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받이 무녀

그 업을 그만 내려놓으려 한다.

by 쭈쓰빵빵

올해 중 3이 된 딸은 이것저것 질문이 많다.

사춘기가 거의 끝나가는지 몇 년 간 떠나 있던 시선이 조금씩 나에게도 머문다.


모처럼 봄 햇살이 따듯한 어느 날.

하지만 내 마음은 따듯하지 못했던 어느 날.


딸이 물었다.


"엄마! 어떤 남자를 만나야 할까?"


돌아보고 싶지 않은 흑역사!

나의 과거를 몰래 들춰본다.


나는 어떤 남자에게 마음을 주었을까?

봄날 같던 그 시절에 나는 누구를 만났을까?


나는 어떤 사람들을 곁에 두고 인연을 이어가는지 잠시 생각해 본다.


남자든 여자든 내가 사람을 만나는 데 있어

분명히 있긴 있다.


"비밀번호 486"

내 마음의 빗장을 여는 시크릿!

그 공식!


딸에게 말했다.


"엄마는 살면서 누가 됐든 내가 갖고 있지 않은 걸 갖고 있는 사람들한테 호감도 호기심도 애정도 생기더라.

완벽하진 않겠지만 내가 노력해서 어느 정도 이뤘고 극복했다고 생각했던 거에 대해서는 크게 호기심이 안 생겨."


"예를 들면?"


"음! 외모, 학벌이나 돈, 좋은 직업이나 뭐,, 이런 건 피나는 노력이라면 어느 정도의 수준으로 갈 수 있다고 느껴졌나 봐.

그럼에도 아무리 노력해도 도저히 나는 이번 생엔 안 되는 건가?

나는 도달할 수 없는 건가?

정령 다시 태어나야 하나? 했던 거 있잖아.

예를 들면

별 볼일 없어 보이는데 아니 이 화상은 대체 뭐지? 싶게 내세울 것 없는데도 자신감이 있고 밝은 사람, 좌절의 순간에도 자책하지 않고 일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주관이 뚜렷하고 도덕적인 사람.

생각이 단순하고 고집이 아닌 신념이 있는 사람.


키가 크고 훤칠하고 명문대 나오고 좋은 직장에 다녀도 표정이 어둡고 부정적인 성격인 사람보단 상황이 좋지 않고 힘든 순간에도

진취적이면서도 바보같이

웃을 수 있는 사람이 더 멋져 보이더라.


아! 또 있다!


슬픔도 좌절도 수치심도 피하지 않고 온전히 느끼는 사람.

그래서 상대방의 아픔도 두려워하지 않고 품어줄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

나는 총칼을 들고 전쟁터에 나가 적군을 물리치지 않아도 내 눈엔 이런 사람들이 갑옷을 입은 장군처럼 더 용기 있고 멋있어 보인다.


물론 외모도 성격도 다 훌륭한 사람이라면 더없이 좋았겠지!

근데 나도 양심도 있고 다행히 주제 파악은 또 하지!

내가 워낙 자존감도 낮고 불안정한 상태라 기회가 온다 해도 그런 사람들은 내가 만날 엄두도 못 냈을 것 같아.


암튼 난! 닥치고 성격!


나는 이런 사람들이 좋았어!

아니 동경하고 존경해. 지금도 여전히.

생존 본능인가? 그냥 그런 사람들한테 마음이 가"


딸이 말했다.

"딱 아빠네."


틀린 말이 아니다.

그 당시 168cm 고도 비만에 사업이 망한 상황에서 나를 주야장천 꼬시는 남편이 나는 신기했고 부러웠다.




내가 동경하는 온갖 좋은 것들은 내가 아닌 내 주변 사람들에게만 있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그들을 존경하고 칭찬하다 보니 내 곁에서 원래도 괜찮은 사람들이지만 더 잘 된다.


나의 부러움, 칭송을 받고 좋은 면들이 더욱 강화된 듯하다.

이렇게까지 괜찮은 사람이었나 싶게 나날이 성장하고 발전한다.


이건 너무 좋은 일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정작 나는 액받이 무녀 신세가 되고 있다.


그들 곁에서 나는 부족한 사람.

나는 부정적인 사람.

그들에게 이런 안 좋은 영향이 가면 안 되는데 하면서 온갖 부정적인 속성은 오직 내 것이라고 규정하고 나를 단속하고 미워한다.


인간 중 한 사람도 빠짐없이 누구에게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은 다 있는 속성인데.


나에게도 좋은 면들이 분명 있을 텐데..

좋은 사람들 곁에 있는 나도 분명 괜찮은 사람일 텐데..


내게도 있을

그 비밀번호 486과 같은 공식을 찾지 못하고


나는 오늘도 남편을 동경하고 내 아이들을 부러워한다.


나 자신을 한심해한다.




내가 그토록 밖에서 찾아 헤매고 동경하는 그 모든 것을


이제는 내 안에서 찾고 싶다.


그래서 나는

내게 홀딱 반하고 싶다.


입에 침이 마르게 나를 칭찬하고 이뻐하고 싶다.


나는 액받이 무녀 일을 그만두겠다.

그리고 나는 나와 불꽃같은 사랑을 할 참이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