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친구
"어머 귀여운 친구들. 저랑 잠깐 얘기 좀 할까요?"
누군가 말을 걸었다.
"우와! 사람이야! 인형이야? 인형이 말을 다 하네"
나는 감탄했다. 그리고 뭐에 홀린 듯 그 처음 본 예쁜 언니가 따라오라는 데로 쫄래쫄래 따라갔다.
수능이 끝난 직후 친구와 나는 대전 은행동 거리를 걷고 있었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고3 때까지 성실히 찌워온 살과 외모 콤플렉스, 열등감으로 똘똘 뭉쳐 인상이 험상궂었던 내게 연예인급으로 예쁜 언니가 말을 걸었다.
처음 보는 그 언니는 상냥하게 다가와 우리를 근처 골목 막다른 곳으로 데려갔다. 그곳엔 검은색 그랜져 차량이 세워져 있었다. 차 뒷문을 열며 우리 보고 뒷좌석에 앉으라 했다. 그 예쁜 언니도 뒷좌석에 우리와 나란히 앉았다.
차 운전석엔 조폭 같이 생긴 남자가 검은색 정장을 입고 앉아있었다.
그 예쁜 언니는 내게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깜짝 놀랐다.
내 사진인 줄 알았다.
통통하고 여드름이 난 우환 가득한 얼굴!
그런데 본인이란다. 나는 사진과 그 예쁜 언니를 번갈아보았다. 그리고 다짜고짜 물었다.
"어떻게 이렇게 이뻐졌어요?"
예쁜 언니는 기다렸다는 듯 유리병에 든 정체 모를 약 두 병을 조폭 같은 아저씨로부터 건네받았다.
"비결은 이거. 스쿠알렌 알죠? 이거 두병 먹었더니 이렇게 살도 쫙 빠지고 이뻐졌어!"
"이거 두 병만 먹으면 언니처럼 예뻐질 수 있어요?"
나는 희망에 차서 물었다.
"그럼! 당연하죠!"
그 예쁜 언니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확신에 차서 말했다.
이거 저 주세요! 저 살래요! 두병 주세요.
나는 숨도 안 쉬고 말했다.
그 언니는 두병에 54만 원이라고 했다. 나는 그 돈이 없었다. 그런데 24개월 할부도 된다고 했다.
이 언니처럼 예뻐질 수만 있다면 240개월 할부를 해야 한대도 기꺼이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갚아나갈 참이었다.
내가 말도 안 되는 유혹에 정신 못 차리고 홀려있을 때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친구가 이대로 뒀다가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불쑥 나섰다.
그러고는 버럭 나에게 화를 냈다.
너 미쳤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그리고 흥분하며 말을 이었다.
너만 예뻐질 거야?
언니! 저도 두병 주세요!
우리 둘은 나란히 인적사항과 집주소를 적고 24개월 할부로 진짜 스쿠알렌인지 알 수 없는 정체 모를 물건을 집어 들고 집으로 왔다.
얘는 내 친구가 확실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 친구로 만났다. 중학교 전교 학생회장 출신으로 똑똑하고 성격 좋고 리더십이 있는 친구였다. 지금도 여전히 지혜롭고 예쁘고 인간성이 훌륭한 친구다. 나의 웃음버튼. 눈물버튼.
나의 글 곳곳에 등장하는 친구라는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 친구 한 명이다.
나는 그래서 종종 친구에게 간곡히 당부한다.
"너 진짜 나보다 오래 살아야 해.
너 먼저 세상 뜨면 나 친구 한 명도 없어!
"대학교 졸업 후 나는 변변한 직장에 취업하지 못했다. 친언니 소개로 조그만 여행사에서 잠깐 일을 하게 되었다. 어느 날 친구가 전화했다.
"거기서 뭐 하고 앉아있냐! 나와라. 나랑 장사나 하자"
친구 말 한마디에 박차고 나왔다.
우리는 있는 돈 없는 돈을 박박 긁어모았다. 50만 원 남짓. 그 돈으로 리어카를 샀다.
그러고 우리 집 근처 대학교 정문 앞 노점에서 버거를 만들어 팔았다. 그 당시 고려대 앞 영철버거가 유행이었는데 우리는 어느 지방대 앞에서 빵빵 버거를 팔았다.
노점을 운영하려고 해도 전기가 필요하다. 다행히 근처 상가 오락실 사장님이 허락해 주셔서 그쪽에서 당겨다 쓸 수 있었다. 장사는 꽤 성공적이었다. 친구와 나의 콜라보로 근처 롯데리아가 타격을 입을 정도로 흥행했다. 대학교 수업이 끝날 때쯤 학생들을 비롯해 손님들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근처 관공서에서 단체주문도 들어왔다.
그러나 열흘쯤 지났을 무렵 우리는 장사를 할 수 없게 됐다.
영업에 타격을 받은 롯데리아에서 오락실 사장님께 전기를 빌려주는 것에 항의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더 이상 전기를 쓸 수 없었다.
노점운영은 10일로 끝이 났다.
우리는 10일 동안 300만 원 정도의 수익을 얻었다. 그리고 그 돈으로 근처에 보증금 200만 원에 월 30만 원짜리 두 평도 안 되는 자투리 가게를 얻어 장사를 이어갔다.
물론 친구도 나도 각자 집에는 절대 절대 비밀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룰루랄라~신나게 빵 속에 넣을 고기랑 야채를 볶고 있었다.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멈칫!
너 여기서 뭐 해?
젠장! 딱 걸렸다.
아빠다.
어우 어쩌지?
이거 뒤를 돌아봐? 아님
나도 손에 쥐고 있던 주걱을 내동댕이치고 뒷문으로 줄행랑을 쳐? 엄마가 날 낳으러 양푼을 내동댕이치고 뒷문으로 몰래 뛰쳐나갈 때처럼?!
친구와 들고 온 정체 모를 물건은 당시 22세 내 친언니가 부모님 모르게 해결했다. 소비자보호센터에 자문을 구하고 판매자 측으로 미성년자 대상 불법 방문판매에 대한 내용증명과 함께 물건을 보냈다. 조폭아저씨가 끼어 있어서 과정은 험난 했지만 내 언니는 나를 위해 험한 말을 들어가며 용기 있게 일을 마무리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