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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그림빠 Jul 05. 2022

행복한 엄마되기 선언, 나 좀 행복해야겠다

반드시 행복한 엄마가 되기 위한 셀프 치유기

행복해보이지 않는 엄마와 40년을 살았습니다. 엄마를 보면, 너무나 피곤해보이고, 자식을 위한 희생이라는 미명아래, 엄마의 삶은 너무나 불쌍해보였습니다. 맏딸인 저는 그런 엄마를 보고 자라는 동안, ‘나는 반드시 성공해서, 엄마를 편하게 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자랐지요. 그런데 23살에 아빠가 돌아가시면서, 엄마는 홀로 자식의 생계를 책임져야만 하는 더 불쌍한 길로 들어섭니다. 주변에서, 모두들 엄마를 안쓰럽게 봅니다. 그리고 모두들 저에게 “니가 큰딸이니, 이제 가장이라 생각하고 엄마 잘 모셔라”. 그때부터 저는 집안의 대소사를 책임지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빠의 장례에서부터, 이후의 삶까지. 아빠의 부재에 어느 정도 적응하며, 그 사이 딸들은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 저희 가족에게 일어납니다. 그렇게 아끼던 막내 남동생의 죽음으로 엄마는 다시 세상을 다 잃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자식을 먼저 보낸다는 것보다 어떤 것이 부모에겐 그 어떤 것보다도 더 불행할 수 있을까요? 왜 살만하면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걸까요? 이후, 제 삶의 책임감의 무게는 더 무거워졌습니다. 이제는 제 힘으로 버티기엔 무리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워킹맘이라 아이가 태어나면서 지금까지 엄마가 아이를 봐주시며 집안일을 도와주셨지요. 육아를 함께 도와준다는 것이 너무나 고맙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한 공간에서 매일 매주하기에 갈등의 순간도 많았습니다. 손목에 파스를 붙여가며, 아이들 양말을 굳이 빨고 계실 때는 제 안에 분노가 일어났습니다. “누가 양말 빨라고 했어? 제발 이런 것 좀 하지마”. 아이들의 때 묻은 양말을 빨면서 아이들에게 소리치십니다. “양말이 이게 뭐냐며 이러니까 할머니가 힘들어지잖아“(손녀에게 죄책감을), 손목이 아프고, 병원을 다니시고, 그걸 또 저에게 알아봐달라 하소연하시는 상황이 되풀이되었기에, 반복되는 패턴을 피하고 싶었습니다. 엄마는 아마도, 본인이 희생하는 모습을 통해 저에게 고맙다는 말을 들으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내가 이렇게 필요한 사람이다. 고마운 사람이다’는 것을요. 하지만 그런 나날들이 반복되면서, 저는 점점 엄마에게 분노하며, 또 마음 한편에는 그런 저의 모습에 죄책감을 가지며, 여러 해를 보냈습니다.

마음이 점점 아파왔습니다. 그런 나를 해결해보고 싶었습니다. 친구 같은 엄마는 아니지만, 그래도 최소한 엄마와 나누는 대화에 서로에 대한 존중감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지요.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관련된 책도 읽고, 강의도 들어보고, 때로는 상담도 받아봤습니다. 그러하기를 3년이 넘게 해봤지만, 엄마에 대한 감정이 다시 애정이나 존중, 존경으로 바뀌지 않더라구요.


대화를 할 때마다 불쑥불쑥 화가 날 것 같았어요. 아이를 잘 키워보겠다고 읽었던 육아서를 통해 집안의 분위기가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너무나 잘 알았지만 그게 잘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최소한 아이들 앞에서 소리 지르는 모습을 보여주기는 싫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엄마와의 갈등을 피하는 것이었습니다. 최대한 눈을 맞추지 않고, 아이들 픽업시간만 체크하며, 함께 있는 시간을 최소화하기. 밥도 최대한 회사에서 해결을 하고 갔지요.

여기에 남편과도 사이가 아주 좋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육아관이 맞지 않아 10년을 다투었고, 그 갈등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하지만 제 삶에 영향을 미친 건 엄마가 훨씬 컸던 것 같아요, 태어나 지금까지 40년이 넘은 기간 동안 제 삶에 영향을 주었다면, 남편은 고작 10년이니까요.

‘남편, 잠시만 기다려, 엄마 문제 좀 해결하고 보자’


긴 시간동안 엄마와 딸의 관계에 대해 많이 고민했습니다. “딸이 좋지, 친구 같은 딸”이라는 말이 좋기도 하지만, 그만큼 딸에겐 무거운 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요. 정서면 정서, 모든 것이 한 몸처럼 얽혀 지냈던 그 시간을 이제는 독립하여, 뚜벅뚜벅 걸어 나와야 할 것 같았습니다. 파도치는 그 곳에서 누구의 삶인지도 모른 채 얽히고 얽혀 계속 허우적 될 것이 아니라, 좀 더 멀리 나와서, 지금의 나를 들여다보기로 했습니다.

엄마와의 불편한 관계를 해결하기 위해 이것저것 안해본게 없었던 저의 어두웠던 시간을 지난 지금, 내가 나를 좀 돌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육아서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가 행복하면, 아이는 엄마의 행복한 모습을 보며 잘 자란다”고. 그 말을 참 많이 듣고 읽었지만, 이제야, 그 말의 진짜 의미를 알 것 같았습니다.


엄마가 자신의 삶을 대하는 태도를 아이들이 늘 공기처럼 느끼고 있고, 엄마의 표정, 말, 하나하나 아이의 정서에 스며든다는 것을요. 그러면서 다시 한 번 아이들에게 미안해졌습니다. 그동안 엄마의 미성숙함으로 소리 지르고, 아빠에 대한 부정적 표현, 할머니에게 대하는 태도로 아이들에게 심어주었을 편견, 갈등의 정서. 그리고 지금 아이들의 엄마인 저 역시도 매일 최선을 다해 살았다고 했지만, 늘 피곤해보이고 지친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며, 엄마의 과거를 되풀이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스러웠습니다.

오래도록 진행되었던 저의 고민들, 해결해보기 위해 했던 많은 시도들, 그리고, 이제 천천히 느리지만, 안전하게 찾아가는 저의 여정을 저와 같이 힘든 마음을 겪고 계신 딸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습니다. 자신으로부터 독립하여, 아이들과 그리고 나의 원 가정을 조금 여유롭게 볼 수 있기를 그리하여, 진정 자유롭고 행복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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