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속에서 우는 법을 모르는 아이
내가 어릴 적 부모님은 바쁘셨다.
아빠는 양복점 일로 바쁘셨고 엄마는 아빠 일을 거들며 언니와 나를 키우고 살림까지 하시느라 더 바빴다.
그 시절 우리 엄마에게 효자템이 있었으니
그것은 고무다라이었다.
한여름
그곳에 발목에 찰방찰방할 정도의 물을 조금 담아 언니랑 나를 넣어놓고 일을 하셨다고 했다.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언니도 엄마 등에 업힐 나이였으니 나는 더 아기였을 듯하다.
어느 날
언니와 내가 고무다라이에 들어있을 때
언니는 뭐가 불편했는지 울음을 터뜨렸고 할 수 없이
엄마는 언니를 등에 업고 일을 하셨다고 했다.
시간이 한 참이 지나고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갈 때쯤
어린 내가 안 보인다는 걸 그제야 아셨나 보다.
깜짝 놀라 다급해지신 부모님은
낮에 있게 했던 고무다라이에 급히 가보셨고
세상에
내가 울지도 않고 그 자리 그 자세 그대로
낮에 엄마가 안쳐놓은 자세를 고쳐 앉지도 않은 채
있었다고 했다.
배가 고프고. 자세도 힘들었을 텐데...
나는 울지 않았다고 했다.
인간의 본능인가 보다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 것은
나는 그 후로 줄곳 손이 가지 않는 착한 딸이었다.
성장하는 동안 한동안은 그랬다.
순둥이!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 없는
그러나 나 조차도 몰랐다
이미 내 안에서는 용암이 끓고 있었다는 것을!
내가 1억 4천만 원이 넘는 돈을 10분 만에 잃고
괴로워하고 절망하고 있는 그날!
친구가 찾아왔다. 고등학교 친구로 베프이다.
뭐든 나보다 한 수 위인 친구
능력도 지혜로움도 선함도 나보다 한 수위
돌아이 기질도 양아치 기질도 나보다 한 수위
낮에 무릎 꿇고 울부짖느라 나는 탈진 상태였다.
기력도 없고 의욕도 없고 밥을 먹을 정신도 없이
혼이 나가 있는 상태. 그 누구도 반갑지 않았다.
그런데 친구가 일단 밥부터 먹자며 우리 집 근처
순댓국밥집으로 날 질질 끌고 갔다.
나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아 말없이 그냥 있었다.
곧 국밥 한 그릇이 내 앞에 놓였다.
물 한 모금 입에 못 댈 것처럼
세상 무너진 표정을 짓고 있던 나는
어렵게 숟가락을 들었다.
그러고 말없이 국물 한 모금을 입에 넣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몰려온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어쩌다 나는 이렇게 됐을까.
눈물이 난다. 목이 멘다.
그러나 나의 숟가락질은 조금씩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심한 듯 난 큰소리로 외쳤다.
"저기요. 여기 깍두기랑 청양고추 좀 더 주세요"
친구는 이런 날 보고 조용히 말했다.
"너 처먹는 거 보니까 아직 살만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난 엄마를 참 많이 닮았구나!
날 낳고 서러움에 복받쳐 눈물 섞인 미역국을
한그릇 뚝딱한 엄마
그렇게 지옥 같은 하루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