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새벽에 일어나 잠도 설치고 출근을 해서 그런 것일까? 아침 회의에서도 그럴 때가 있고, 점심 식사 후에는 정말 제어가 불가능할 정도로 몽롱할 때가 많다. 식곤증이겠지 하고 무시해 버리려고 하지만 아니면 뭐지? 불쑥 불안감이 들 때가 있다. 커피 한 잔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다. 차라리 포기하고 5분이라도 쓰러지는 게 낫다. 큰일이다, 어쩌지, 하면서 또 하루가 가고 시간이 간다. 그래서 이젠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는 생각으로 펜을 들었다.
사진 / 빈센트 반 고흐와 동생 테오의 무덤 2014
벌써 시간이 꽤 흘렀다. 언제였는지 사진에 있는 로그값을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사진에 담긴 정보를 보니 2014년 3월이다. 아 이제 생각이 난다. 아직은 좀 이른 봄이었던 것 같다. 폴란드를 거쳐 프랑스에 갔던 바로 그 때다. 파리에서 마지막 날이었다. 드골 공항으로 가기 전에 시간이 좀 남았고 잠시나마 어디를 가볼까 하던 일행이 결정한 곳은 공항에서 가까운 곳, 바로 오베르쉬르우아즈였다.
구글 지도 / 파리 북서쪽 오베르쉬르우아즈
오베르쉬르우아즈는 고흐가 잠들어 있는 곳이다. 바로 고흐의 무덤이 있다. 고흐가 마지막 생을 보냈던 파리 근교에 작은 마을 오베르쉬르우아즈.
구글 지도로 보니 파리 개선문에서 차로 44분 정도의 거리이다. 파리의 교통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워낙 알 수 없는지라 정확한 시간은 아닐 것이다. 마치 우리의 작은 시골마을 같은 조용한 마을이었다. 고흐가 마지막 생을 마감하기 전 2달 정도를 머물면서 70여 점의 작품을 남겼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거의 하루에 1점 이상을 그렸을 정도로 폭풍같이 작품 활동을 했던 곳이다. 내가 알고 있는 몇몇의 작품이 이 마을을 소재로 하고 있다. 마을에서 가장 눈에 띄는 시청청사와 성당 그리고 그 뒤편에 있는 밀밭 등이 그렇다. 성당은 ‘오베르의 교회’로 재탄생했고, 무덤 뒤편에 밀밭은 ‘까마귀가 나는 밀밭’으로 고흐가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에 남긴 작품 중에 하나로 알려져 있다.
고흐는 37살에 고향 네덜란드가 아닌 여기 프랑스에서 생을 마감하고 묻혔다. 그리고 고흐 평생을 지지했던 후원자이고 평생의 동반자이고 금쪽같은 동생 테오가 옆에 나란히 묻혀 있다. 고흐 형제의 무덤이 이렇게 나란히 있다는 것이 놀랍고 신기할 따름이었지만 알고 보면 두 사람이 죽어서도 이렇게 나란히 있다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고흐에게 동생 테오는 그저 그냥 동생이 아니었다. 동생 테오는 피를 나눈 형제이기도 했지만 형 고흐를 가장 잘 이해하고 아낌없이 지지하고 후원해 준 동반자이고 정신적 버팀목이었다. 아마도 동생 테오가 없었다면 고흐는 이 세상에 없었거나 알려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연인이라고 하면 큰일 나겠지만 동생이자 진정한 지지자였던 동생 테오의 끔찍한 형제애가 살아생전에 결실을 보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형제의 무덤이 쓸쓸하지 않도록 담쟁이덩굴로 하나로 만들어 준 것도 두 사람의 끈끈했던 형제애를 보여주는 듯하다. 두 형제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거꾸로 거슬러 가 볼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