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나는 나를 믿어보기로 했다.
나는 뼛속까지 한국사람인데 가끔 한국말이지만 이해가 안 되는 말들이 있다.
뜻을 이해하려 국어사전을 찾아봐도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중 한 가지가 이 말이다.
"자신을 믿어라"
나는 정말 이 말이 이해가 안 간다.
살면서 몇 번이고 이 말 뜻을 이해하려고 노력해 봤지만 아직도 이 문장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또다시 네이버 검색창에 입력해 본다.
"자신을 믿어라"
AI는
"자신을 믿는다는 것은 자신의 능력과 가치를 확신하고,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도전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을 키우는 것을 의미합니다"라고 브리핑을 한다.
또 이런 명언이 있다.
"자신을 믿어라. 자신의 능력을 신뢰하라."
하지만 나는 여전히 이 말이 이해가 안 간다.
아니 어쩌면 이 말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동의할 수 없는 쪽에 더 가까울 수도 있겠다.
나는 정작
스스로의 능력과 가치를 인정한다고 해서 또 내면의 힘을 키운다고 해서 불확실한 상황에 도전할 수 있을까?
나는 어렵다.
능력을 키우는 것 만으로는 나 자신을 완전히 믿을 수 없다.
그럼 나는 어떤 마음가짐일 때 "나는 나를 믿는다."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까? 또 스스로를 믿고 불확실한 상황으로 내던질 수 있을까?
내가 생각하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은 능력과 가치로 온전히 채워질 수 없다. 그것 못지않게 자신에 대한 사랑 그리고 자기 연민이 절실하다.
내 머릿속에 암행어사가 살고 있다.
이놈의 암행어사는 시도 때도 없이 출두한다.
암행어사가 하는 일은 단 한 가지!
나를 탈탈 터는 일이다.
내 온몸과 마음을 탈탈 털어 먼지 한 톨이라도 찾아내 벌하기 위해 24시간 풀가동이다.
벌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내가 선택의 기로에서 최상의 것을 선택하지 못했을 때, 스스로 기대한 만큼 잘 해내지 못했다고 느낄 때,
특정 상황에서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했을 때,
또 안 해도 될 말을 했을 때, 비효율적인 행동을 했을 때, 시간 낭비한다고 느낄 때 등등.
귀신같이 나타나 나를 책망하고 벌한다.
나를 비난하고 고통스럽게 한다.
어떤 일을 하기에 앞서 암행어사가 두려워 나의 행동은 조심스럽고 소심해진다.
이 암행어사로부터 나를 온전히 지킬 수 없는 한
나는 나를 믿을 수 없다.
그는 내가 두 가지 선택지 중 더 나은 선택을 한다고 해도 다른 차선에 대한 아쉬움을 이유로 나를 괴롭힌다.
그래서 나는 어떤 것도 선택하기가 주저스럽다.
사소하게는 카페에서 메뉴 선정부터 일생일대의 중대한 결정에 이르기까지 무언가를 명쾌하게 선택하기가 꺼려진다.
정확히 "결정장애"
나는 가끔 농담 삼아 지인들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난 내일 점심 약속 장소가 중국집이면 오늘 밤에 잠 한숨도 못 자! 짜장? 아님 짬뽕? 뭘 먹어야 할지 고민하느라.
나를 믿지 못하니 이런 사소한 것조차 결정하기 어려운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혹여 최악을 선택한다 하여도 선택한 자신을 용서하고 받아들이고 사랑으로 감싸며 충분히 괜찮다고
A/S를 해줄 수 있다면 나는 선택의 기로에서 조금 덜 주저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자신을 좀 더 신뢰할 수 있지 않을까?
어릴 적 이런 기억이 있다.
친구에게
'나는 널 믿어. 나 눈감고 뒤로 넘어갈 테니까 머리 쿵! 바닥에 안 찌게 나 잘 바쳐줘'
하며 눈을 질끈 감고 두렵지만 뒤로 몸을 폭 맡겼던 기억.
포근히 날 받아줬던 두 팔과 그 안도감!
위기의 순간에 나를 바쳐줄 누군가가 있다는 믿음.
어떠한 순간에도 나를 내팽개치지 않는다는 깊은 신뢰.
나는 스스로에 대한 이런 믿음이 절실하다.
능력을 키워냄으로써 얻어지는 믿음이 아니다.
자신에 대한 사랑과 용서, 자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믿음이다.
어떤 목표를 앞에 두고
"너 자신을 믿어"
라고 누군가 이야기를 할 때
'내 능력을 믿어라'는 뜻으로 해석하면
나는 나를 믿고 그 일을 도저히 해낼 수 없다.
대신
최선을 다했으니 괜찮아. 어떠한 결과가 온다 해도 나는 나를 미워하거나 괴롭히지 않을 거야.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네 편이다.
이렇게 해석하는 편이 나는 그 일을 더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실력이 아닌 내 어떤 모습도 온전히 받아들여질 거라는 믿음.
자신에 대한 사랑을 의심하지 않을 때라야
비로소 나는 나를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암행어사의 정죄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힘.
내가 혹여 도전하는 일에 실패를 한다 해도, 오해를 받아 또는 일이 잘못되어 누군가에게 비난을 받는다 해도
나 자신만큼은 나를 비난하지 않고 이해해 줄 거라는 믿음!
그렇다면 기꺼이 미지에 세계에 호기롭게 나를 내던질 수 있겠다.
자신을 믿는다는 것에는 변함없는 자기 연민과 사랑이 필수요소다.
그래서 나는 지금부터라도 나를 조금씩 믿어보기로 했다.
"나는 나를 믿는다"는
말 뜻을 아주 조금 이해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