쉿! 교회에 몰래 나가 은혜받은 보살
이 글을 쓸까 말까 고민이 된다.
그런데 그냥 쓴다.
나는 남김없이 솔직한 사람이고 싶다.
코인 투자 실패로 너무 괴로워서 아침에 눈을 뜨는 것조차 겁났다.
또 눈을 떴다는 사실이 공포스럽던
7월 어느 토요일 아침!
유튜브로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들었다.
주식 코인으로 전재산을 날린 사람 편을 모아 놓은 영상이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니 정말 위로가 된다.
나는 법륜스님의 말씀 덕분에 힘든 마음을 잠재우고 용기 내어 침대 밖으로 기어 나와 그날의 일정을 겨우 소화했다.
그날 저녁.
잠들기가 힘들어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또 틀어 놓았다.
이제는 스님 목소리만 들어도 마음이 진정이 된다.
그런데 피곤함이 느껴지고 가래가 끓는 스님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이렇게 힘든 세상을 스님 말씀에 의지해 겨우 버티고 있는데 스님이 돌아가시기라도 하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너무 슬퍼서 눈물이 났다.
그렇게 슬픔에 잠겨 흐느끼다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나는 일찍 일어나 교회에 갔다.
내가 교회에 간 사실은 비밀이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대체적으로 주일에 교회에 빠지지 않는다. 그리고 금주를 한다.
혹여 술을 마신다면 티가 나지 않게 살짝 마실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나는 술을 좋아하고 잘 마신다.
대놓고 마신다. 그리고 교회를 몰래 나가고 있다.
주일을 지키지 않는 날도 꽤 있다.
내가 교회에 처음 발을 들이게 된 건 전 편(선행의 추억)에 있듯이 기도로 약속한 바가 있기 때문이었다.
사실 적응을 잘 못해서 그 당시에는 오래 다니지 못했다.
한 동안 모든 것을 잊고 방탕하게 살았다.
결혼 후 지금까지 내 친언니와 나는 서로 가까운 곳에 살고 있다. 언니는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 다녔다. 노래를 잘하는 언니는 찬양팀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독박육아가 힘들었던 난.
점심밥을 준다고 해서 언니가 다니는 교회에 갔다. 애들하고 셋이 가서 점심을 해결하고 오는 것이 좋았다.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신앙심도 없이 성경에 대한 지식도 전무한 상태로 교회에 나가던 어느 날.
인카운터라는 프로그램을 친언니와 함께 참여하게 되었다.
프로그램은
토요일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단 하루.
하루 종일 어린 내 아이들을 지인에게 맡겨 놓고 나와있는 것에 맘이 편치 않았다.
그리고 종일 말씀을 듣고 찬양을 하면서 특별히 은혜가 된다는 느낌도 받지 못했다.
프로그램이 끝나갈 무렵인 저녁 7시쯤.
핸드폰을 확인하니 아이들을 맡겨 논 지인으로부터 부재중 전화가 와있었다.
쉬는 시간에 밖에 나가 전화를 했다.
엄마가 보고 싶다고 수화기 너머로 딸이 엉엉 운다.
이제 곧 끝나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딸을 진정시킨 뒤 다시 프로그램 장소로 돌아갔다.
그런데 나는 그곳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듣지 말아야 할 말을 듣고 말았다.
내가 그 공간에 있는 줄 모르고 사람들이 내 친언니를 둘러싸고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어머! 두 분이 자매인 줄 몰랐어요!
그쪽 분이 동생인 거죠?"
사람들은 나보다 어려 보이는 언니가
내 동생인 줄 알고 있었던 거다.
언니가 자신이 언니라고 말하자 사람들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언니를 향해 "너무 동안이세요. 진짜 동생 분인 줄 알았어요"라는 말들을 쏟아냈다.
사람들은 내가 없는 줄 알고 한 얘기였겠지만
나는 그 자리에 있었다.
다 들었다.
생생하게 다 들렸다.
언니는 어쩔 줄을 몰라했다.
내가 평생을 자신과의 비교로 인해 상처가 많은 사람이란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언니가 더 어려 보인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어왔던 난. 언니보다 동생처럼 보이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며
매일을. 매 순간을.
미친 듯이 운동하고 노력하며 살고 있었다.
나는 너무 쪽팔렸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난감했다.
나를 보고 어쩔 줄 몰라하는 언니 표정이 더 가관이다.
화가 난다.
내가 이런 프로그램은 왜 참여를 해 가지고.
하필 또 언니랑은 왜 같이 해 가지고.
이런 비교하는 말을 듣고 괴로워하고 있는지.
정작 내 딸은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울고 있는데.
나는 결혼을 했고 엄마가 되었고 시간도 많이 흘렀다. 언니와의 비교에서
언니로부터 오는 열등감에서 벗어난 줄 알았다.
나는 내 노력으로 극복한 줄 알고 있었다.
이제는 괜찮아진 줄 알았다.
그런데 나는 전혀 괜찮지가 않았다.
더 있을 수가 없다.
당장 짐을 싸서 뛰쳐나가야겠다.
다 때려치우고 소주나 진탕 퍼 마셔야지!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가려는 순간.
이런!!!
프로그램 마지막 순서가 시작되었다.
진행자가 마지막으로
두 손을 들고 주여! 외치며 기도를 하라고 했다.
나는 집어 들었던 보따리를 슬쩍 내려놓고
얼떨결에 손을 들었다.
그리고 나는 오열했다.
주님을 향한 신실함에서 오는 눈물이 아니다.
내가 손을 높이 들은 건 '찬양의 의미'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 삶에 대한 '처절한 항복'의 의미었다.
나는 두 손을 높이 들고 그 자리에서 항복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했다.
"주님! 저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요.
아무리 노력하고 발버둥을 쳐봐도 제 힘으로는 평생을 이 상처에서, 이 열등감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요.
이젠 지쳤어요. 더는 못해요.
저는 항복합니다. 이제 마음대로 하세요."
나는 무너졌고 포기했다.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눈을 감고 있었음에도 내게 한 줄기 빛이 보였다.
알 수 없는 힘이 나의 온몸을 감쌌고 나를 치유하는 기운이 느껴졌다.
갑자기 혀가 날아다니더니 방언이 터졌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매우 놀랐다.
내가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어 추한 모습으로 방언(말로만 듣던)이라는 걸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피나는 노력으로 어떻게든 열등한 나를 우월한 나로 만들어 이겨보려 했다.
상처를 극복하고 살아보려 했다.
하지만 불가능했고 나는 지쳤다.
긴장한 몸에도 상처받은 마음에도 힘이 풀렸다.
그때 알 수 없는 힘이 나를 감쌌고 나의 마음을 어루만졌고 내게 평온이 찾아왔다.
나는 하늘을 날 것 같았다.
그날 은혜를 받은 사람은
그날 선택을 받은 사람은
내 언니가 아니라 바로 나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언니를 이긴 것 같았다.
그날 이후로 그런 일을 다시 경험하지는 못했다.
다만. 그날의 일은 내게 은밀한 사생활을 남겼다.
예전부터 노자의 도덕경과 같은 경전을 좋아했다. 자신을 돌아보고 자아성찰을 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나는 인생에서 두 번의 은혜받은 기억으로 성경을 읽고 예배도 드리게 됐다.
요즘 나는.
집 앞 교회에 몰래 나가 홀로 예배를 드리고 때론 법륜 스님의 말씀을 듣고 '아멘'을 외치기도 하는 이상하고도 은밀한 사생활을 갖게 되었다.
내가 이 비밀을 고백하는 이유는
단지
이 말이 하고 싶어서다.
내가 가장 강해지는 순간은
내게서 힘을 빼고 근원의 힘에게
모든 것을 내 맡길 때라는 것을.
내가 내 힘으로 할 수 없다고 시인하고
자아를 내려놓고 항복할 때
내 안의 신성이 나를 만나 준다는 것을.
나는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