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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내가 흘린 눈물은 날 배신하지 않는다.

by 쭈쓰빵빵

"인생은 폭풍우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빗 속에서도 춤추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내가 좋아했던 인생 명언이기도 하고 방영했던 드라마 속 주인공의 대사기도 하다.


삶이 두려웠던 20대. 30대.

나도 언젠가는 두려움 없이 기꺼이 빗 속에서 웃으며 춤출 수 있는 날이 올 거라 믿었다.


그러나

40대인 나는 여전히 삶이 두렵다.

나는 여전히 빗 속에서 춤을 출 수가 없다.


다만. 더 이상 폭풍우를 피해 숨어있지 않을 뿐이다.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지도 않는다.


폭풍이 두려워

내가 발걸음을 돌려 먼 길로 돌아갔을 때

눈앞의 장애물을 피해 도망쳤을 때

돌아간 그 길에. 도망친 그곳엔

내가 쉴 곳은 없었다.

늘 넘어야 할 산이 더 크게 존재했다.


내가 흘린 땀이 아니었다

내가 흘린 눈물이 나를 더 배신하지 않았다.


인간관계에서 갈등으로 힘들었을 때

직장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고 괴로웠을 때

큰돈을 잃고 제정신이 아니었을 때에도


나는 더 이상 피할 곳이 없어 버텼다.

울면서 버텼다.

때론 그 자리에 서서 울었고

미치도록 힘들 땐 네 발로 기면서 울었다.

두루마리 휴지 한 통을 쓰며 울었다.

그렇게 버텼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폭풍은 잔잔해지고

나는 결국 그 자리에 서서 웃었다.


나는 내가 흘린 눈물을 믿는다.


그래서 도망칠 수가 없다.

다만 빗 속을 울면서라도 걸어갈 뿐이다.


비바람이 몰아치면 그 자리에 주저앉으면 된다.

나의 몸을 낮추고 때론 네 발로 기면서 울면 된다.

그렇게 버티면 된다.


그러다 보면 내 머리 위로 폭풍이 지나가고

어느새 고요히 해가 비추는 날이 올 거란 걸 이제는 안다.

그래서 울면서도 나는 그 자리를 지킬 수 있다.


정공법

가장 빠르고 확실한 길


그 길을

아직도 난 춤추면서는 못 간다.

하지만 이젠 울면서라도 간다.

그것이 나의 내공이다.

슬프면 운다.

마음이 괴로우면 실컷 온몸으로 괴로워한다.

어쨌든 그 자리에서 버티는 법을 안다.

몸을 낮출 수 있는 두 무릎과 두루마리 휴지 한통이면 충분하다.


버티고 버티다

비바람이 멈추고 해가 뜨는

그때 세상 제일 기쁘게 웃어보리니.


그렇게 한 손에 휴지 한 줌을 쥐고

오늘도 난 비바람 속을 홀로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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