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날의 검
며칠 전 동네 카페에서 차 한잔을 시켜놓고 멍하니 있었다.
내 앞 테이블에 한 가족이 앉았다.
엄마 아빠 6살 4살쯤으로 보이는 형제
아빠가 음료를 주문했고 초코프라페 같은 음료가 두 잔 나왔다. 가족 4명이서 나누어 먹을 참인 듯했다.
큰 아이는 대수롭지 않은 듯 큰 빨대를 집어 들어 음료에 꽂아 마시기 시작했다.
그러나 작은 아이는 엄마에게 떼를 부렸다.
음료 하나에 빨대를 두 개 꽂아 형과 함께 먹기 싫으니 온전한 한 개를 본인 몫으로 달라는 것이었다. 요구사항을 들어주지 않은 부모님 앞에서 종이컵에 덜어줘도 좋으니 혼자 먹게 해달라고 졸라댔다.
그러나 결국 그 아이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나는 이 둘째 아이가 식탐이 많다던가 욕심 많은 아이로 보이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내 주관적인 해석이지만 한 번도 온전히 무언가를 가져보지 못한 자의 허기랄까?
내 눈엔 그리 보였다.
엄마도 아빠도 온전히 나만을 위한 내 부모로 존재한 적이 한순간도 없었던 둘째. 온전한 내 것에 대한 갈망.
나는 그렇게 느꼈다.
나도 그렇다.
내가 태어났을 때 이미 내 엄마 아빠는 언니의 엄마 아빠였다.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죽는 그날까지 온전히 내 부모님으로만 존재하는 순간은 오지 않는다.
물론 첫째도 나름 어려움이 있을게다. 부모님을 자신만을 위한 부모로 잠깐이나마 온전히 가질 수 있었을지언정 동생에게 뺏기는 아픔.
원래 줬다 뺏기면 더 환장할 노릇일 터.
둘째인 나는 뭔가 특유의 허기가 있다.
부모는 온전히 내편이 되어 안정적인 세계관을 형성해야 할 시기 만족할 만큼 부모님에 대한 애착도 사랑도 받지 못했다고 느끼는 난.
내 사람에 대한, 돈에 대한, 음식에 대한 갈망이 있다. 충분하지 않다고 느끼니 무언가 자꾸 더 빼앗고 채우고 싶은 생각이 드나 보다.
생후 6개월에서 만 3세 이전에 철분을 충분히 공급해 줘야 청소년기에 들어서도 철분 결핍 증상 없이 성장할 수 있다. 골든 타임인 것이다. 그 시기 이후엔 결핍을 막기 위해 막대한 노력을 들인다 해도 쉽지 않다.
온전한 인간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사랑에도 골든타임이 있는 것 같다. 어린 시절 부모가 세상 전부였던 시절에 받는 생존 사랑.
그때 받은 사랑의 힘은 남은 여생 모진풍파 속에서도 살아낼 수 있는 저력이 된다.
나는 엄마 아빠가 나를 밀쳐내더라도 떼를 부리든 애원을 하든 어떻게 해서라도 욕구를 해소하고 관심을 받고 자랐어야 했다.
그러나 자의든 타의 든 난 욕구를 충분히 해소하지 못했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나의 노력으로라도 사랑을 받았다고 스스로 최면도 걸어 보지만 난 늘 허기가 진다. 아직도 배가 고프다.
두 살 터울의 내 언니는 어렸을 적 엄마대신 나를 키웠다.
엄마는 세 살배기 귀한 남동생(날 낳고 아빠는 속상해서 열흘 동안 술만 드셨지만 남동생을 낳고는 기뻐서 그곳에서 출산한 아빠들 모두에게 술을 샀다고 했다)을 돌봐야 했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오전 수업만 하고 하교하는 내가 버거우셨던 엄마는 초등학교 3학년 언니에게 점심도시락 2개를 싸서 보냈다. 엄마의 사정을 알고 계신 그 당시 언니 담임 선생님의 제안이었다.
언니 3학년 교실 뒷 문을 열면 빈 책상이 있었다.
그 자리는 내 자리였다.
나는 학교가 끝나면 수업 중인 언니 교실에 조용히 들어가 앉았다. 그리고 언니와 언니 친구들과 점심 도시락을 먹고 언니 하교시간에 함께 학교를 빠져나왔다.
늘 어딜 가더라도 동생을 달고 다녀야 하는 초등 3학년 어린 언니도 참 피곤했을 것 같다.
언니는 나를 잘 챙겼다.
일요일. 우리는 동네 대중목욕탕을 다녀온 뒤 목욕탕 뒤 시장 순댓집에 들러 순대를 사 먹곤 했다. 언니는 늘 먼저 내 입에 순대를 넣어줬다. 그리고 내가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나는 엄마 대신 언니 사랑을 받고 근근이 성장했다.
엄마 대신 언니에게 애착 형성이 된 나는 언니 없인 못 사는 사람이었지만 언니와 함께 있는 것이 또 가장 무서운 사람이기도 했다.
자존감도 자신감도 바닥인 불안정하고 두려운 아이
언니 옆에 꼭 붙어 다녔던 난! 늘 비교당했다.
형만 한 아우 없다는 말
그 말은 나를 위해 존재했다.
언니는 나보다 키가 크다.
그리고 나 보다 예쁘다.
휴~ 아무리 노력해도 이건 인정이 안돼!
아직 인간이 덜 되었는지 죽어도 인정하기 싫다.
그냥 예전에 나보다 예뻤던 걸로 하자.
나보다 지혜롭고 성격도 좋고 노래도 잘한다.
어쨌든 외모든 뭐든 사소한 것까지 언니와 나를 두고 사람들은 왈가왈부했다.
그 속에서 언니에 대한 절실함과 함께 나의 열등감도 상처도 함께 커져갔다.
나에게 너무 소중한 언니
그렇지만 나는 언니가 싫다.
나는 언니가 밉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