나는 사건팀에 있었다.
유영철 검거 당시엔 동대문 담당이라 취재의 변두리에 있었다. 현장 검증에 두어 번, 유영철이 살던 오피스텔을 취재하러 한 번 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반면 정남규 검거 당시엔 관악 담당이라 봉천동 살인 사건 현장에도 갔었고 영등포경찰서 관할이었지만 일주일 정도 파견가 취재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 경찰이 좀 더, 기자는 꽤 덜, 고생은 했으나 다들 세련되진 않았다.
당시 보고 내용을 뒤져보니 이런 게 나온다. 2006년 4월 경찰 관계자에게 들은 정남규의 진술 내용...
"불 지르고, 강간하고 싶고, 증오하고,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든다."
"20대 때는 주로 강간, 어린이 성폭행 많이 했고 그 후론 사람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때, 10살 때와 고등학교 때 다른 동네 아저씨에게 성폭행당했다."
"4,5년 전부터 사람을 죽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심장은 찌르면 피가 튈 것 같아서 안 찌르고 배나 등을 찌르고 즉시 도망쳤다."
"완전범죄를 위해서 여자를 택했다, 남자는 반항하고 대드니까."
"칼에 묻은 피 냄새를 맡으면 기분이 좋았다"
"장기 같은 건 꺼내서 삶아먹고 싶었다."
"완벽하게 화성 사건처럼 하고 싶고 그런 영화를 본 뒤 그대로 하고 싶었다."
저런 마음이었을까, 검거된 뒤에도 여전히 거들먹거리고 싶은 마음에 그런 말을 했던 걸까. 유영철 사건 때와는 달리 정남규 사건은 미디어의 주목이 그렇게 길게 가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 마포 일대에선 연쇄 성폭행범이 잡혔고 인천 쪽에서는 유괴 사건이 벌어지면서 정남규 건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관심이 사그라들었다. 그랬던 때였다. 강호순 사건은 사건팀을 나온 뒤라서 인지 기억나는 게 별로 없다.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이 책은 주로 한국 최초의 프로파일러 권일용에 대해서, 그리고 권일용을 이끌어준 윤외출과 권일용이 이끌어낸 후배 프로파일러들에 대해 다룬다. 프로파일러 권일용이 본격 활동하게 된 건 유영철 사건이 출발이었고 정남규과 강호순의 연쇄 살인을 밝히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한국에 본격 등장한 연쇄 살인에, 갓 탄생한 프로파일러가 함께 했다. 탐문과 현장 수사를 중심으로 한 일선 경찰들과 프로파일러의 대립이 극적으로 서술돼 있진 않지만 그랬을 것이라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다.
유영철, 정남규 사건에 대한 약간의 지식과 (한때) 큰 관심과 관여 정도가 있어서였을 테지만 술술 읽힌다. 그저 그 사건의 범행수법이라든가, 검거 경위 등에 대한 내용이 주였다면 아니었겠지만 프로파일러의 입장에서 서술된 그 사건들은 색달랐고 충격적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경찰 기자 하던 초년에는 알지 못했던 사실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학교 졸업하고 연락 주고받은 일이 없던 후배가 경찰이 됐단 소식에 의아해했던 기억이 있는데 프로파일러가 됐던 거였구나 하기도 했다.
유영철, 정남규, 강호순 그리고 조현길이나 성유철, 거슬러 올라가 김대두까지 왜 그 시대, 대한민국에서 그런 괴물을 낳게 됐는지는... 아쉽게도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도 잘 모르겠다. 사형제는 폐지돼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으나 유영철 사건을 접하고는 이 자는 사형당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하게 됐다는 어느 작가처럼 나도 그런 생각이 들 때까 종종 있다. 오판의 가능성과 견줘본다 해도 그렇고 교정, 교화의 기능과 비춰봐도 그렇다. 그런 마음이 다시 들었다.
"사건을 미리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큰 고통으로 남아있다", "범죄로 인한 고통의 역사는 되풀이되지 않아야 한다", "현장에서 느끼는 고독에 지쳐도 포기하지 않길 바란다"... 는 권일용 프로파일러의 후기는 다시 봐도 울림이 크다. 작가가 서두에 밝혔듯이 이 책은 연쇄살인범에 대한 게 아니라 프로파일러에 대한 책이었다는 걸 끝까지 읽고 나니 새삼 더 알겠다.
*신문기자 출신인 작가가 다른 신문기자와 통화한 내용을 언급하며 '나와의 통화'라고 썼을 때 꽤 흥미로웠다. 나를 숨겨야만 했던 기자와 작가의 차이가 거기서 드러났다고 하면 오버일까? 논픽션 라이터의 길을 성실히, 훌륭하게 걷고 있구나, 고나무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