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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깡소주(독서실 9번 자리)

세상에 몇 명 안 되는 이상한 사람

by 쭈쓰빵빵

어느 날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나 지금 공인중개사 자격증 학원 설명회 왔는데 강사님이 그러시더라. 이 자격증을 학원도 안 다니고 인강도 안 듣고 독학으로 1차 2차 한 번에 합격하는 사람은 우리나라에서 몇 명 안 될 거라고! 그것도 2달 만에. 그게 내 친구라니. 대단하다 너"


"뭘~"


나는 대수롭지 않은 듯 전화를 끊었다.

"풉" 씁쓸한 웃음이 나온다.


20년도 넘은 이야기다.

한 번도 써보지 않은 자격증! 사실 나는 필요도 없다.


대학교 4학년

여름방학을 앞두고 여느 취준생과 같이 나도 취업 준비로 바빴다. 오직 마음만.

학점도 어학점수도 내세울 것이 없었고 대학 생활을 의미 있게 잘 보낸 것도 아니었다. 마음속에 알 수 없는 우환들로 나의 인생은 내내 시시했다. 그 시절 나는 "내 미래와 꿈을 위해 미친 듯이 영혼을 갈아 넣는다"가 아닌 "내 팔자는 왜 이모양이냐" 신세한탄을 하며 낭비한 시간들이 대부분이었다.


어느 날

아빠가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시겠다고 학원에 등록하셨다. 그리고 3일째 되던 날 아빠는 잔뜩 화가 나서 우리 삼 남매를 집합시켰다. 아빠는 책값, 수업료를 지불한 상태에서 공부가 어렵고 하기 싫어지신 거다. 게다가 같이 수업 듣던 젊은 청년에게 본인은 아버지가 하고 싶어 하셔서 자격증을 취득해 아버지와 함께 관련업을 운영할 거라는 얘기를 듣고 오신 거다.

그러고는 집에 와서 우리를 달달 볶았다.


아빠의 비난이 시작됐다.

"다른 집 자식들은 부모가 필요하다고 하면 척척 따주는데 우리 집 새끼들 중엔 왜 그런 놈이 없어!"

언니 나 남동생

우리 셋은 그 비난을 함께 들었다.

그런데 언니도 남동생도 타격감이 없다.

표정들이 그래도 괜찮다.


그런데 나만 좌불안석! 가시방석이다. 그냥 나를 홀로 안쳐놓고 나에게 하시는 말 같았다. 언니랑 남동생은 그저 자식 셋 똑같이 공평하게 대우한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나타내기 위한 구색일 뿐! 오직 나에게만 하는 말처럼 느껴졌다. 그 순간 나는 공포영화의 주인공이었다. 그렇게 느끼는 게 내 피해의식. 자격지심에 의한 거였겠지만 그 당시 나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제가 할게요"


나는 비난을 더 듣고 있기도 어려워 대답해 버렸다.

그제야 아빠의 역정은 끝이 났고

다음날 아빠는 5과목의 법 관련 수많은 책을 나에게 홀가분히 떠넘기셨다.


시험에 떨어지면 두고두고 몇 년이고 아빠의 욕받이가 될게 뻔하다.




시험은 해 9월 21일

2학기 개학이 9월 1일이니 시간은 여름방학 딱 2달!

오징어게임과도 같은 서바이벌이 시작되었다.

합격하지 못하면 나는 죽는다.

학원을 오가며 수업을 들을 시간이 없다. 난 동네 독서실로 갔다. 핸드폰도 정지했다. 그 당시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두 달 동안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나는 전쟁터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죽지 않고 살아남아야 했다.


법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었고 교양 수업으로도 법 관련 수업은 들어본 적도 없다.

막막해서 눈물이 난다. 하지만 울 시간도 없다.

밤 12시에서 새벽 6시

자는 시간을 제외하곤 하루 18시간 독서실에 있었다.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 아침에 김밥과 삶은 계란을 사가지고 가서 배고플 때 휴게실에서 허겁지겁 먹었다.

인생을 이렇게 한 가지에 미쳐서 살아본 적이 있었던가.

한 일 년 정도 이렇게 공부하면 사법고시도 합격할 듯 싶었다. 취업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

그러나 나는..

나의 미래를 위해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욕먹지 않기 위해.

뭔지도 모르는 공부를. 이해하지 못한 채. 공포에 질려. 부단히 애를 쓰며 붙들고 있었다.




하루하루가 간다. 초조하다. 시간이 다가온다.

책은 너덜너덜 해지고 이해가 가지 않는 건 그냥 무작정 외운다.

급기야 자면서도 라디오에서 법조문이 흘러나오는 환청에 빠지는 단계에 이르렀다. 시험도 보기 전에 미쳐서 정신병원에 들어갈 참이다. 그렇게 서서히 미쳐갈 때쯤 어느덧 시험 전날이 되었다.


멀리 갈 수도 없다. 독서실로 갔다.

내손엔 검정 봉지가 들려있고 그 안에 소주 한 병이 들었다. 독서실 구석 컴컴한 내 자리에 앉았다.

체념한 듯 소주 뚜껑을 깐다. 소주를 벌컥벌컥 들이켠다.

할 만큼 했다. 더는 못한다.

아빠가 죽으라면 그냥 죽어야겠다.

주르륵

눈물이 흐른다.




시험날

아침에 들어가 오후 늦게 가 돼서야 시험이 끝났다.

1차 2차를 하루에 봤다.

나는 안정권으로 합격했다.

5과목 중 한 과목은 만점을 받았다.


합격을 했을 때 아빠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리고 내 자격증을 쓰지 않았다.

나도 쓰지 않는다.


그것은 기억 저편

삶을 살고자 애쓰던 내 발악의 증표이다.

어떻게든 살아내려는 처절한 몸부림의 증거다.

그렇게 남았다.

그 시절 나에게

"욕봤다"

이제와 위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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