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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의 실패를 통해 얻은 깊은 깨달음

역시 인간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

by 쭈쓰빵빵

무릇 인간이란


나이가 들면서 성숙하고 성장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순간까지 변화하고 성장하는 삶을 살다 가야 한다고 믿었다.

음식에 비유하자면 시간이 지나 썩고 상하는 음식이 아니라 숙성되고 발효되는 귀한 음식.

나는 나이가 들어도 발효되는 귀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늙어가기를 계획했다.


이런 내게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사람 그렇게 쉽게 안 변한다.

그냥 생긴 대로 살다 가는 거다"


나는 그 말을 들었을 때

내게 말한 그 사람이 시시해 보였다.


사람이 믿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그 사람 인생은 성장 없이 나이가 들수록 시들시들 도태되어 시시한 삶을 살다 가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요즘 나는 내게 그 말을 했던 사람이

진정한 현자가 아닐까? 이마를 탁 치게 되었다.


왜냐하면 나는 나를 통해 인간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절실히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주식, 코인으로 두 번 실패를 했고 세 번의 실패는 더 이상 없다.라고 다짐했다.

그리고 다시는 주식, 코인은 쳐다도 안 볼 줄 알았다.

내 인생에서 다시는 없을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요즘 주식, 코인판을 다시 슬슬 기웃대고 있다.

나는 여전히 주식, 코인 동향을 살피고 매수 기회를 노리고 있다.

이 욕망의 싹을 한 번에 송두리째 뽑아내는 건 어렵다.

사람이 하루아침에 개과천선 되어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는 두 번의 실패를 겪고 이제야 깊은 진리를 깨닫고 있다.


"그래 역시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아"


다만 이 일을 겪고 알게 된 것 한 가지는 있다.

순전히 결핍감과 회피와 두려움에 기인한 무리한 투자.

이러한 마음가짐에서 비롯한 투자에서 큰돈을 벌 수는 없다는 것이다.


혹여나 어쩌다 우연히 큰돈을 벌어 들인다 해도

내 결핍은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내가 회피하고 싶은 일을 잠깐은 피할 수 있을지언정 결코 영원히 피할 수는 없다는 것을.

나는 그곳에서도 여전히 두려울 거란 것을.


나는 이제 확실히 알겠다.




내가 돈을 엄청 많이 벌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을 떠올려 봤다.

일단 엄마 아빠 용돈을 매월 정기적으로 많이 드린다.

내 아들, 딸을 비싸고 좋은 학원에 보낸다.

내가 만나는 아이들에게 용돈을 많이 준다.

가끔 조카나 지인 아이들한테 용돈 줄 기회가 있을 때 줄까 말까 망설이거나 준다면 5만 원을 줄까, 3만 원을 줄까 고민한 적이 좀 있었는데 나는 망설임 없이 용돈을 팍팍 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또 식당에서 밝은 태도로 열심히 일하는 젊은

아르바이트생들에게도 기분 좋게 팁을 주고 싶다.

나는 그들이 참 기특해 보인다.


이게 내가 투자로 대박을 터트리면 맘껏 하고 싶었던 일이다.

돈을 많이 벌면 위에 일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즐겁게 하고 싶었다.

그런데 사실 이렇게 나열하고 보니 꼭 돈을 많이 번 후가 아니더라도 지금도 충분히 하고 있거나 마음만 먹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무리 없이 할 수 있는 일들이다.


나는 돈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마음이 궁핍했던 것이었다. 돈을 내지 못한 것이 아니라 마음을 내지 못한 거였다.


나는 큰돈을 손해 본 며칠 뒤 현금 50만 원을 찾았다.

평소 지갑에 현금을 잘 넣고 다니지 않았지만

지금은 여유롭게 이 돈을 갖고 다닌다.

망설임 없이 고민 없이 누군가에게 용돈을 주고 서비스에 대한 팁으로 쓸 돈이다.


큰돈을 투자했던 지날 날에도 쫄딱 망한 지금 이 순간도 큰돈을 벌게 될 미래의 내 삶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과거의 나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나는 돈이 아니라 마음을 내어 쓰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요즘 돈을 쓸 때 너무 놀랍다. 나는 쫄딱 망했음에도

조카에게 또 친구 아들에게 망설임 없이 줄 용돈이 있다는 게

서비스에 대한 감사함으로 기분 좋게 내어줄 팁이 있다는 게 신기하다.


정작 투자하는 돈이 많았을 땐 잘 하지 못했던 일이다.

이런 내 태도는 '나 진짜 돈이 많은가?'라는 착각을 일으킨다. 스스로를 실패는 겪고도 끄떡없는 강인한 사람처럼 느끼게 한다. 영 틀린 말은 아니다.


그래 맞다! 나는 기분 좋게 돈을 쓸 줄 아는 부자다.




지금까지 살면서 내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였는지 생각해 봤다.


인기남에게 고백을 받았을 때, 프러포즈를 받은 날, 결혼식을 한 날, 높은 경쟁률을 뚫고 아파트에 처음 당첨된 날, 사랑하는 나의 아들, 딸을 출산한 날,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날. 이런 날들이 아니었다.


나는 이런 순간에도 뭔가 모르게 기쁨과 같은 크기로 불안함도 함께 느꼈다.


내가 진짜 '아! 너무 행복해. 정말 이대로 죽어도 좋다.'라고 느꼈던 순간이 있다.

어떠한 불안함도 동반되지 않았던 마냥 좋았던 순간.

정말 그때의 감정이 너무 산뜻하고 행복하고 기뻤기에

나는 그날을. 그날의 감정을. 그날의 느낌을.

정확하게 기억한다.


여느 평범한 금요일 밤.


나는 퇴근 후 혼밥을 거하게 또 배부르게 먹고 개운하게 샤워를 했다. 그리고 침대 속으로 쏙 들어갔다.

내일은 토요일. 약속이 없다.

나는 배도 부르고 노곤하다.

그대로 스르르 잠이 들어도 되고 TV를 실컷 보다가 늦게 잠들어도 되고 내일까지 늦잠을 자도 된다.


그 생각을 하고 침대 속에 쏙 들어가 TV리모컨을 켠 순간. 정말 너무 행복해서 이보다 더 행복한 삶은 없을 것 같다고 느꼈다. 나는 그 감정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정작 내가 최고로 꼽는 행복한 순간은 이미 내 삶 속에 있는데 나는 멀리 돌고 돌아 행복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또 앞으로 내가 가장 행복할 것 같은 순간이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상상을 해본다.


고급 외제차를 타고 좋은 옷을 입고 5성급 호텔에서 저녁식사를 하는 모습이 아니다.

그 장면 속의 나를 상상해 보니 왠지 조금 외로울 것 같다.


내가 그보다 행복할 것 같은 장면은 이거다.


내 집에 숟가락이 몇 개 있는지 알고 있는 가족 같은 이웃들이 내 옆에 있다.

나는 그들과 함께 커다란 양푼에 남은 반찬 이것저것을 넣고 고추장 한 숟가락에 참기름을 두 바퀴 휘휘 두르고 쓱쓱 비빈다.

양푼에 코를 박고 함께 숟가락을 담그고 게걸스럽게 경쟁하며 퍼 먹는다.


나는 그럼 행복할 것 같다. 그 순간만큼은 부족함 없이 두려움 없이 온전히 행복하다고 느낄 것 같다.

그것이 내가 꿈꾸는 성공한 삶이고 마음이 충만한 삶이다.




그럼에도 나는 변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투자를 하고 부자를 꿈꾸고 그러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더 이상 돈은

내가 갖지 못하는 것.

나는 얻을 자격이 없는 것이 아니다.

내가 집요하게 집착할 수 있는 대상은 더더욱 아니다.


돈은 고맙고 친절하고 편리한 것이다.

돈은 나를 기쁘게 하고 남을 기쁘게 하는 좋은 것이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돈을 진정 사랑한 적이 없었기에 나는 이제라도 돈을 순수하게 사랑해보려 한다.

돈도 이런 내가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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